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지 법문 예1
"나무 아미타불"
"동지 팥죽공양 드셨습니까?
사부대중 여러분!
올 한해도 잘 보내시고 이렇게 한자리에 모여 함께함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오늘은 동지(冬至)입니다.
동지는 글자 그대로 ‘겨울에 이르렀다’ ‘겨울에 도달했다’는 뜻으로, 1년 가운데 겨울의 한복판을 의미하는 날입니다.
동지는 다 아시다시피 태양이 가장 남쪽으로 기울어져 밤의 길이가 1년 중 가장 긴 날고, 낮이 가장 짧은 날입니다.
오늘이 지나면 낮의 길이가 쌀톨 길이 만큼 조금씩 길어지고, 밤의 길이는 조금씩 짧아집니다.
옛 날에는 태양이 기운을 회복하기 시작하는 날이라는 의미에서 동지를 작은 설이라 하여 새해 첫날과 같은 명절로 삼았습니다.
지금은 양력이 생활화 되어있어, 동지가 양력으로 한해의 끝에 자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동지를 맞아 지난 한해를 돌아보고, 반성할 것은 반성하고, 계승할 것은 계승하는 마음가짐을 갖는 의미가 있습니다.
예로부터 동지에는 팥죽을 쑤어 가족이나 이웃과 나누어 먹는 아름다운 풍습이 있습니다.
팥죽의 붉은 색이 삿된 잡귀를 몰아내는데 효과가 있다고 믿었습니다.
동짓날 팥죽을 먹으면 잔병이 없어지고, 흉한 기운을 퇴치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습니다.
오늘 동지법회에 동참하신 불자 님들께서도 법회가 끝난 후에 팥죽을 드시면서 잘못된 것은 저 멀리 쫓아 버리고, 좋은 일만 계속 될 수 있기를 기원하셨으면 합니다.
이처럼 불교는 우리 민족 고유의 풍속을 지금까지 잘 계승해 오고 있습니다.
불교만의 의식이나 전통을 고집하지 않고, 우리 민족의 아름다운 풍속을 받아 들여, 생활 속 깊숙이 자리하고 있는 것입니다.
삼국시대에 불교가 전래된 후 1700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오랜 기간 동안 불교는 단 한 번도 다른 문화를 배척하거나 부정하지 않았습니다.
민족고유의 전통을 받아들이며 호흡을 같이했습니다.
지금은 비록 절에 다니지 않는 분들도 그님의 조상들은 누구나 다 부처님 가르침에 의지해 살아오셨습니다.
이것이 불교의 자비와 연기 즉, 인연의 바탕에서, 이 땅에 꽃을 피운 우리 전통문화와 유형무형의 불교문화인 것입니다.
불자 여러분!
여러분들이 중고등학교에 다니실 때 수학여행을 어디로 가셨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아마 한 분도 빠짐없이 경주 불국사나 설악산 신흥사, 속리산 법주사 등으로 수학여행을 다녀오셨을 것입니다.
선생님이나 학생들이 모두 불교를 종교로 갖고 있어, 사찰로 수학여행을 다녀 온 것은 아닙니다.
천년고찰로 수학여행을 간 까닭은 불교가 종교 이전에 우리 민족과 함께 해온 문화유산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불교문화재에는 우리 조상들의 얼과 숨결이 담겨 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1700년의 한국불교 역사를 이어오면서 우리 겨레의 마음 깊이, 또한 실생활 깊숙이 불교는 뿌리를 내리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불교의 수승한 복으로 이 땅에 아름다움을 장엄한 것입니다.
불자 여러분. 우리 민족은 5000년의 역사를 자랑하고 있습니다. 우리 보다 긴 역사를 지닌 민족이나 국가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정말 오랜 역사를 지닌 민족이라는 사실은 자부심을 느낄 만합니다.
900여 회가 넘는 외침을 받으면서 수많은 문화재들이 사라졌지만, 지금도 적지 않은 민족문화유산이 우리 곁에 남아 있습니다.
국가에서는 선조들의 정신과 문화가 배여 있는 문화유산을 잘 보존하고 계승해 후대에 물려주기 위한 목적으로 국보와 보물을 지정해 놓았습니다.
우리나라 문화유산 가운데 80% 이상이 불교문화유산입니다.
경주 석굴암과 합천 해인사 팔만대장경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기도 합니다. 이 같은 사실은 불자뿐 아니라 우리 국민 모두가 자랑스러워할 일입니다.
우리의 민족문화유산을 잘 보존하고 관리하는 일을 누가 해 왔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숱한 고초를 이겨내며 지켜온 것이 누구입니까.
그것은 바로 불교인들이었습니다.
비바람과 더위, 추위를 무릅쓰고 지켜낸 분들이 바로 우리 스님들이며 신도들입니다. 이 같은 사실을 국가는 물론 일반 국민들도 잘 알아야 합니다.
불교문화재는 불교만의 문화재가 아니라 우리 민족의 문화유산입니다.
국민 모두가 관심을 가져야 하며, 국가는 잘 보존해야할 책무가 있습니다.
특정 종교의 문화재로 인식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은 태도입니다.
선조들이 물려준 문화유산을 우리 시대에 잃어버리거나 훼손된다면 부처님과 역대조사들에게 얼굴을 들 수 없을 것입니다.
대한민국에 살면서, 선조들이 물려준 민족문화유산을 부정하거나 소홀하게 여기는 것은 잘못된 자세입니다. 더구나 국가 운영을 책임지고 있는 정부와 여당이 민족문화유산을 홀대하거나 무시한다면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잃어버리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대한민국 헌법 제9조에는 “국가는 전통문화의 계승, 발전과 민족문화의 창달에 노력하여야 한다.”고 명확히 규정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오늘은 동지입니다.
1년 가운데 낮이 가장 짧고, 밤이 가장 긴 날입니다.
또한 오늘은 팥죽을 이웃과 나눠 먹으며, 삿된 것을 물리치는 날이기도 합니다.
지금 우리 불교계의 현주소는 마치 동지를 맞이한 듯 합니다.
불교는 물론 민족문화유산을 무시하고 부정하는 현실에 직면해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절망하거나 좌절해 있을 수만은 없습니다.
1700년의 역사를 우리 민족과 함께 해온 불교를 지키는 일은 지금 우리 불자들의 책무이기도 합니다.
또한 민족문화유산을 바르게 보전하여 후대에 물려줄 의무도 우리에게 있습니다.
이러한 때일수록 우리 불자들은 부처님 제자로서 본연의 자세를 잃지 않고 수행과 포교에 전념해야 합니다. 그러면서 우리가 보유한 국가의 불교문화재를 순수하게 우리의 수행과 포교의 정신으로 보존 계승해야 합니다.
부족하면 부족한대로 소탈하게 관리 유지 보존에 힘써야 할 것입니다. 더 이상 민족문화 유산의 소중함을 모르고, 국민과 소통하지 않는 정부와 여당에 기대를 갖지 않아야 합니다.
비록 가난하고 소박하게 살지라도, 우리의 갈 길을 가야하고, 불교의 힘을 길러야 합니다.
오늘 동지법회가 위기에 처한 민족문화유산에 대한 천박한 인식을 갖고 있고, 국민과 소통하지 않는 현 정부에 대해 죽비를 내리는 의미 있는 날이 되었으면 합니다.
오늘 동지법회에 동참하신 신도 여러분들이 우리 문화에 대한 소중함을 재인식하고, 민족문화유산의 보고(寶庫)인 불교와 스님들을 외호하는 역할을 해 주시기를 당부 드립니다.
그리고 이러한 때일수록 더욱 열심히 기도하고 정진하여 불자 본연의 자세를 지켜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새해에는 서원하는 모든 일 원만 성취하시길 기원합니다.
"나무 아미타불.
동지 법문 예2
반갑습니다.
오늘은 이렇게 또 동지를 맞아 불자님들의 걸음걸음마다 항상 팔부신중님의 가호지력이 충만하실 겁니다.
오늘은 동지 기도로 묵은 한해의 모든 액운을 떨쳐버리고, 오는 새해에는 부처님의 가호지력으로 좋은 일만 생기도록 기도 하고, 새로 맞이하는 해의 달력을 나뉘어 드리는 날이기도 합니다.
동지는 일년 365일 가운데서 밤의 길이가 가장 긴 날, 즉 상대적으로 낮의 길이가 짧은 날입니다.
입춘으로부터 시작하는 24절 후 가운데서 가장 마지막 절기입니다.
전설에 의하면 공공의 아들이 동지 날에 죽어서 전염병 일으키는 귀신이 되었는데, 이 역귀가 팥죽을 두려워하므로 이를 좇기 위한 것이라 합니다.
그리고 팥이 지닌 빛깔 그 자체가 붉기 때문에 붉은 빛깔과 푸른 빛깔은 원시 신앙으로 보아 귀신을 쫓는 힘이 있다고 믿는데 더 큰 의미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동지날이 되면 어느 가정에서나 팥죽을 쑤어먹고 대문과 벽과 온 집안에 돌아다니며 팥죽을 뿌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부터 동지를 작은 설이라고 했습니다.
동지가 음력으로 상순에 들면 이를 애동지라 하고, 음력으로 하순에 들면 노동지라고 합니다.
애동지가 드는 해에는 아이들에게 좋고, 노동지가 드는 해에는 노인들에게 좋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풍속은 동짓날에는 누구나 한 살씩 더 먹는데 어린아이들은 빨리 크기를 원하기 때문에 동지가 며칠 간이라도 빨리 들면 좋아 할 것이고, 또한 노인들은 오래오래 살기를 바라기 때문에 동지가 늦게 들면 몇 날을 더 살아야 한 살을 더 먹게 되므로 즐거워한다고 하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그래서 각 가정에서는 보통 애동지가 드는 해에는 떡을 해서 먹었고, 따라서 우리불자들은 이 날을 어둠을 몰아내는 날로 삼자는 것입니다.
그리고 동짓날에 팥죽에 얽힌 일화가 우리불교에도 많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불교가 우리나라에 들어오기 전부터 지내오던 풍속이 불교와 융합되어 하나의 불교 명절처럼 자리 잡게 된 것입니다.
요즘은 격변하는 현대문명의 이기로 인해서 절망에 빠져 있는 사람이 많습니다.
재앙이나 복은 빌어서 오고 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지은 행위의 결과에 따라 받을 뿐입니다.
그 누구도 대신하지 못하고 외상처럼 뒤로 넘길 수도 없는 것입니다.
춥고 배고픈 이웃에게 한 그릇의 따뜻한 죽이라도 나누어 먹을 때 재앙은 사라지고 복은 옵니다.
재앙이 사라지고 복이 오는 것은 멀리서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에서 일어난 것을 실천으로 옮길 때 비로소 시작이 됩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재앙이 영영 사라지고 언제나 행복과 기쁨이 가득한 삶이 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우리의 삶은 그렇지 않습니다.
몸은 고통스럽고 마음은 불만족에 가득합니다.
순산 순간 기쁨과 행복이 오지만 그것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순간의 기쁨과 만족을 위하여 언제나 앞을 알 수 없는 여행을 계속하고 있지 않습니까?
무엇을 괴로워하고 무엇을 슬퍼합니까?
무엇을 기뻐하고 무엇을 행복하다고 합니까?
세상의 모든 일은 순간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의 눈에는 백만원을 가진 사람보다는 천만원을 가진 사람이 더 행복해 보입니다.
작은 아파트에 사는 사람보다는 큰 아파트를 가진 사람이 더 행복해 보입니다.
이 모든 것은 중생의 작은 잣대를 가지고 서로 비교하여 재어본 것으로 여기에는 행복도 불행도 없습니다.
모두가 똑 같을 뿐입니다.
잘 난 사람은 백보이고 못난 사람은 오십입니다.
오십보, 백보 안에서는 견주어 보고, 달아보고, 재어보아도 틀리는 것은 없습니다.
다만 자신이 집착하는 바에 따라서 커 보이기도 하고, 작아 보이기도 할 뿐이지 작은 것도 큰 것도, 무거운 것도 가벼운 것도, 긴 것도 짧은 것도 모두 똑 같은 중생의 모습일 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의 잣대를 더욱 많이 커지고 모든 것을 자신의 잘난 것만 가지고 평가를 합니다.
이번 동지에는 세속의 행복과 불행을 재는 중생의 잣대를 버리고 삼보의 잣대를 가지고 모든 것이 스스로 지은 행위 결과임을 바로 알고 복을 바라지말고 복을 짓도록 합시다.
불자 여러분!
동지에 진정한 의미를 알고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소외된 이웃들 대한 불자로서 배려로 내 마음의 등을 밝히고, 내 가족의 등을 밝히고, 내 나라에 등을 밝히고 온 누리에 부처님의 가르침에 실천하는 그 등을 밝혀 또 한 번 드리워진 불성의 끈을 힘껏 잡아야 하겠습니다.
성불합시다.
나무아미타불
동지 팥죽의 예화
때는 신라 선덕여왕 시대 서라벌.
선덕여왕은 얼굴이 뛰어나게 아름다웠으며 또한 부처님께 대한 신심이 아주 돈독하여서 나라를 다스리면서도 아침저녁으로 황룡사에 가서 예불을 올리는 일을 하루도 빠지지 않았다.
그렇게 열심히 부처님을 믿고 있던 선덕여왕이 어느 날 저녁 때 예불을 드리려 황룡사로 가던 도중이었다.
난데없이 어떤 사람이 여왕의 행차에 뛰어들어 소란을 피우는 것이었다.
선덕여왕은 그 사람을 불러 소란을 피우는 연유를 물었다.
“당신은 무엇 때문에 이렇게 소란을 피우는 게요?”
그러자 그 사람은 여왕께 여쭈었다.
“미미, 황공하오나 소인은 지귀(志鬼)라고 하는데 평소부터 마마를 짝사랑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늘 여왕마마께서 예불을 모시러 가는 행차를 몰래 숨어서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나의 행차를 늘 지켜보고 있었단 말이요?”
여왕은 깜짝 놀라서 되물었다. 그러자 지귀가 대답했다.
“예 그러하옵니다. 하오나 오늘은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 여왕마마께 제 마음을 털어놓으려고 행차에 뛰어 들었던 것입니다.”
선덕여왕은 지귀의 그 말을 듣고는 하는 수 없이 지귀를 황룡사까지 데리고 가게 되었다. 이윽고 선덕여왕과 지귀 일행이 황룡사에 도착하여 황룡사 문 앞의 9층 탑 곁에 이르자 선덕여왕은 안으로 들어가며 지귀에게 말했다.
“내가 부처님께 예불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당신을 데리고 갈 것이니 이곳에서 잠깐만 기다리도록 하시오.” 하고는 안으로 들어갔다.
밖에 남게 된 지귀는 선덕여왕이 나오기를 기다렸지만 한참 동안을 기다려도 여왕 나오지 않자 기다리는 것이 애가 타서 그만 마음 속에서 심화(心火)가 일어나 타 죽고 말았다.
그런 일이 있고 난 후에 죽은 지귀는 귀신이 되어 여기저기를 떠돌아다니며 행패를 부렸다. 그래서 신라 천지에는 지귀 귀신의 작폐가 심하여 많은 사람이 해를 입게 되었다.
평소에 지귀는 빨간 것을 제일 무서워했다고 한다.
이러한 지귀 귀신의 작폐를 방지하기 위해서 지귀기 제일 무서워하는 빨간색의 곡식으로 죽을 끊여 밤이 제일 길고 작은 설이라고 하는 동지 날 집집마다 대문에 뿌리고 길에도 뿌렸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