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춘

입춘방

유프랭크지안 2019. 1. 2. 23:50

차례

입춘정의 / 007

입춘기도 준비 / 015

입춘기도 순서 / 021

입춘기도 진행 / 023

삼보통청 / 039

삼재풀이 불교식 / 057

신중청 / 069

염송기도 / 077

삼재풀이 민속식 / 098

입춘축 / 101

삼재부적 /111

입춘(立春)

입춘(立春, 문화어: 립춘)는 24절기중의 하나로, 정월의 절기이다.

태양의 황경이 315˚에 드는 때이며 양력으로 2월 4일 또는 2월 5일이다.

대한과 우수 사이에 있다.

봄이 시작하는 날이라 하여 입춘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대개 이 때를 즈음해서 설날이 온다.

입춘이 되면 동풍이 불고, 얼음이 풀리며, 동면하던 벌레들이 깨어난다고 하였다.

입춘이라는 명칭은 중국의 화북 지방을 기준으로 한 것이다. 한국에서 이 시기의 기상은 매년 불규칙적이어서 이때를 전후한 시기가 1년 중 가장 추운 해도 있다

풍속, 음력으로는 대개 정월이므로 새해를 상징하기도 한다.

그래서 옛 어른들은 이날 '입춘대길'(立春大吉:입춘을 맞이하여 좋은 일이 많이 생기라는 뜻)과 같은 좋은 글을 써서 대문 기둥이나 대들보 혹은 천장에 붙였으며, 농가에서는 보리 뿌리를 뽑아 보고 그 해 농사가 잘 될지 어떨지를 점치기도 하였다.

또한, 음력으로 한 해에 입춘이 두 번 들어 있으면 '쌍춘년'(雙春年)이라고 하여 그 해에 결혼하는 것이 길하다고 받아 들여져왔다

세시풍속 “입춘”

입춘(立春)은 태양력을 기준으로 한 24절기(節氣) 가운데 첫 번째 절기(節氣)로 새로운 해의 시작을 의미한다.

대한(大寒)과 우수(雨水) 사이에 있으며, 양력으로 2월 4일경이다.

24절기가 양력으로는 거의 같지만, 음력으로는 조금씩 달라져서 윤달을 넣어 계절과 맞게 조정한다.

입춘이 음력으로는 섣달(12월)에 들기도 하고, 정월에 들기도 한다.

윤달이 들어 있는 해에는 섣달과 정월에 입춘이 두 번 드는데, 이를 복입춘(複立春) 또는 재봉춘(再逢春)이라고 한다.

조선 정조 때에는 부모님의 은혜가 매우 중하다는 [부모은중경(父母恩重經)]의 진언을 인쇄해 나누어주었다.

※ 부처님께서 길을 가다가 한 무도기의 뼈를 보고 절을 시작하는 장면으로부터 시작되어.

어머니가 자식을 잉태하는 10개월 동안의 태아의 상태를 생태학적으로 설명하고.

부모의 10대 은혜.

은혜를 저버리는 불효한 행동.

부모님의 은혜 갚기의 어려움.

불효한 자의 과보.

은혜를 갚는 길을 설명하고 있다.

주로 아버지보다는 어머니의 은혜를 강조하고 있다.

유교의 효경은 효도를 강조하지만, 부모은중경은 은혜를 강조한다.

이후 [부모은중진언] “나무 사만다 못다남 옴 아아나 사바하”를 써 붙임으로서 재앙이 소멸되고, 만복이 도래하기를 기원했다.

[부모은중경]에 보면, 어머님의 은혜를 강조하면서 열 가지 은혜에 대해 말씀하셨다.

1) 자녀를 잉태하시고 지켜주시는 은혜.

2) 출산의 고통을 감내하시는 은혜.

3) 자녀를 낳고 근심을 잊으시는 은혜.

4) 쓴 것은 삼키고 단 것은 뱉어 먹이시는 은혜.

5) 진자리 마른자리를 가려주시는 은혜.

6) 젖을 먹여 길러주시는 은혜.

7) 손발이 다 닳도록 깨끗하게 씻겨주시는 은혜.

8) 먼 길을 떠나면 줄곧 걱정해주시는 은혜.

9) 자식을 위해 나쁜 일도 서슴지 않고 기꺼이 하시는 은혜.

10) 끝까지 끝없는 사랑으로 가련하게 여기시는 은혜.

그리고 삼재(三災)풀이를 하기도 했다.

삼재란?

소삼재(小三災) : 재난(災難) 기근(饑饉) 질병(疾病)

대삼재(大三災) : 수재(水災) 풍재(風災) 화재(火災)

亥子丑年 삼재 : 뱀띠, 닭띠, 소띠

寅卯辰年 삼재 : 원숭이띠, 쥐띠, 용띠

巳午未年 삼재 : 돼지띠, 토끼띠, 양띠

申酉戌年 삼재 : 범띠, 말띠, 개띠

삼재가 든 첫해를 “들 삼재”

둘째 해를 “누울 삼재” 혹은 묵 삼재,

셋째 해를 “날 삼재”라 한다.

입춘에 대궐에서는 홍문관 지제교(知製敎)가 지은 오언절구(五言絶句) 중에 수작(秀作)을 선택해 연잎과 연꽃무늬가 있는 종이에 써서 궁문(宮門)에 붙였다.

이를 “춘첩자(春帖子)”라 하며, 이 시(詩)를 “춘련(春聯)”이라고 한다.

성종(成宗)은 재위 13년(1482)에?궁문(宮門)은 하나가 아니고 시를 짓는 자도 많으니, 여러 수의 춘련을 지어 붙이라.?고 명했다.

그러자 문신(文臣)들은 오언절구(五言絶句)뿐 아니라 칠언율시(七言律詩)까지 짓느라 여러 날 사무(事務)를 폐하고, 시구(詩句)를 다듬기도 했다.

<오언절구 五言絶句>

천산조비절(千山鳥飛絶)

만경인종멸(萬徑人踪滅)

고주사립옹(孤舟蓑笠翁)

독조한강설(獨釣寒江雪)

<칠언율시 七言律詩>

향로봉설발렴간(香爐峰雪撥簾看)

광로편시도명지(匡盧便是逃名地)

사마잉위송로관(司馬仍爲送老官)

심태신녕시귀처(心泰身寧是歸處)

고향하독재장안(故鄕何獨在長安)

그러자 홍문관 직제학(直提學) 김응기(金應箕) 등이 전례대로 오언절구 하나만 붙이자는 차자(箚子)를 올렸으나, 성종은 거부했다.

천문, 지리, 측후를 관장한 관상감(觀象監)에서는 귀신을 쫓는 글인 “신다울루(神茶鬱壘)”를 주사(朱砂)로 써서, 궁중의 문설주에 붙였다.

“신다”와 “울루”라는 두 신(神)은 귀신들이 다니는 문의 양쪽에 서서 모든 귀신을 검열하는데, 남을 해치는 귀신이 있으면 갈대로 꼰 새끼로 묶어 호랑이에게 먹인다고 믿었다.

양반 집에서는 대궐의 춘첩자(春帖子)를 본떠서 손수 새로운 글귀를 짓거나, 아름다운 글귀를 따다가 춘련을 써서 봄을 축하했다.

민가에서도 입춘시(立春時)에 새 봄을 맞이한다는 의미에서 이제 막 철이 든 아이의 글씨로 단구(單句)나 대구(對句)의 글을 써서 대문, 중문, 곳간문, 방문, 대들보 등에 붙였다.

이 글을 “춘축(春祝)” “입춘문(立春文)”이라고 한다.

민가의 입춘문(立春文)은 대부분 “입춘대길(立春大吉)”

“국태민안(國泰民安)” 등 단구(單句)였다.

때로는 단구를 맞추어 두 구절의 입춘문(立春文)을 쓰기도 했는데, 이를 “대련(對聯)”이라고 한다.

거천재 내백복(去千災 來百福)

모든 재앙 물러가고, 모든 복 들어오기를 바랍니다.

수여산 부여해(壽如山 富如海)

산처럼 장수하고, 바다처럼 부유(富裕)하기를 바랍니다.

부모천년수 자손만대영(父母千年壽 子孫萬代榮)

부모는 천년을 장수하시고 자손은 만대까지 번영하라.

소지황금출 개문백복래(掃地黃金出 開門百福來)

땅을 쓸면 황금이 생기고, 문을 열면 만복이 온다.

재종춘설소 복축하운흥(災從春雪消 福逐夏雲興)

재난은 봄눈처럼 사라지고, 행복은 여름구름처럼 일어나라.

입춘대길 건양다경(立春大吉建陽多慶)

입춘에는 크게 좋은 일이 있고, 새해가 시작됨에 경사스러운 일이 많기를 바랍니다.

건양(建陽)은 19세기 말 고종즉위 33년부터 다음해 7월까지의 고종황제 연호(1896~1897)이다.

건양다경(建陽多慶)은 그 당시 나라가 태평하고, 백성이 편안함(國泰民安)을 기원하는 뜻에서 집집마다 써서 붙였다고 한다.

천재설소 만복운흥(千災雪消 萬福雲興)

모든 재앙 눈처럼 녹아 없어지고, 많은 복 구름처럼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부모천년수 자손만세영(父母千年壽 子孫萬歲榮)

부모님 오래 사시고, 자손은 길이 영화(榮華) 누리기를 바랍니다.

형우제공희만가 부화부순경여빈

兄友弟恭喜滿家 夫和婦順敬如賓

형은 우애롭고 동생은 공손하니 가정에 기쁨이 가득하고, 남편은 화애롭고 아내는 유순하여 서로 손님 같이 공경하기를 바랍니다.

입춘이나 대보름 전날 밤에는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 일을 해야 일년 내내 厄을 면한다고 하여 한밤중 냇가에 가서 징검다리를 놓고, 거친 길을 곱게 다듬고, 다리 밑 거지움막에 밥 한 솥 지어다 놓는 등 적선공덕행(積善功德行)을 했다.

상여 나갈 때 상여머리에서 부르는 상엿소리에 다음의 대목이 있다.

입춘 날 절기 좋은 철에 헐벗은 이 옷을 주어 구난공덕(救難功德)하였는가.

깊은 물에 다리 놓아 월천공덕(越川功德)하였는가.

병든 사람 약을 주어 활인공덕(活人功德)하였는가.

부처님께 공양드려 염불공덕(念佛功德)하였는가.

입춘에 각자 맡은 일들을 아홉 번씩하면 한 해 동안 복을 받고, 그렇지 않으면 액을 받는다고도 했다.

그래서 밥을 아홉 번 먹고, 천자문(天字文)을 아홉 번 읽고, 나무를 아홉 짐하고, 새끼를 아홉 발 꼬았다.

나물은 아홉 바구니하고, 빨래는 아홉 가지하고, 길쌈은 아홉 마디 삼고, 실은 아홉 꾸리 감았다.

아홉이란 숫자를 가장 좋은 양수(陽數)로 보았기 때문인데, 가난해도 부지런히 살라는 의미가 담겨있다.

입춘에 농가에서는 보리 뿌리를 뽑아 그 해 농사의 풍작여부를 예견하는 점(占)을 치기도 했다.

뿌리가 세 가닥 이상이면 풍년, 2가닥이면 평년작, 한 가닥이면 흉년이 든다고 했다.

그리고 오곡의 씨앗을 솥에 넣고 볶아서 맨 먼저 솥 밖으로 튀어나오는 곡식이 그 해 풍작이 된다고 믿었다.

입춘 전날을 절분(節分)이라 하는데, 철의 마지막이라는 의미로 “해넘이” 라 고도 한다.

이날 밤에는 콩을 방이나 문에 뿌려 액운을 쫓고, 새해를 맞이했다.

입춘에 내리는 비를 “입춘수(立春水)”라 하는데, 만물을 소생시킨다하여 매우 반겼다.

입춘수(立春水)로 술을 빚어 마시면 남자의 기운이 왕성해져서, 아들을 낳고 싶은 부부가 동침하면 아들을 낳는다고 했다.

입춘시기에 가장 큰 일은 장을 담그는 일이다.

입춘 전 아직 추위가 덜 풀린 이른봄에 담가야 소금이 덜 들어 삼삼한 장맛을 낼 수 있고, 메주는 늦가을(음력 10월)에 쑤어 겨우내 띄운 것이 맛있다고 한다.

입춘 15일간을 5일씩 3후(候)로 나누어 초후(初候)에는 동풍이 불어서 언 땅을 녹이고, 중후(中候)에는 겨울잠을 자던 벌레가 움직이기 시작하며, 말후(末候)에는 물고기가 얼음 밑을 돌아다닌다고 했다.

서울 동대문 밖의 제기동(祭基洞), 전농동(典農洞)은 선농제(先農祭)의 제사에서 유래된 지명이다.

조선왕조 때, 선농단을 짓고 선농제를 지내왔다고 한다.

신라 때부터 농사를 다스리는 신(神)인 신농(神農)에게 풍년을 비는 제사를 지냈다.

입춘(立春) 후 첫 해일(亥日)에 선농제, 입하(立夏) 후 첫 해일(亥日)에 중농제(中農祭), 입추(立秋) 후 첫 해일(亥日)에 후농제(後農祭)라 하여 세 차례 제사를 지냈다.

지방에 따라서는 동짓날처럼 입춘 팥죽을 쑤어먹었다.

팥죽을 집안에 흩어 잡귀를 쫓기도 했는데, 새알심은 넣지 않았다.

함경도 지방에서는 농사를 장려하고 풍년(豊年)을 기원하는 목우(木牛) 놀이를 했는데, 입춘에 나무로 만든 소를 관아(官衙)로부터 민가까지 끌고 다녔다고 한다.

제주도에서는 입춘에 무당의 우두머리인 수신방(首神房)이 맡아서 입춘 굿 놀이를 했다.

마을에 경비가 필요하면 풍물패를 앞세우고 집집마다 방문하여 돈이나 곡식을 구해(乞粒) 집을 수호하는 신(神)인 성주,

옥황상제, 토신(土神), 오방신(五方神)에게 제사를 지냈다.

그리고 신구간(新舊間)이라 하여 일 년에 한 번 대한(大寒) 5일 후부터 입춘 3일전까지 신(神)들이 인사이동을 하는데,

땅위의 모든 신들이 옥황상제께 새로운 임무를 부여받기 위해 하늘로 올라가서 신들이 없다고 한다.

이때 이사하거나 집수리하면 동티(厄)를 막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