성도절 법문
성 도 절
사부대중이시여!
님들은 하루에 하늘을 몇 번이나 올려다봅니까?
님들은 일년에 새벽하늘의 샛별을 몇 번이나 올려다봅니까?
우리의 세존께서는 2560년 전 오늘 새벽 동천에 떠오르는 샛별을 보시고 우주의 진리를 깨달아 성도하셨습니다.
다 같은 섣달,
다 같은 초여드래,
다 같은 새벽인데 어찌하여 석가모니는 성도를 하셨고 우리들은 지금까지 성도를 하지 못했는지 답답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무엇인가 또는 어딘가 크게 잘못된 곳이 있는 것만은 틀림이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성도라는 그것은 대관절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 한번 조용히 살펴보는 것이 첫째 긴요한 일이라 생각하는 바입니다.
목표 대상이 되는 성도라는 이것을 바로 알지 못해서는 부질없는 헛된 노력과 고생만 하게 되는 것입니다.
목적지의 위치와 그 성격과 그를 추구할 수 있는 방법과 노정을 명확하게 미리 알고 난 다음, 힘찬 출발이 시작되어야 할 것입니다.
도를 이루었다 하는 말은 우주의 본체가 되는 진여 법성에 부합 귀일 되었다는 말입니다.
현재 우리 인간들은 청정본연한 자성에서 멀리 떨어진 미망의 세계에서 전도와 몽상을 실체로 알고 상락아정을 거꾸로 보아 참된 자기발견을 하지 못하고 영겁의 생사고륜을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빨리 벗어나지 않고서는 안되겠다는 굳은 결심으로 일대 분발심을 일으켜 용맹스런 정진과 피나는 수행으로 제2의 자기를 완전히 발견하여 우주의 본체가 되는 진여 법성에 귀일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최고의 인격완성이라 하는 것이며 열반이라 하는 것이며 해탈이라 하는 것이며 또한 성불이라 하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몹시 어려운 과업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 세존께서도 이러한 영원의 생명을 얻기 위해 6년의 수도가 필요했던 것이며 왕궁의 부귀와 그 왕위의 영화도 버렸던 것입니다.
동천의 샛별을 보시고 성도 하셨다고 할 때 동천에 어떤 뜻 깊은 이치가 있는 것도 아니며 샛별에 무슨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은 더구나 아닙니다.
혹(惑) 업(業) 고(苦) 삼장이 무너지고 추혹 세혹이 완전히 소멸된 경지에서 성성한 적조의 불빛이 반짝이고 있을 무렵 홀연히 동천의 샛별이 떠오르는 것과 마주칠 때 모든 회의의 구름이 사라지고 우주의 대 생명을 확철(廓徹)히 깨닫게 되는 장엄 찬란한 순간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 부처는 불생불멸이며 불구부정이며 거래와 명상이 끊어졌으며 시간과 공간에 초월된 청정무구한 진여 법성입니다.
오늘의 성도는 우리 세존께서 이것을 증득하셨으며 확철하신 것입니다.
이러한 뜻깊은 날을 맞이함에 있어 대중 여러분께서는 어떠한 각오와, 어떠한 결심과, 어떠한 태도로 이 법석에 다다르시게 되었는가? 하는 것도 스스로 분명히 점검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출가의 본의와 불교의 원리를 다시 한번 냉정히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2560년 전 우리 세존께서 오늘 새벽 성도 하셨다는 위대한 사실에 대하여 한갓 축하로 그친다거나 기념으로 생각한다거나 하는 무감각 무관심한 태도로서는 절대로 불자의 도리를 다 하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적어도 명년 이날 첫 새벽 저 샛별의 빛을 볼 때는 다같이 우리 세존처럼 생사의 고륜을 벗어나고 연원의 대 생명을 얻어 열반의 쾌락을 맛보도록 되어야 할 것입니다.
오직 이것이 성도일을 맞는 우리 불자들의 자세일 것이며 또한 가져야 될 각오라 생각하는 바입니다.
나무 석가모니불
나무 석가모니불
나무 시아본사 석가모니불
부처님 되신 날 예화
수자타의 정성으로 고타마는 차츰 건강을 회복하였다.
싯다트타는 강가에서 몸을 씻고 가야산(正角山)언덕의 나무 아래에, 지나는 청년(吉祥)에게 얻은 마른 풀로 자리를 만들고 앉았다.
“허공에서 칼과 몽둥이를 억수같이 퍼부어서 마디마디 끊어 내어 가죽과 힘줄과 뼈와 그리고 피와 살과 털끝까지 다 부서져 없어지더라도 기어이 <삼먁삼보리>이루어 생사고해 초월하지 않고는 결단코 이 자리 떠나지 않으리.” 라고 맹세하였다.
싯다르타는 정각을 이루기 위해 좌선하고 계셨다. 그 모습에선 살아 있는 사람이라는 느낌을 받을 수 없었다. 숨을 쉬는 것 같지도 않았다. 때때로 움푹 파인 눈의 동공이 빛을 발할 뿐이었다.
더운 여름의 무더위 속에서나 겨울의 추위 속에서도 그의 자세는 한결 같았다. 파리와 모기와 벌레가 몸에 붙어 피를 빨아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소나기가 쏟아져 그의 몸을 씻어 내려도 그는 앉은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마치 감각이 없는 썩은 나무토막과 같이 육체는 정신과 떨어져 있었다.
싯다르타는 때때로 그가 정신을 잃고 쓰러졌던 일을 기억하였다. 육체를 버리고 정신만으로 수행이 가능한가 의심스러웠다.
현세에 있어서 보리를 이루기 위해서 육체를 버려서는 아니 되리라 생각했다.
정신과 육체가 그 연계를 끊으면 그것은 죽음이며, 죽음은 현세의 종말이 아닌가?
싯다르타는 그가 보아온 고행자들을 생각했다. 그들은 육체의 고통을 이겨내는 것으로 바라는 일이 내생에서 이루어질 것을 희망했다.
‘그러나 나는 육체를 잊고 정신만으로 살고자.’고 하였다.
그것은 저들과 같지는 않으나 역시 정신에만 치우친 것이다. 치우친 생각으로는 바른 도를 이룰 수가 없다.
싯다르타는 그가 지난 수년동안 고행을 해서 얻은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하였다.
자신의 무한한 정신력을 믿게는 되었으나, 그가 바라는 깨달음을 얻지는 못했다.
정신과 육체의 싸움이 치열하면 할수록 그 만큼 자신이 그 싸움에 말려들었음을 그는 인정하였다. 그것은 저 고행자들과 다름이 없는 것이었다.
고통을 참는 노력이 크면 클수록 느껴지는 고통도 컸다.
뼈를 깎고 살을 에이는 고통이지만 고통을 이겨내고자 하는 노력을 쉬고 마음이 비었을 때 고통이 느껴지지 않던 것을 생각하였다.
싯다르타는 마음을 비우고 생각을 쉬면 고통이 사라지며, 마음과 생각이 일면 고통이 살아난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그것은 중대한 발견이었다.
싯다르타는 자신을 가리고 있던 베일을 벗겨져 갑자기 밝은 곳에 나온 느낌이었다. 그는 이제야말로 선정에 들어 참구(參究)해야 할 대상을 찾았다고 생각했다. 그는 무익한 고행을 버리고 새 출발을 해야 할 때라고 생각하였다. 그는 육체를 괴롭히는 방법이 아니라, 육체의 힘을 잘 이용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이 같은 싯다르타의 생각을 알아차린 마왕은 그 동안 6년을 따라다니며 바라던 기회가 왔다고 생각했다.
싯다르타는 궁성을 나온 그 날로부터 줄곧 그를 떠나지 않고 유혹할 기회를 노리던 마왕은 쾌재를 부르며 싯다르타에게 말하였다.
“당신은 쇠약하여 얼굴빛이 좋지 않소, 당신의 죽음은 가까웠소, 세상에 생명만큼 소중한 것은 없소, 살아있고 서 수행도 있는 것이 아니겠소. 당신과 같이 고행해서는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오. 그런데 되지도 않을 그 같은 수행은 해서 무엇하겠소. 수도에 정진하는 길은 나아가기 어렵고 행하기 어렵고 성취하기 어려운 것이오.”
싯다르타는 마왕에게 말하였다.
“마왕이여, 내가 구하는 것은 네가 말하는 그러한 공덕도 이익도 아니다. 그러한 것을 원하는 사람을 찾아가 그와 같은 이야기를 하는 것이 좋으리라.
나에게는 확신이 있으며, 정진할 힘이 있고 지혜가 있다.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수도하는 나에게 죽음을 말하는가?
생명이란 언젠가는 끝나게 되어 있으므로 나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바람이 강을 마르게 하듯 고행을 계속하면 살과 피는 마를 것이다. 그러나 나의 마음은 안정되어있다.
내 정신의 청정함을 보아라.
나는 온갖 대상에 대하여 욕망을 일으키지 않는다.
무익하게 살기만을 바란들 무엇하겠는가.
나는 용감한 군인처럼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너와 결전을 하리라.
나는 너의 군사력을 잘 알고 있다.
너의 제1군은 애욕이다.
제2군은 불만이며,
제3군은 목마름과 굶주림이요,
제4군은 갈망이다.
제5군은 의지가 없는 것이며,
제6군은 불안과 공포이며,
제7군은 의구심이며,
제8군은 자신의 잘못을 감추려고 하는 비굴한 마음이다.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이 너의 군사력과 대항하여 싸워 이길 수 없다 해도 나는 지혜로써 너의 군사를 질그릇을 깨뜨리듯이 분쇄할 것이다. 장차 나는 널리 제자들을 교화하여 그들로 하여금 나의 가르침을 실천하도록 하고, 그들을 탐욕이 없는 경지에 이르도록 하리라.”
마왕은 말하였다.
“나는 6년 동안 당신의 뒤를 그림자처럼 따라 다니면서 떠난 적이 없으나 마음에 틈이 없는 구도자에게 접근하기란 쉽지가 않았소.” 마왕은 탄식하며 사라졌다.
그 때 하늘 사람들은 부처님의 허약한 몸을 회복시키기 위하여 영양이 많은 하늘 음식을 가져와 공양하였다. 그러나 부처님은 이를 거절하셨다. 밖으로 보기에는 단식을 하는 것 같으면서 실제로는 음식을 취하는 것이므로 그것은 세간을 속이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보리수[菩提樹=정각수正角樹] 아래에서 선정에든지 21일 째인 섣달 초여드레(음력 12월 8일) 새벽녘 동쪽 하늘에 떠 있는 반짝이는 별을 보며 깨달음을 이룬 것이다. 그의 나이 35세, 수행자 고타마 싯다르타는 깨달음을 이룬 후 석가모니부처님 붓다(Buddha)가 되신 것이다.
모든 번뇌의 사슬로부터 벗어나 다시는 윤회하자 않는 대자유를 얻었으니 일체 지자요, 일체 승자요, 무상의 정각자가 되었다. 이 때 부처님은 선정에 깊이 들어가 생각하셨다.
“나는 이곳에서 바라던 도를 이루었다. 내가 얻은 법은 매우 깊고 커서 증생들이 이해하기 어렵다. 오직 부처만이 알 수 있다. 일체 중생은 다섯 가지로 흐린 세상에서 탐내고 교만하고 아첨하기 때문에 그에 가리고 막혀 있으며 복이 엷고 근기가 둔하며 지혜가 없어 나의 법을 이해하기 어렵다. 내가 법륜을 굴리면 그들은 반드시 정신이 혼미하여 믿지 않고 오히려 비방할 것이다. 바른 법을 비방한 죄업으로 인하여 그들은 장차 나쁜 세계에 떨어져 온갖 고통을 받을 것이다. 차라리 잠자코 열반에 드는 것이 좋으리라.” 게송을 읊으셨다.
그 때 대범천왕은 부처님 앞에 나타나 합장하고 엎드려 예배하고서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먼 옛날로부터 무수한 생사의 고해에 나시어 모든 것을 버려 보시하면서 도를 이루기를 원했고 그것은 오직 중생을 위하는 자비심에서 나온 것이었습니다.
지금 세존께서는 도를 이루셨는데 어찌하여 도를 설하지 않사옵니까? 중생은 오랫동안 생사에 빠져있고 무명의 어둠에 빠져있으며 뛰쳐나올 기약이이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많은 중생 가운데는 그래도 지난 세상에 선한 벗을 가까이 하여 덕의 근본을 삼는 이들이 있습니다. 부디 이들을 가엾이 여기시어 미묘한 법륜을 굴려 주십시오.” 이와 같이 세 번을 간청하니 드디어 부처님은 대법륜을 굴릴 것을 허락하여 중생교화의 길을 열어 보이셨다.
깨달음을 이룬 붓다는 49일 동안을 머물며 생각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