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경시리즈

사경15-지장보살본원경

유프랭크지안 2017. 5. 22. 17:45

지장보살

地藏菩薩 

지장보살은 석가여래 부처님께서 입멸하신 뒤 미륵 부처님이 출현할 때까지 567천만년 동안 이른바 부처님이 계시지 않는 무불시대의 교주이다.

지장보살은 이처럼 부처님이 계시지 않는 시대에 육도에 몸을 나투어 천상에서 지옥까지 일체 모든 중생을 교화하여 해탈케 하겠다는 비장한 서원을 세운 대원대비의 보살이다.

지장보살은 특히 지옥의 극심한 고통에서 고통받는 중생들을 제도하는 어두운 세계의 교주(幽明敎主) 또는 남쪽을 교화하는 주존(南方化主)으로 신봉되고 있다.

1. 지장의 뜻

지장(地藏)은 산스크리트어 (크시티가르바 Kisitigarbha)를 한문으로 번역한 말이다.

크시티가르바란, 대지(大地)의 태() 또는 자궁(子宮)이란 뜻을 가지고 있다.

즉 땅을 감싸고 있는 보살이란 뜻이다. 그래서 지장보살은 바로 땅의 보살이며 대지의 보살이다.

인간을 비롯해서 자연 만물을 지탱하고 있는 대지는 많은 덕을 갖추고 있다.

모든 생물을 생장발육 시키며, 모든 중생들의 삶의 터전이 되고 있는 것이 바로 대지이다.

바로 이런 대지가 가진 덕성을 일곱 가지로 설명하고 있는데 이것을 칠지의(七地義)라고 한다.

칠지의는 지장보살의 위덕을 대지가 가진 위덕에 비유해서 설명하고 있다.

1) () : 칠지의(七地義)

능생의(能生義)

대지는 능히 일체의 모든 생물을 생장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다.

이처럼 지장보살도 능히 일체 모든 중생을 설법으로 성숙시키는 것을 말한다.

능섭의(能攝義)

대지는 일체 모든 생물을 섭수하여 자연 속에서 편안히 쉬게 한다.

이처럼 지장보살도 일체 묘법을 가지고 모든 중생들을 제도하여 큰 깨달음의 대각성(大覺城) 안에 편안히 쉬게 함을 말한다.

능재의(能載義)

대지는 일체의 광식물들을 능히 떠받치고있다.

이처럼 지장보살도 일체 모든 중생들의 고통을 실어 저 피안(彼岸)의 언덕에 이르게 함을 말한다.

능장의(能藏義)

대지는 능히 일체 만물을 잘 간직하고 있다.

이처럼 지장보살도 묘한 선행을 통해서 모든 중생들을 악으로부터 잘 보호함을 말한다.

능지의(能持義)

대지는 능히 일체 만물을 잘 보존하고 지킨다.

이처럼 지장보살도 묘한 선행을 통해서 모든 중생들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지켜주는 것을 말한다.

능의의(能依義)

대지는 일체만물의 의지처가 된다.

이처럼 지장보살도 모든 중생들의 든든한 의지처가 됨을 말한다.

견뇌부동의(堅牢不動義): 대지는 성품이 견고하고 실다워서 이리저리 움직이지 않는다.

이처럼 모든 중생을 구제하겠다는 대원을 세운 지장보살의 심성도 견고해서 감히 파괴되지 않음을 말한다.

2) () : 삼덕장(三德藏)

지장보살 할 때 장()은 비밀,포용,함육(含育)의 뜻을 가지고 있다.

지장보살은 깊은 선정 가운데서 일체중생의 잘못을 멈추게 하고 지극한 선에 나아가 중생들을 교화하여 올바르게 성숙시키기 때문에 장()이라고 한다.

장에는 지장보살님이 갖추고 있는() 세 가지 덕성을 설명하고 있다.

즉 중생을 교화하는 지혜를 갖추고 있는 지덕(智德),

모든 무명과 번뇌, 그리고 고통을 끊는 단덕(斷德),

모든 중생들에게 대원의 은혜를 베푸는 은덕(恩德)이 바로 지장보살에게 갖추어진() 세 가지 위덕이다.

이처럼 칠지의와 삼덕장을 갖추신 지장보살은 철저한 비원(悲願)을 세우고 지옥을 항상 계시는 곳으로 삼고 육도(六道)를 능히 교화(能化)하시는 자존이다.

2. 성불을 포기한 보살

불교에서는 부처님이 한 생에 닦은 수행의 결과로만 부처님이 되었다고 보지 않는다.

부처님과 같은 무상정등각(無上正等覺)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오랜 과거 전생부터 수많은 생을 거듭하며 무수한 보살행과 수행을 닦고 닦아서 마침내 부처님이 되신 것으로 이해한다.

이렇게 부처님이 되기 전에 깨달음을 위해 보살행을 행하고 수행하던 때의 이야기를 전생담(前生談) 이라고 한다.

, 전생 이야기란 뜻이다.

물론 지장보살도 지장보살이 되기까지의 전생담이 있다.

지장보살의 전생담을 살펴보면 자신이 지은 죄업으로 고통받는 수많은 지옥중생들을 모두 다 구제하지 않고는 결코 성불하지 않겠다는 비원을 세우고 계신다.

이 뒤로 백 천만억겁 동안에 세계에 있는 지옥과 삼악도(三惡道)에서 죄로 고통받는 중생을 맹세코 제도하여 지옥축생아귀 등에서 벗어나게 하고, 이와 같이 죄의 업보를 받는 모든 사람들이 다 성불한 뒤에야 제가 바야흐로 정각(正覺)을 이루겠습니다.”[지장보살본원경]

이처럼 지장보살은 스스로 모든 중생을 구제하겠다는 비원(悲願)을 세우시고 모든 중생이 다 구제되지 않는 한 자신도 성불하지 않겠다고 성불을 유보했기 때문에 대비천제(大悲闡提) 또는 천제보살(闡提菩薩)이라고 불린다.

천제란 다른 말로 일천제(一闡提)라고도 하는데 단선근(斷善根) 혹은 신불구족(信不具足)으로 번역한다.

즉 선근을 끊고 믿음을 갖지 못한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서 천제란 성불할 수 없는 중생을 말한다.

그렇다면 모든 중생을 구제하겠다는 큰 서원을 세운 지장보살은 왜 성불하지 못하는가?

지장보살은 자신에게 허물이 있어 성불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중생구제의 비원을 세워서 열반에 들지 않고 스스로 악취에 머무는 것이다. 이처럼 큰원을(大願) 세워서 스스로 성불을 포기한 보살이기 때문에 대비천제라고 부른다.

또 모든 중생들이 다 구제된 지극히 선한 세상이 아니면 자신은 결코 성불하지 않겠다는 서원을 세웠으므로 이를 극선불성불(極善不成佛)이라고도 부른다.

3. ()을 소멸시키는 보살

지장보살은 숙업(宿業오랜 전생에서부터 지어온 무수한 업)에 의하여 육도를 윤회하며, 삼악도에 빠져 죄고를 받는 중생들의 교주이다.

이 세상 모든 중생의 운명은 업()에 의하여 결정된다는 것이 불교의 업보(業報) 사상이다.

따라서 누구든지 자기 자신이 스스로 지은 업보(業報)에 의해서 결정지어진 죄고는 피할 수 없다.

왜냐하면 자신이 지은 업보는 자신이 받는다는 것이 바로 자업자득(自業自得)의 인과설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업설에 의하여 선한 행을 하면 선한 과보를 받고 악한 행을 하면 악한 과보를 받는다는 선인선과 악인악과(善因善果 惡因惡果)가 인과응보의 기본적인 법칙이다.

지장보살의 구제력을 높이 선양하고 있는 [대승대집지장십륜경]에서도 인과의 이치를 믿지 않는 것을 무인(無因)론 이라고 비판하고, 인과를 부정하는 자들을 일컬어서 단멸론(斷滅論)자라 비난하며 목숨을 마친 뒤에는 무간지옥에 떨어질 것이라고 경고한다.

그렇다면 한번 지은 업보는 영원히 벗어날 수 없는 것인가?

만약 불법을 믿지 않고 인과법을 믿지 않고 살아간다면 그 인과의 사슬에서 영원히 벗어날 수 없다. 그러나 수많은 생을 통해 지은 이 인과(因果)의 사슬을 끊고 전생에 지은 모든 나쁜 업장을 소멸시킬 수 있는 길이 있다.

[대승대집지장십륜경]에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견고한 정진과 서원의 힘으로 말미암아 업()의 사슬을 끊을 수 있으며, 모든 악업을 참괴하고 참회하는 자는 전생에서 지은 일체의 악업을 모두 소멸하게 되어 남음이 없게된다.”

인과의 사슬이 무겁지만 견고한 정진과 서원의 힘으로 그 업의 사슬을 끊을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이 지은 악업을 모두 참회하는 자는 일체의 모든 악업을 소멸하게 된다고 가르치고 계신다.

이처럼 스스로 참회하고 견고한 정진을 통해 업장을 소멸할 수 있는 수승한 중생은 이렇게 참회와 정진을 통해 업장을 소멸시킨다.

그렇다면 스스로는 자신의 악업으로 인한 죄장(罪障)을 감내하지 못하는 말법 시대에, 그것도 삼악도에 빠진 하근기 뭇 중생들은 어떻게 이 인과의 사슬을 벗어나고 업보를 멸할 수 있는가?

그것은 바로 지장보살의 불사가의하고 수승하며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공덕과 비원에 의하여 구제될 수 있다고 지장경은 설한다.

4. 근기에 따라 제도하는 보살

지장보살은 육도(六道)에 윤회하는 중생을 성숙시키고 구제하기 위해 중생들의 근기에 알맞게 몸을 나투신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그릇에 따라 무서운 마왕의 모습도 필요하고 자비로운 보살의 모습도 필요하다.

대승대집지장십륜경의 서품에 보면 지장보살은 각기 다른 중생들의 수준에 따라서 대범왕과 세계를 주재하는 신인 대자재천의 몸에서부터 염마왕의 몸, 심지어는 지옥졸의 몸에 이르기까지 여러 가지 모습으로 몸을 나투어 설법하고 있다.

이 선남자(지장보살)는 이렇게 내가 말하는 것과 같이 불가사의한 온갖 공덕과 견고한 서원과 용맹정진을 성취하고는, 유정들을 성숙시키기 위하여 시방세계에서 어떤 때는 대범왕(大梵王)의 몸을 나타내어 유정들을 위해 그 근기에 알맞게 설법한다.

혹은 대자제천의 몸이 되고, 혹은 염마왕의 몸, 지옥졸의 몸이 되며, 혹은 지옥의 모든 유정들의 몸이 되는 등 이같이 무량 무수한 다른 종류의 몸이 되어 저 유정들을 위하여 그 근기에 알맞게 설법하고, 그 응하는 바에 따라 그들을 삼승의 물러나지 않는 자리에 편안히 둔다.” [대승대집지장십륜경] 이처럼 지장보살은 중생구제를 위해 한가지 모습으로 정해진 것이 아니라 중생의 근기와 상황에 따라 각기 다른 모습을 나투어 중생들을 제도하고 계신다.

[지장보살본원경] 분신집회품에 보면 부처님이 지장보살에게 수기를

내리시고 말씀하시기를 중생이 각각 차별이 있으므로 여러 몸을 나투어 제도하여 해탈케 한다며 분신(分身)의 까닭은 중생의 근기에 차별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신다.

이에 지장보살이 서원하시기를 제가 나타낸 몸이 백천만억 항하사 세계에 가득하여, 한 세계마다 백천만억 몸을 나투고, 한 화신(化身)마다 백천만억 사람을 제도하여, 삼보께 귀의 공경하게 하며, 나고 죽음을 영원히 여의고 열반의 기쁨을 얻도록 하겠습니다. 원컨대 세존께서는 다음 세상의 악업 중생을 염려하지 마십시오.”

5. 수행자의 모습으로 나투신 보살

지장보살의 형상은 일반적으로 삭발한 머리에 석장을 짚거나 여의주를 들고 있는 모습으로 조성되어 있다.

관세음보살이나 문수보살 등 다른 불보살상이 고대인도 귀족들의 복식을 본떠서 화려하게 조성되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지장보살은 평범한 중생의 모습에 가까운 소박한 모습을 하고 계신다.

그 때 지장보살마하살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보살들과 함께 신통의 힘으로 성문의 모습을 하고 남쪽으로부터 왔다.

참 대사인 지장보살은 두타의 공덕을 모두 갖추고 성문의 색상을 나타내고서 부처님께 와서 머리를 조아리다.

여섯 가지 신통으로 세간을 비추면서 그는 지금 곧 여기 오리니 용맹스런 그의 이름 지장으로서 출가의 위의를 나타내었네.” [대승대집지장십륜경] 이처럼 지장보살은 수행자의 모습으로 나투고 계신다.

이는 앞서도 언급했듯이 스스로 중생구제를 위해서 성불을 포기한 대비천제(大悲闡提)의 천제보살(闡提菩薩)로서 뭇 중생들의 처소인 세간에 스스로 머물면서 죄고에 빠진 육도 중생을 제도하겠다는 지장보살의 본원를 단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지장보살의 이런 모습은 언제나 고통받는 중생들과 함께 하겠다는 동체대비의 사상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대승불교가 발생하면서 보살은 불교신앙의 핵심으로 부상하게 된다.

그리고 자연히 부파불교 시대의 이상적인 수행자상인 성문(聲聞)에 대해서 경시하는 경향이 나타났다.

그러나 이런 대립은 지장보살에 이르러서 조화롭게 화합하고 있다.

지장보살의 대비(大悲)와 대원(大願)이 크고 광대하기 때문에 성문과 보살이라는 이승(二乘)의 대립을 탈피한다.

성문을 배척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보살과 성문을 융화시키고 있다.

이처럼 중생구제를 위해서라면 모습()에 집착하지 않는 것이 지장보살의 특징이다.

지장보살은 대승의 보살이면서도 성문의 모습으로 나투고 계신다. 그것은 안으로는 보살의 대행(大行)을 가지고 계시지만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서는 그들에게 보다 친근한 수행자의 모습으로 나투시는 것이다. 이처럼 불보살이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서 일부러 성문의 모습으로 나투시는 것을 중생의 근기에 따라서 나툰 성문이라는 뜻에서 응화성문(應化聲聞)이라고 한다.

6. 인연 없는 중생을 구제하시는 보살

앞에서도 살펴보았듯이 지장보살은 부처님이 계시지 않는 시대(無佛時代)에 중생을 교화하는 교주로 불린다.

이는 곧 현세의 부처님이신 석가모니부처님이 열반에 드시고 미래의 부처님이신 미륵부처님이 오시기 전까지 부처님이 계시지 않는 시대에 중생들을 구제하시는 보살님이란 뜻이다.

흔히 미륵부처님은 567천만년 후에 오신다고 했으므로 그 기간 동안 육도(六道)에 머물면서 중생들을 구제하시는 보살님이 바로 지장보살님이다.

너희들은 마땅히 알아라. 이름을 지장이라고 하는 보살마하살이 있다. 그는 이미 한량없고 헤아릴 수 없는 대겁에 다섯 가지가 혼탁한 악한시대(五濁惡世)의 부처 없는 세계(無佛世界)에서 유정(有情)을 성숙시켰다.”

[지장보살본원경]

이때 지장보살마하살이 부처님께 사뢰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부처님의 위신력을 이어서 백천만억 세계에 두루 이 몸의 형상을 나투어 일체업보중생을 구하여 빼내겠습니다.

만일 여래의 큰 자비의 힘이 아니면 곧 이와 같은 변화를 짓지 못했을 것입니다.

저는 지금 또 부처님의 부촉을 받았으니, 아일다(미륵불)가 성불하여 올 때까지 육도중생을 제도해탈케 하겠습니다. 그러니 세존께서는 원컨대 염려하지 마십시오.”

부처님이 계시지 않는 무불시대란 오탁악세(五濁惡世)로 인해 중생들의 근기가 둔하여 수행다운 수행을 하는 이가 없고 깨달음을 얻는 이도 없고, 겨우 부처님의 정법만 남아있는 시대를 말한다.

하지만 급기야는 법이 소멸할 것이라는 위기의식이 팽배한 말법시대를 말한다.

다시 말해서 지장보살님은 말법시대에 근기가 낮아서 불법에 귀의하지 않고 방황하는 인연 없는 중생들을 구제하시는 보살님이다.

그러나 무불시대란 단순히 부처님이 계시지 않는 시대라는 시대적인 의미도 있지만 보다 적극적으로 해석하면 부처님의 가피가 미치지 않는 무자비한 외진 땅을 가리키기도 한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이지 않고, 정법을 믿지 않고 온갖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으로 방황한다면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이 곳이 바로 오탁악세인 것이다.

지장보살님은 그같이 불법과 인연 없는 중생마저도 모두 구제하겠다는 서원을 세우신 보살님이다.

7. 사대보살

지장보살은 대승불교의 4대보살 가운데 한 분이다.

사대보살이란 큰 지혜로 무명의 중생들을 깨달음으로 이끄시는 대지문수사리보살(大智文殊舍利菩薩) 한량없는 행원으로 열 가지 큰 행원을 세우신 대행보현보살(大行普賢菩薩)큰 자비심으로 중생들을 구제하는 대비관세음보살(大悲觀世音菩薩)

모든 중생을 구제하기 전에는 성불하지 않겠다는 원을 세우신 대원본존지장보살(大願本尊地藏菩薩)이 바로 불교의 4대보살이다.

이 가운데 지장보살은 모든 중생을 구제하지 않고는 성불하지 않겠다는 그 서원이 크고 광대하기 때문에 지장보살의 서원을 대원(大願)이라고 하며 지장보살을 대원본존지장보살(大願本尊地藏菩薩)이라고 한다. 

사경(寫經)

경전은 부처님 가르침을 담고 있다.

경전은 부처님 입멸 후 입으로만 전해오던 것을 문자화한 것이다.

특히 부처님 입멸 이후 인도에서는 부처님 말씀을 다라(多羅)나무 껍질에 베껴 쓴 패엽경(貝葉經)이 등장하는데 그것이 바로 사경의 시초이다.

오늘날에는 수행의 방편으로서 경전을 베껴 쓰는 것을 사경이라 하고 있다.

사경이나 사불의 사()는 베끼다, 옮겨 쓰다, 본뜨다, 그리다. 뜻을 지니고 있다.

()은 법 이치, 부처님의 말씀이라는 의미이다.

사불에서의 불()은 부처님 말씀, 부처님 형상, 진리라는 의미를 가진다.

, 사경이나 사불은 경전을 베끼거나 불상을 그려내는 것 또는 새기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사불은 특히 채색하여 장엄하는 것도 포함한다.

여기에서 불상의 범주는 불보살 상을 포함한 신중 상까지다.

사불사경의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그림이나 글씨로 완성해 내기 전에 선()을 통하여 외적인 글씨나 형상을 내적인 형상으로 구체화한다는 점이다.

부처님의 마음과 그 형상이 심상(心想)에 오롯이 떠올라야 한다.

따라서 사경사불 수행은 각자의 발원과 염원을 가지고 불보살상의 상호나 전체 형상을 관상법을 통하여 끊임없이 쓰거나 그리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사경과 사불 수행을 통하여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은 업장 소멸이 그 첫째이다.

마음을 다스리고 소멸하여 행복을 얻는 것은 물론 궁극적으로 자성불을 내면에서 확인하여 깨달음에 이르게 된다.

또한 기도 발원을 성취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사경사불은 고통에 빠진 중생들의 다양한 욕구를 충족시키는 종합적인 수행법이라고도 할 수 있다.

사경사불의 과정에는 대승경전에 대한 교학적 이해는 물론 그것을 관상하는 선의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는 측면에서 선()과 교()가 함께 한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사경과 사불은 내면의 정화와 함께 처처의 부처님 기운도 함께 느낄 수 있는 방편이며 타인에 대한 회향이 따르므로 대승불교의 수행법으로 손색이 없다.

사불은 부처님의 형상과 일대기를 관()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두 가지 모두 부처님의 삶과 형상, 말씀을 마음에 새기면서 하는 행위로서 마음의 본성을 밝히고 깨달음을 성취해간다는 데에는 차이가 없다.

수행으로서 사경과 사불의 효과는 삼매의 체험이다.

이러한 삼매 속에서 부처님 말씀이 발현되면 그것은 바로 부처의 행동이며 깨달은 이의 행동이다.

[대방광불화엄경]에서는 사경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사경을 하는 사람들은 한 생각 동안에 모든 행원을 다 성취할 것이며 그 얻는 복덕은 한량이 없고 끝이 없어 능히 번뇌와 고통에 빠진 중생들을 제도하여 마침내 생사에서 벗어나 아미타불의 극락세계에 왕생할 것이다.?

이와 같이 사경은 중요한 수행법이고 공덕을 쌓는 지름길이며 전법을 위한 최상의 방법이다.

1. 사경의 종류

1) 시간에 따라

돈사경(頓寫經): 경전을 하루에 다 쓰는 것.

점사경(漸寫經): 경전을 여러 날에 걸쳐 쓰는 것.

일필경(一筆經): 한 사람이 큰 경전을 다 쓴 것.

2) 재료에 따라

묵서경(墨書經): 먹으로 쓴 경전

금자경(金字經): 금가루로 쓴 경전, 금니사경이라고도 함.

은자경(銀字經): 은가루로 쓴 경전, 은니사경이라고도 함.

수예경(手藝經): 바늘로 수를 놓아 쓴 경전

혈사경(血寫經): 피로 쓴 것.

3) 제본에 따라

권자본(卷子本): 두루마리 형태

절첩본(折帖本): 병풍 형태

선장본(線裝本): 족보책 형태

2. 마음가짐과 태도

1) 하심으로 임해야 한다.

부처님 말씀을 깊이 믿고 따르겠다는 마음이 생기면 부처님 앞에 자신을 낮출 수 있게 된다.

, 참된 신심 앞에서는 아상과 아만이 사라지게 마련이다.

이와 같이 비워진 마음으로 얻어지는 혜안은 신행으로 옮겨져 우주 법계에 두루 미치게 된다.

2) 목적을 항상 깊이 생각해야 한다.

본 수행에 앞서 부처님의 높고 높은 가르침을 바로 알고 따르겠다는 마음이 선행되어야 한다.

특히 사경사불 수행에 임하는 목적이 분명하게 설정되어야만 그 목적에 맞는 자신에게 가장 적합한 사경의 방법을 찾을 수 있다.

3) 신심을 가지고 임해야 한다.

부처님 말씀을 굳게 믿고 철두철미하게 따르겠다는 서원이 굳건해지면 수행력은 저절로 향상된다.

, 수행하는 동안 수행자 자신에게도 깊은 통찰과 깨달음이 오게된다.

이러한 깨달음은 사경사불 수행자 삶을 변화시키고 이웃을 변화시킨다.

4) 수행에 임해서는 전심전력을 다해야 한다.

사경은 자성 법신불의 가르침을 만나는 것이요.

사불은 자성 법신불의 형상을 조성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따라서 사경이나 사불을 할 때 전심전력을 다하지 않는다면 자신 안에 내재된 자성 부처님을 결코 찾을 수 없다.

선방에서 화두를 들고 용맹정진 하듯이 부처님 말씀이나 형상에 온 정성을 기울여야만 비로소 법신 부처님을 조성할 수 있을 것이다.

5) 사경 사불의 공덕을 우주 법계에 회향해야 한다.

사경을 통해 얻는 공덕과 이익을 개인의 안락과 행복의 추구에만 맞춘다면 수행의 진정한 의미가 아니다.

사경 사불을 마친 뒤에는 우주 법계에 대한 회향이 반드시 이루어져야한다.

사경이나 사불이 혼자 힘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사경 사불 작업은 비록 혼자 했다 하더라도 거기에는 많은 사람들의 보이지 않은 노력이 뒷받침되어 있다.

종이를 만드는 사람, 먹을 만든 사람, 벼루와 물감을 만드는 사람 등을 비롯한 국가, 더 나아가서는 우주 법계의 순조로운 인연으로 말미암아 사성이 원만하게 이루어졌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3. 사경의 절차

1) 목욕을 하거나 세수, 세면과 양치질을 하고 옷차림을 단정히 한다.

2) 사경상과 좌복을 놓고 책상 위에 사경할 경전과 도구 일채를 가지런히 준비한다.

3) 좌복 위에 단정히 앉아 마음을 고요히 한다.

(잠시 입정하면 더욱 좋다.)

4) 합장하고 자세를 바르게 하여 의식문을 염송한다.

5) 붓이나 붓펜을 잡고 한자 한자 정성스럽게 사경을 시작한다.

(일자일배, 일행삼배 등의 사경신앙이 전해오지만 그대로 따르기는 어렵다.

다만 한 줄 쓰고 난 뒤 합장하고 다시 자세를 가다듬어 거듭 경건한 마음으로 사경에 임하는 것이 좋다.)

6) 본문 사경이 끝나면 사경한 날짜와 사경한 사람의 이름을 쓴다.

7) 사경을 통해 가장 청정해진 마음으로 가족과 이웃을 위해 축원을한다.

8) 사경이 끝나면 손수 쓴 경전을 들고 소리내어 한 번 독송한다.

9) 사경 회향문을 읽고 불전에 삼배한다.

사경에 사용하는 붓이나 펜은 사경 이외의 다른 용도에 사용하지 않아야 한다.

4. 사경사불 의식

1) 대중이 함께 사경사불의 방법

개경게

사경 발원문

참회문

시방염불

사경관념문

입정

사경

자비 축원문

사경봉독

사경 회향문

2) 혼자 사경사불의 방법

삼귀의

삼배

반야심경 독송

사경

사홍서원

삼배

사성한 사경사불을 사경함에 보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