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 가 절
♬ 나훈아의 정
당신이날 버리고 말없이 떠났을 때
이 몸은 돌아서서 피눈물을 흘렸다
어차피 떠날바엔 정마져 가져가야지
정만을 남겨두고 어이 홀로 떠나갔느냐
당신이 날 버리고 말없이 떠났을 때
아쇼다라 가슴속엔 피눈물이 흘렀다
또 다시 못올바엔 정마져 가져가야지
정만을 남겨두고 어이 홀로 떠나갔느냐 ..................
이 노래는 2천6백년 전 2월8일 지금의 네팔지방 카필라성에서 아쇼다라 공주가 남편인 싯다르타 왕자를 향해 불렀을만한 노래입니다.
사부대중 들이여!
당신들은 오늘 어디서 오신 것입니까?
집에서 부처님과 멋지게 잘생긴 이 스님 보려고 이곳에 오셨지요.
집을 뜻하는 한문으로 집가(家)자와 나간다는 한문으로 날출(出)자, 이 두 한자를 합해 보면 가출(家出)이 됩니다.
여러분은 가출하신 것이지요.
집을 나왔으니 말입니다.
그러나 가출하면 집에 같이 거주하는 누구에게도 행선지를 밝히지 안이하고 가족과의 동거를 포기하고 무단으로 집을 나온 것을 말하는 것이지요.
우리가 통념상 가출하면 나쁜 의미를 부여하는데 이 두자를 뒤집으면 출가가 됩니다.
오늘 부처님이 집을 뛰쳐나간 날이니 바로 가출한 날인데 우리는 출가라 합니다.
똑 같은 글자의 의미는 매우 다릅니다.
가출이란 언젠가는 되돌아간다는 의미가 있고, 출가라 함은 영원히 돌아가지 않는 의미가 있습니다.
여자가 시집가는 것을 출가한다고 하지요.
가출이나 출가나 집에서 나간다는 뜻은 똑 같습니다.
여기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집이란 것입니다.
생사의 무서운 윤회를 벗어나고 대해탈 대열반을 얻겠다는 굳은 결심으로 일념정진의 대업을 시작하는 사람으로서는 가족과 친지들을 떠나야 그 정신이 순수할 수 있고 정진이 전일할 수 있기 때문에 출가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은 누구라도 긍정해야 될 명료한 사실이라 생각하는 바입니다.
수행할 사람으로서는 반드시 출가가 불가결하다는 것은 두말의 여지가 없겠습니다마는 가(家)라는 이것 곧 집이라는 것은 무엇을 가르킨 것일까. 하는 것을 다시 한번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치문에 보면 출가에는 세 종류로 구분해 놓았습니다.
사친출가(辭親出家) 오도출가(悟道出家) 증과출가(證果出家)가 있는데 이것이 삼종출가입니다.
첫째 가(家)란 곧 집이란 말인데 이것은 유형의 집도 있고 무형의 집도 있다. 예로 음악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을 음악가, 문학을 전업하는 사람을 문학가, 두부를 전문으로 만들어 파는 집을 두부집, 담배를 파는 집을 담배집 이렇게 무엇을 전문성을 띠고 깊이 들어가는 것이면 모두 가(家)라는 글자가 붙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분류의 가(家)는 모두 무형의 가(家)에 속하는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무형의 가(家)란 바꾸어 말할 때 집착이란 말과 상통된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무엇에나 한군데 집착하여 항상 그것에만 정신을 경주 몰두 하게 된다면 가(家)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누에가 고치를 짓고 그 안에 들어 앉아있는 것처럼 정신이 어느 한군데 집착된 그 테두리 안에 사로잡혀 항상 좁은 자기세계에만 전념하고 있다면 이것은 가(家)라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자기 혼자서 생각하고 연구하는 그 방면에만 대하여 정신을 집중시키고 잇는 것을 가(家)라 한다는 그 말입니다.
이것은 분명히 무형의 집일 것입니다.
그와 반대로 기와집, 초가집, 내집 네집 큰집 작은집 이러한 것은 물질적이며 육안으로 볼 수 있는 집이라면 이것은 이설이 있을 수 없는 유형의 집일 것입니다.
불교에서는 유형의 집이 문제되는 것보다 무형의 집이 더 큰 문제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집착이란 가장 무서운 적이며 또한 제거하기에 제일 힘드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이것만 끊어지면 성불이오 열반이오 해탈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앞에 말한 삼종출가의 첫째가 되는,
① 사친출가(辭親出家)란?
장부가 되어 생사윤회의 고통을 벗어나겠다는 확고한 결심을 세운 다음 부모형제와 가족 친지들을 이별하고 떠나게 되는 용기 있는 첫 걸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또 한편으로는 집착과 이상의 집에 갇혀 그 굴레를 탈출하지 못하다가 그것을 헤치고 부수어 밖으로 뛰어 나오는 것도 이 출가에 해당되는 것이라 보아야 할 것입니다.
② 오도출가(悟道出家)란?
이제부터는 자기가 가야 할 옳은 길을 바로 찾았다는 의미입니다.
목적지까지 가는 데는 많은 길이 있습니다.
험하고 먼길도 있고, 높고 낮은 길도 있고, 좁고 넓은 길도 있으며 이런 별별 길이 허다한 가운데서 오랫동안 자세히 관찰한 결과 가장 옳은 길을 찾아냈다는 뜻입니다.
도(道)란 곧 길입니다.
바둑을 두는 것을 기도(棋道)라 하고, 낚시질하는 것을 하는 것을 조도(釣道)라 하고, 먹기를 좋아하는 것을 식도(食道)라 하는 것입니다.
도(道)라고 하니 대단한 것처럼 생각할지 모르지만 자기가 어느 한 곳으로 마음을 쏟게 되고 그쪽을 추구하는 것을 도라 할 수 있습니다.
육신으로 가는 길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정신적으로 가는 길을 말하는 것입니다.
불교에 있어 이제부터는 사혹에 빠지지 않고 성불의 길로 바로 찾아 갈 수 있는 옳은 길을 얻었다는 것을 오도라 할 것입니다.
여기에 있어 흔히 오도와 성불을 혼동하여 생각하는 분들이 많다는 것은 매우 잘못된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오도란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부처 되는 바른 길을 알았다는 것이며 이제부터 그 길을 부지런히 걸어가야 최종 목적지가 되는 부처라는 곳에 도달될 수 있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길을 처음 알게되는 것을 가지고 목적지로 오인해서는 커다란 착오가 생기는 것입니다.
길하나 옳게 찾는다는 것이 결코 용이한 일이 아닐 것입니다.
이제부터는 혼미에 헤매지 않고 밝고 빠르고 바른 길을 찾았다는 그것이 바로 오도출가라 하는 것입니다.
③ 증과출가(證果出家)란?
이것이야말로 진정 완전무결한 출가입니다.
증과라는 뜻은 목적지의 정상을 정복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오랜 수행과 정진의 길을 걸어 이제는 다시 더 갈곳 없는 마지막 최고지가 되는 이것을 삼계 출가라고도 하는 것인데 삼계화택을 완전히 벗어나서 영원히 업고에 시달리지 않는 해탈의 경지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여기까지 이르러야 출가의 뜻을 다한 것이며 또한 이렇게된 것을 출가라 하는 것입니다.
출가에 대해서 신라의 원측법사는 형출가(形出家)와 심출가(心出家)의 두 종류가 있다고 제시하였습니다.
형출가(形出家)란?
집을 떠나 산간의 수도처에서 출가생활을 하는 것이나 만약 형식적으로 출가생활을 하고 승려의 위의(威儀)와 덕성을 잃어버리면 진정한 출가가 안 된다고 하였습니다.
심출가(心出家)란?
매우 대승적인 뜻을 지니고 있으나 설령 세속인 일지라도 청정한 계율을 받들어 가지면 비록 가정에 있다 할지라도 참다운 출가인 것입니다.
현대적 의미를 생각할 때 심출가적인 사상이야말로 자리이타를 표방하는 대승적인 실천수행을 하는 출가상인 것입니다.
중생제도를 구현하기 위해 한밤중에 왕성을 떠난 싯다르타 태자가 깨달음을 성취함으로써 모든 이에게서 마땅히 존경받는 대스승이 된 역사적 사실이 형출가라 한다면 자기 수행만을 위하는 목적이 있는 출가가 아니라 중생과 사회를 위하여 헌신할 수 있는 심출가자를 이 시대는 더욱 간절히 바라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는 요즘의 출가형태를 셋으로 신출가(身出家) 심출가(心出家) 완출가(完出家)로 구분하고자 합니다.
신출가(身出家)란?
몸은 출가하여 그 모습은 수행자 같아 보이나 마음은 아직 속가를 벗어나지 못한 출가인 것입니다.
심출가(心出家)란?
마음은 이미 출가 수행자와 같은 심정으로 살아가고 있으나 몸은 아직 속가에 머물러 세속의 행동을 영위하고 있는 것입니다.
완출가(完出家)란
몸과 마음 모두가 세속과 인연을 끊고 출가사문으로 정진하는 것을 완출가라고 쉽게 말하고자 합니다.
그러니 그러게 말이지....
스님인데 스님 같지 않은 자.
불자인데 스님 같은 자.
스님이니 스님인 자.
불자님들은 스님 존경합니다.
그럼 그렇게 스님을 존경한다면 당신의 자식이 출가하여 스님이 된다고 한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여러분!
오늘의 화두는
※ 큰소리로
“아버지 어머니 나 출가해요 한다면...”
“당신의 자식을 스님으로 만들 수 있습니까?”
[내 자식이 출가한다면}
“나무아미타불”
싯다르타 출가 예화
싯다르타는 드디어 어느 날 밤 왕궁을 떠나기로 결심을 했다.
그는 마지막 밤이나마 모든 사람들을 기쁘게 해주고 싶었기에 아내인 야쇼다라와 함께 궁녀들의 노래와 춤을 즐거운 듯이 구경을 하였다. 그리고 밤이 깊었을 때 아내 야쇼다라와 아들인 라후라가 평화롭게 잠든 얼굴을 번갈아 보았다.
이 세상에서는 보기 드문 평화가 어머니와 아기의 잠든 얼굴에 깃들어 있어 보였다.
싯다르타는 속으로 그들에게 용서를 빌었다.
모든 사람들이 깊이 잠든 한밤중에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토록 법석이던 궁중이 이제는 무덤처럼 적막하였다.
넓은 대청마루에서는 조금 전까지도 노래하고 춤추던 궁녀들이 여기저기 쓰러져 자고 있었다.
피로에 곯아떨어진 궁녀들의 몰골은 아름답게 치장하고 있을 때와는 너무나 달랐다. 어떤 궁녀는 이를 갈고, 어떤 궁녀는 입을 벌리고 침을 흘리고, 어떤 궁녀는 이불을 걷어차 추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이런 광경을 본 싯다르타는 그들이 가엾게 보였다. 그리고 또 거기서 인간의 본 모습을 본 것 같았다.
밖으로 나온 그는 낮은 목소리로 마부 찬다카를 불러 깨웠다.
그리고 자기의 애마를 끌고 나오도록 하였다.
찬다카는 태자의 심상치 않은 행동에 곧 마음에 집히는 것이 있었지만 태자의 엄숙하고도 비장한 표정을 보고 감히 입을 열지 못하였다.
싯다르타는 드디어 무사히 성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성문에는 문지기가 있었지만 공교롭게도 그 때 문지기는 깊은 졸음에 빠져서 태자의 일행이 조심조심 성문을 열고 나가는 것도 모르고 있었다.
말에 오른 싯다르타는 생노병사(生老病死)의 문제를 해결하기 전에는 돌아오지 않으리라는 결심을 다시금 굳게 하면서 말에 채찍을 했다.
밤하늘 별들만이 지켜보는 고요한 어둠 속을 태자와 마부는 입을 다문 채 말발굽 소리만 들으면서 아누피아 고을을 흐르는 아노마강으로 길을 재촉하였다.
먼동이 틀 때 아노마 강가에 이른 싯다르타는 말에서 내려 마부의 손을 잡고 부드럽게 말하였다.
“찬다카, 나를 위하여 그 동안 수고가 많았다. 이제 너는 말을 끌고 궁으로 돌아가라.” 이것이 태자와의 이별임을 안 찬다카는 흐느껴 울었다.
싯다르타는 강물에 얼굴을 씻고 허리에 찼던 칼로 자기의 머리털을 잘랐다. 그리고 몸에 지녔던 패물을 모두 찬다카에게 내주면서 말하였다.
“이 목걸이를 부왕께 올려라. 그리고 싯다르타는 죽은 것으로 생각하시라고 아뢰어라. 나는 내 뜻을 이루기 전에는 죽는 한이 있더라도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나는 생노병사의 괴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출가의 길을 걷는다고 말씀드려라.” 그리고 다른 패물을 주면서 또 부탁하였다.
“이것은 어머님과 라후라의 어머니에게 드리어라. 그리고 내가 출가하여 사문이 되는 것은 세속을 떠나고자 함이 아니라 참된 진리를 깨달아 인생의 근본문제를 해결하기 위함이라고 말씀드려라. 그리고 내가 이 뜻을 이룬 뒤에는 곧 돌아온다고 말씀드려라.”
그때 마침 사냥꾼이 지나갔다.
싯다르타는 그 사냥꾼을 불렀다. 그리고 호화로운 태자의 옷과 헌 누더기 사냥꾼의 옷을 바꿔 입었다.
이제 머리를 깎고 누더기를 걸친 싯다르타는 태자의 모습이 아니었다.
누가 보아도 한 사람의 구도자의 모습이었다.
“찬다카, 이제 우리는 여기서 헤어지자. 만나면 헤어지는 것이 이 세상의 인연이 아니냐. 자, 그럼 잘 가라. 찬다카.”
찬다카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서 통곡을 하였다.
싯다르타는 마지막으로 애마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 동안 너도 나를 위하여 수고가 많았다. 고맙다. 잘 가거라.”
말도 주인과의 이별을 슬퍼하는 듯 머리를 들어 흔들면서 길게 울부짖었다.
이 날이 2월8일로 부처님의 출가의 날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