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학사전-ㅅ부-16
서(西)
서방(西方). 八月. 오행의 庚辛申酉. 白色. 가을.
서경보(徐京保
서경보(1914년10월10일 제주도~1996년6월25일)는 한국의 승려이며 불교 지도자이다.
법명은 일붕(一鵬)이다.
1932년 고향인 제주도에서 출가하여 승려가 되었고, 동국대학교 불교학과를 졸업하고 미국의 템플대학교에서 비교종교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동국대학교를 비롯하여 여러 대학의 교수를 역임했고 불국사 주지도 거쳤다.
제4공화국의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
제5공화국의 국가보위입법회의 입법의원.
1988년에는 자신이 원로의원까지 지냈던 조계종에서 나와 대한불교 일붕선교종을 창종해 종조에 올랐다.
저서에 [불교성전 佛敎聖典] [불교사상교양전집] [서경보인생론전집]등이 있고, 국민훈장 동백장을 수여 받았다.
1995년과 1996년에 2년 연속 노벨 평화상 후보로 추천된 바 있다.
서낭
무속용어의 하나.
구토, 지방, 마을의 수호신을 말한다.
서낭당
서낭당은 한국의 무속신앙에서 신을 모시는 사당이다. 중국의 성황당(城隍堂)에 유래하였으며, 다른 이름으로는 선왕당(仙王堂)이라고도 한다.
1. 고대 중국에는 성을 수호한다는 성지(城池) 신앙이 있었는데 이것이 남북조 시대 이래로 성황으로 변하여 일반화되었고 송나라 때에 크게 유행하였다.
한국은 중국으로부터 성황신앙이 유입되었는데, 문헌 기록에 등장하는 가장 오래된 기록은 [고려사]에, 고려 문종 때에 선덕진(宣德鎭)에 쌓은 새로운 성안에 성황사를 지어 봄과 가을에 제사를 지내게 했다는 기록인데, 고려 때에는 국가에서 공적으로 제사를 올리던 사당으로서 고려 고종이 몽골의 침공을 막은 공을 서낭신에게 돌려, 서낭신에게 신호(神號)를 더하기도 하였다.
2. 서낭당은 주로 국가에서 설립하고 운영하였으나 지방의 유력한 호족들이 독자적으로 설치하는 경우도 있었는데, 이 경우에는 호족 집안의 시조 및 그 땅에 연고가 있는 위인들이 서낭신(城隍神)으로 모셔졌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기록된 것을 보면 곡성성황신 신숭겸, 순천부성황신 김총, 의성부성황신 김홍술 등이 있다. 또한 유금필을 가림 성황신으로 모신 사례도 있다.
조선 시대에 이르러서는 산천이니 성황이니, 풍운등 여러 명칭으로 불리던 단들을 하나의 성황당으로 통합하여 재배치하고, 군현마다 사직단과 여단을 일괄적으로 설치하여 봄과 가을로 국가가 주도하여 정기적으로 수령이 제사를 지내게 하는 한편, 국난이나 가뭄이 닥쳤을 때 임시로 서낭제를 지내기도 했다.
3. 조선 중기에 이르러 서낭당을 지방 유력자들, 특히 성리학만을 정도로 받들며 그 외의 가르침을 사도(邪道)로 몰았던 사림파 세력이 장악하게 되면서 서낭당에 대해서도 음사(淫祀)로 보았기 때문이다.
조정에서 서낭당에서의 관 차원에서의 제사를 금지하게 되면서 서낭제의 성격도 관헌적인 것에서 민간적인 것으로 바뀌었음을 [영가지]나 [임영지]등에서 확인할 수 있다.
서골(鼠骨)
당사주 골격의 하나.
밝은 빛과 뜨거운 열을 기다리는 장기간의 인내심과 추
진력이 봄날을 향해 나가는 정력의 소유자다.
사소한 일이라도 즐겁고 행복하게 생각하며 성공의 만족보다 본질적인 향상을 즐거워하기 때문에 결과를 중시하기보다는 오늘의 활동을 중지하거나 내일의 불행 등이 예견될 때 참을 수 없는 불안감과 초조를 느낄 만큼 추진력이 강하다.
어떤 곤경도 이겨내는 강인한 정신력과, 한 번 추구하면 끝까지 추구하지 않고는 배기지 못하는 격렬한 정력을 비장한 인내와 추구심의 소유자이다.
절벽이라도 뛰어 오를 수 있는 집착력은 일단 목적이 정해져야 하며 목적이 정해지기까지는 상당한 망설임도 있다.
천사와도 사귀고 악마와도 통할 수 있는 인내력과 추진력은 친구들과 아무렇게나 어울리지 않고 고독하기도 하고, 충분한 이해와 협동보다는 스스로의 결정과 추진력만 고집하기 쉽기 때문에 가족들로부터도 고립되어 고독을 맛보기 쉽다.
차분하고 착실하게 정립된 목표가 설정만 되면 놓치지 않는 추진력과 어떤 곤경도 견디고 참는 인내의 정신이 재산 목록의 제1호이다.
이 정신력으로 인해 인생의 빛을 보게 될 것이다.
서방세계 증장천왕(增長天王)
사천왕(四天王)의 하나.
자신의 위엄과 덕으로써 만물이 태어날 수 있는 덕을 베풀고 있다하여 증장천왕이라 한다.
오른손에는 용을 쥐고 왼손에는 여의주를 쥐고 있으며, 갑옷으로 단단히 무장을 하고 있다.
부하로는 사람의 정기를 빨아먹고 사는 구반다와 아귀의 두목인 폐례다가 있다.
서방정토
무속용어의 하나.
아미타물이 관장하는 서쪽으로 10만억 불토를 지나 있다는 이상향 의 세상을 이르는 말이다.
서방정토(西方淨土)
아미타불의 정토, 곧 극락세계. 서방에는 다른 여러 나라도 있거니와 아미타경에, 여기서 10만억 국토를 지나서 한 세계가 있으니, 이름을 극락이라 함.
말미암아 특히 아미타불의 국토를 서방정토라 한다.
서봉안(瑞鳳眼)
눈의 위 뚜껑에 쌍꺼풀이 있으며 눈머리와 눈 끝이 가지런하고 흑백이 분명하며 웃는 모양.
서봉안은 옆을 볼 때 눈알만 움직여 보며 얼굴은 움직이지 않으며 눈에 광채가 있으며 높은 벼슬을 하게 되며 정계에 이름을 떨치게 되며 귀함이 따른다.
서산대사
불교의 고승으로 휴정이며 호는 서산 또는 청허당이라 한다.
조선 중종선조 시대의 승려로 임진왜란 때 제자 송운 처영 등 승병 3천을 이끌고 명나라 군사를 도운 승병장군이기도 하다.
선과에 합격 선종, 교정의 판사가 됐으나 벼슬을 내놓고 금강산으로 들어갔다가 묘향산으로 갔다.
조선 불교를 선종인 조계종으로 일원화시키는 역할을 했다.
유불도가 궁극적으로 일치한다고 설파하였다.
서산휴정(西山休靜)
휴정은(1520-1604) 법명, 성은 崔씨 완산 사람. 자는 현응(玄應) 호는 청허(淸虛), 서산(西山). 9,10세에 양친을 잃고 과거에 낙방하여 지리산에 들어가 경전을 공부하고는 숭인(崇仁)에게 출가하다.
21세에 영관(靈觀)에게 인가를 받고 만행(萬行)하다가, 1589년 정여립의 옥사에 무업(無業)의 무고(誣告)로 체포되었으나 선조(宣祖)가 오히려 상을 내리다.
1592년 의주에서 선조의 명으로 도총섭(都總攝)이 되어 의승(義僧) 5천명을 인솔하여 왜란(倭亂)에 대처했다.
후에 금강산, 묘향산, 두륜산에서 가풍을 선양하다.
묘향산 원적암(圓寂庵)에 제자들을 모아놓고 설법 뒤에 입적.
서왕모
무속용어의 하나.
중국 곤륜산에 산다는 여신으로 사람과 같이 생겼으나 표범의 꼬리에 호랑이의 이빨, 휘파람을 잘 불고 머리 꾸리 개를 꽂았으며 동굴에 살고 하늘의 재앙과 오형을 관장한다고 한다.
성은 양 또는 구, 이름은 회 또는 완령, 곤륜산 요지연이란 연못가에서 주나라 목왕이 서왕모를 면회하여 목왕을 위하여 연회를 베풀고 신선이 되기를 권하며 천도를 주었다고 한다.
서원(書院)
서원(書院)은 조선 중기 이후 설립된 사설 교육 기관이며, 유교의 성현에게 제사를 지내던 곳이다.
1. 서원의 명칭은 당나라 현종 때 여정전서원(麗正殿書院) 집현전서원(集賢殿書院) 등의 설치에서 유래하였다.
원래 내외의 명현(名賢)을 제사하고 청소년을 모아 인재를 기르는 사설기관이었는데, 선현을 제사하는 사(祠)와 자제를 교육하는 재(齋)를 합하여 설립되었다고 한다.
2. 조선은 건국 초기부터 유교 중심 정책을 써서 고려의 사원(寺院)을 대신하여 서재(書齋) 서당(書堂) 정사(精舍) 선현사(先賢祠) 향현사(鄕賢祠) 등을 장려하였다.
세종은 특히 이를 장려하여 상을 준 일이 있었다. 그러나 이때의 서원은 재와 사의 두 기능을 겸한 것이 못 되었으니 1542년(중종 37년) 풍기군수 주세붕이 순흥에서 고려의 학자 안향을 모시는 사당을 짓고 이듬해 백운동서원이라 한 것이 조선 최초의 서원이었다.
그 후 전국 각지에서 많은 서원이 생겼으며, 1550년(명종 5년)에는 이퇴계의 건의로 임금이 백운동서원에 소수서원이라는 액(額,간판)을 하사하고 책 노비 전결(田結) 등을 주어 장려하였다.
이것이 사액서원(賜額書院)의 시초가 되었으며 마침 황폐해 가는 향교에 대신하여 국가의 보조를 받는 서원이 각처에 설치되었다. 그리하여 명종 이전에 설립된 것이 29개, 선조 때는 124개, 숙종 때에는 1도에 80~90개를 헤아리게 되었다.
3. 서원은 명목상으로 성리학을 연구하고 선현을 제사지낸다는 설립 목적을 가지고 있었고, 그밖에도 지방 사족의 지위를 강화해 주는 기능도 가지고 있었다.
사화로 말미암아 향촌에 은거하여 생활하던 사림의 활동 기반이었으며, 임진왜란 이후에 급속히 발전한다.
서원은 유학의 성현들을 모시는 사당 또는 사묘의 역할, 향약 등의 향촌 질서를 정하고 백성들을 계도하는 역할, 단순한 교육이 아닌 학문 연구와 발전의 기능을 하는 연구소 역할을 담당했다.
그러한 역할을 담당함으로써 향촌의 사림을 결집하는 역할도 하게 된다.
또한 서원은 교육 기관이므로 정치적 반대 세력으로부터 견제를 적게 받는다는 이점이 있고, 문중 서원의 경우에는 자기 문중을 과시하는 효과도 있기 때문에 시대가 내려올수록 번창하게 되었다.
서이(鼠耳)
쥐귀, 서이(鼠耳) 쥐 귀는 상부가 재껴지고 하부는 뾰족한 형으로 비록 눈썹 위까지 붙었다 해도 어질지 못하다.
도벽심이 많아 항상 남의 물건을 훔치는 습성이 있으므로 형옥을 면할 날이 없다.
서인(庶人)
사람의 다섯 품계의 오위(五位)의 하나.
4급(차중급)의 2번이다. 관직에 오르지 않고 일반에 머무는 사람 혹은 면천을 했으나 벼슬의 품계는 받지 않은 사람을 서인이라 한다.
서형(鼠形)
서형(鼠形)은 쥐의 형상. 눈자위나 눈동자가 작고 둥글며 코도 작고 입이 뾰족하고 이(齒)가 잘고 안으로 옥았으며 수염이 드물고 신체가 작다.
석가(釋迦)와 모니(牟尼)란.
석가는 샤카족 즉 부족의 이름이고, 모니는 위대한 성자의 님이라는 뜻.
석가모니불(釋迦牟尼佛)
대웅전의 주불로 봉안, 응진전, 나한전, 영산전, 팔상전에도 주불로 봉안 됨. 협시보살로 좌측에 문수보살과 우측에 보현보살, 좌측에 관음보살과 우측에 허공장보살 또는 좌측에 관음보살과 우측에 미륵보살로 배치함.
석가모니불(釋迦牟尼佛)
불교의 개조. 기원전 623년 인도 가비라성(迦毘羅城)의 성주 정반왕(淨飯王)과 마야(摩耶)부인의 아들로 룸비니 동산 무우수(無憂樹)아래 태어났다.
석가(釋迦)는 석가족을 이르며 모니(牟尼)는 성자(聖者)다.
즉 석가종족의 성자라는 의미다.
범어로는 사캬무니. 능인(能仁) 능인적묵, 황면노자(黃面老子) 석씨(釋氏)라고 풀어 쓴다.
성(姓)은 고타마, 이름은 싯다르타이다.
태어나는 순간 동서남북 사방으로 일곱 걸음을 걸으며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을 외쳤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이러한 인간의 선언은 그로부터 전무후무했다.
석가모니의 탄생선언이자 진리불멸의 위대함을 선포한 것이다.
태어난 지 7일 만에 어머니 마야부인이 죽자 이모 마하파사파제의 손에서 자랐다. 자라는 동안 여러 사상과 철학, 문학과 기예를 배웠다.
19세에 구리성(拘利城) 선각왕(善覺王)의 딸 야수다라(耶輸陀羅)와 결혼했다. 그러나 성문 밖에서 생노병사의 고통과 시련을 보고 출가를 결심했다.
29세 때였다. 람마성 숲 속에 속의(俗衣)를 벗어 던지고 인류사의 가장 위대한 대출가를 선언한 것이다.
그 후 발가바, 아람가람, 울다라 등의 선인(仙人)들을 만나 6년간 갖은 고행을 했다. 하지만 금욕의 부질없음을 알고 부다가야의 보리수 아래에서 7일간 명상 끝에 대각을 이루었다.
35세 때의 일이었다.
제일 먼저 녹야원(鹿野苑)에서 다섯 비구를 교화했다.
다음으로 3가섭, 사리불, 목건련 등을 제도한 후 교단을 조직했다.
또한 빈바사라, 아사세, 비사닉등 여러 왕 등을 교화 제도하여 불교의 외연을 넓혀 나갔다.
기원전 544년 2월15일 구시나가라성 밖 발제하(跋提河) 언덕 사라쌍수(娑羅雙樹) 아래에서 열반했다.
세수는 80. 45년간의 위대한 전도가 끝나는 순간이었다.
석가(釋迦)제자(弟子)
항상 옆에 있는 사람들로 다섯 비구와 야사의 친구 55명, 가섭의 제자 1천명, 사리불과 목건련의 생도 200명으로 1.250명이나 되었으나 그 많은 제자가 있으나, 경전에 나온 제자는 비구886명, 비구니103명, 우바새128명, 우바이 43명이다.
이 중에 특별히 뛰어난 10명을 10대 제자라고 한다.
1. 지혜 제일의 사리불 존자.
2. 신통 제일의 목건련 존자.
3. 두타 제일의 마하가섭 존자.
4. 천안 제일의 아나율 존자.
5. 해공 제일의 수보리 존자.
6. 설법 제일의 부루나 존자.
7. 논의 제일의 가전연 존자.
8. 재계 제일의 우바리 존자.
9. 밀행 제일의 라훌라 존자.
10. 다문 제일의 아난 존자.
석가모니(釋迦牟尼)
능인적목이라 번역하며 석가문 또는 석가라고 약칭하며 석가는 원래 인도의 종족의 이름이고 석가모니라 함은 석가씨의 성자라는 뜻이다.
석계문(析桂紋)
이 상은 특별한 재능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서 나오는 상이다.
이 상을 가진 사람은 이과 계통의 학문을 정진한다면 연구 분야에서 대성하며 일약(一躍) 명성(名聲)과 재물을 얻을 상으로 재능을 가진 길상이라 하겠다.
석등(石燈)
석등은 야외에서 불을 밝히기 위해 만들어진 석조물이다.
[불설시등공덕경]에서는 죽은 이를 위하여 탑 묘 앞에 등불을 밝히면 33천에 다시 태어나 다섯 가지의 청정을 얻을 수 있다고 하여 석등의 시주를 권장하고 있다.
이와 같은 석등은 대개 사찰의 중앙에 불탑과 더불어 배치되는데, 법당이나 불탑 앞에 설치하여 부처님의 광명을 상징한다는 뜻에서 광명등이라고 불러왔다.
나중에는 스님들의 무덤인 부도 앞에도 세워지게 되었으며, 고려시대부터는 왕이나 정승의 무덤 앞에도 간간히 모습을 보이고 불교가 쇠퇴한 조선시대에는 무덤 앞에 주로 석등을 세워 장명등이라 일컬었다.
옛날에는 법당이나 불탑 앞에 외등을 설치했는데, 근래에는 좌우대칭으로 두 개의 석등을 세우는 경우가 많다.
석등의 기본적인 형식은 기단을 이루는 하대와, 간석 또는 간주라고도 불리는 중대 및 상대, 그 위에 등불을 앉히는 화사석과 옥개석으로 이루어지며, 가장 윗부분은 보륜과 보개, 보주 등으로 장식하였다.
이와 같은 석등의 형태는 시대와 지방에 따라 다양한 변화를 보여 많은 시대적, 지방적 특징들이 나타난다.
석류목(石榴木)
庚申辛酉 石榴木, 申은 칠월이고 酉는 팔월이 되니 이때의 木은 곧 절지(絶地)이다.
오직 석류나무만이 열매를 맺으므로 석류목(石榴木)이라한다.
氣는 정숙(靜肅)하고 만물은 점점 결실을 맺어가니 木이 金이 그 맛을 生하는 시기에 거처하여 가을이 과실을 이루므로 그렇게 말하는 것이다.
① 석류나무는 가을의 결실을 비유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金氣가 왕성한 시기를 나타내는 것. 금기는 결실과 수렴을 상징하는 것이다.
석산(石山)
풍수(風水)의 하나.
박환(剝換)이 덜 이루어져 토질(土質)이 암석(岩石)이나 석(石돌)로 이루어진 산(山)이다. 생기(生氣)를 품지 못한 산(山)이다.
석숭(石崇)
① 중국 진(晋) 나라 때의 부호이며 문장가. 자(字)는 계륜(季倫)이며, 형주자사(荊州刺使)를 지냈다.
항해(航海)와 무역(貿易)으로 돈을 벌어 그 영화로움이 비길 데 없었다고 한다.
② 부자를 일컫는 말.
석장(錫杖) Khakkhara
비구18지물 가운데 하나로 지팡이의 일종이며 유성장(有聲杖), 성장, 명장(鳴杖), 지장, 덕장이라고도 불린다.
승려들이 밖에 나가서 길에서는 지네, 독사 등 해충을 막고, 소리를 들은 미물들이 피하게 함으로서 살생을 피하며, 걸식을 할 때는 이것을 흔들어 소리를 내서 비구가 온 것을 알리며, 노승이 몸을 의지하는 것으로도 사용하는 등 승려들의 생활용구로서의 역할과 지장보살의 상징물, 천수관음보살의 지물로 표현되기도 한다.
형태는 긴 막대기 모양에 끝에 쇠고리가 걸려 있는데, 쇠고리의 개수에 따라 4환장, 6환장, 12환장 등으로 부르며 재료로는 상부는 주석, 중부는 나무, 하부는 뿔이나 상아를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선관도사
대체로 결혼을 하고 자녀을 두고 살다가 떠나게 되면 그렇게 집착을 하지는 않는 모양이다.
무엇인가 한이 남은 영혼은 이렇게 선관도사라고 하는 이름으로 이승에 남아 무녀의 몸에 실려서 남의 길흉사를 예언 해주고 호구지책을 삼는다.
선교(仙橋)
풍수(風水)의 하나.
수성(水星)의 양 모서리가 화(火불)을 다스리는 것으로. 신선을 관장한다.
수구사(水口砂)이다.
선근(善根)
1) 좋은 과보를 받을 좋은 인(因)이란 뜻.
착한 행업의 공덕 선근을 심으면 반드시 선과(善果)를 맺는 다는 말.
2) 온갖 선을 내는 근본이란 뜻.
무탐(無貪) 무진(無瞋) 무치(無癡)를 3선근이라 일컬음과 같은 말.
선누미
1) 모양. 눈썹 끝이 달팽이 모양으로 끝이 말려있으며 드물게 나있는 모양이다.
2) 설명. 선누미를 가진 사람은 권위를 얻으며 복과
록이 면면하며 영웅과 무관에게 이런 눈썹이 많으며 천기를 받은 사람이라
할 수 있다. 이런 눈썹은 보통 사람들에게는 볼 수 없는 눈썹이다.
선문답(禪問答)
수행자끼리 주고받는 문답 형식의 대화.
다른 말로는, 법거량이라고 한다.
논리나 상식, 지식을 초월한 직관적이고도 역설적인 대화로서, 이런 방식을 통하여 선리(禪理)를 드러내고, 지고의 깨달음에 이른다.
선문답은 탈(脫)상식, 초(超)논리의 대화이다.
상식적인 대화로서는 관념의 벽을 무너뜨릴 수 없다.
역설적 비약적인 방법이라야 백년, 천년 묵은 관념의 벽이 무너진다.
그러나 일반적인 상식이나 지식, 논리를 초월한 것일 뿐, 선문답에는 고유한 논리와 기준이 있다.
그 기준은 공(空), 중도(中道), 불이(不二), 일여(一如), 무심, 무집착, 일체유심조 등으로, 여기에서 벗어나면 그것은 잡담이다.
선문답은 깨달음을 체득한 선자들의 대화로서 즉문즉답으로 이루어진다.
조금이라도 머뭇거리면 사량 분별심, 지식에서 나온 대답이다.
육화된 선의 언어가 아니다.
선문답은 기본적으로 1문1답으로 두 세 번에서 그치며, 여러 차례 진행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