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훌라 존자
석가 10대 제자의 하나.
밀행 제일의 라훌라 존자. 부처님이 출가하기 일주일 전에 태어난 아들로 15세의 나이로 이모인 마하파자파티와 함께 출가하여 후일 아라한이 되었다.
사리불을 스승으로 모시고 최초의 사미승이 되었다.
아라한이란. 제자들 가운데 큰 깨달음을 이루어 성위(聖位)에 오른 사람에게 붙여진 이름이다.
마(魔)
악마, 악귀 등을 뜻함.
산스크리트 mara의 음역인 마라(魔羅)의 약어. 장애자(障碍者) 살자(殺者) 악자(惡者)라 번역. 불가사의한 힘을 가지고 나쁜 일을 행하며 사람의 착한 일을 방해하는 귀신을 가리킨다.
불교에서는 마의 내관적(內觀的) 의미로 번뇌 등 중생을 괴롭히는 것을 마(魔)라 하고, 자기 심신(心身)에서 생기는 장애를 내마(內魔), 외계로부터 가해지는 장애를 외마(外魔)라 한다.
마군(魔軍)
① 악마(惡魔)의 군병(軍兵), 부처님이 成 道 할 때 제6천마왕 (第六天魔王)이 그 권속들을 거느리고 와서 성도(成道)를 방해하자 부처님이 신력으로써 이들을 모두 항복 받았다고 한다.
② 일체의 나쁜 짓으로 佛道를 방해하는 것을 마군이라 한다.
마귀(魔鬼)
① 귀신 가운데는 나쁜 짓을 꾸며내서 사람을 괴롭힌다는 악 귀신과 착한 일을 하고 음으로 양으로 돕는 선 귀신이 있다.
이중에서 마귀는 요사스럽고 못된 짓만 골라서 하는 악 귀신을 총칭하는 말이며 이런 악 귀신의 우두머리쯤 되는 귀신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마귀는 불법을 외호해 주는 팔부신장 등의 신장 앞에서는 옴짝 달싹을 못한다.
모든 사람이 하는 일이 정상이 아니거나 그렇게 보일 때 일반적으로 그 사람 몸에 마귀가 접했다.
또는 마귀가 씌었다고 한다.
② 마귀(魔鬼)는 못된 잡귀를 뜻한다. 마귀(魔鬼)는 종교적인 수행을 방해하는 악한 영을 가리키는 이름이다 악령(惡靈, Demon) 또는 악귀(惡鬼)는 종교나 전승, 신화에서 초자연적 존재로서 일반적으로 심술궂은 영 또는 귀신을 일컫는다.
기독교에서는 일반적으로 하나님을 따르지 않는 천사들을 일컫는 말로 사용하고 있다.
고대 그리스에서 다이몬은 신에 가까운 존재 또는 신과 인간과의 중간적 존재를 의미하였다.
이것이 나중에는 인간의 수호령으로서 능력이나 성격 등 인간의 신들린 상태 또는 부분을 나타내는 데 쓰였다.
기독교에서는 악령․악마 또는 이교의 신을 가리키게 되었고, 근세에 와서는 인간의 심리적인 힘, 즉 자기가 지배할 수 없고 그 사람으로 하여금 이상한 행동을 하게 하는 무의식적이고 어쩔 수 없는 심리적인 힘을 데모니셰 (Damonische)라고 표현하였다.
마두관음 Hayagriva
6관음의 하나.
하야계리바(何耶?梨婆)라 음역.
무량수(無量壽)의 분노신(忿怒身). 관세음으로써 자성신(自性身)을 삼고, 머리에 말의 머리를 이고 있으므로 마두관음 또는 마두대사(馬頭大士), 마두명왕(馬頭明王)이라 한다.
말의 머리를 이고 있는 것은 전륜성왕의 보마(寶馬)가 사방으로 내달리면서 위력으로 굴복시키는 것과 같이, 생사의 큰 바다를 건너다니면서 4마(魔)를 항복 받는 큰 위신력과 큰 정진력을 나타내는 것.
또는 무명의 무거운 업장을 먹는다는 뜻이다. 주로 축생들을 교화하여 이롭게 한다고 한다.
마법(魔法)
마법(魔法)이란 불가사의한 현상이나 일을 일으키는 힘이나 방법을 일컫는 말이다. 마법이란 단어는 한국, 일본, 중국 등에서 여러 가지 형태를 포함하는 넓은 의미로 쓰인다.
서양에서는 보다 좁은 의미의 여러 단어가 쓰이는데, 영어의 경우 마법에 해당하는 단어는 magic, sorcery, wizardry/witchcraft 등이 있다.
마법을 부리는 사람을 마법사(魔法師)라고 하는데, 동서양 모두 마법사들에 대해 비슷한 인식을 지니고 있다. 동양의 주술사, 도사, 신선 등이나 서양의 마법사, 마녀, 요술사 등은 주문을 외우고 불가사의한 일들을 하며 지팡이나 막대와 같은 도구를 사용하기도 한다.
1) 동아시아
마법이란 단어는 근대 일본에서 번안한 단어이나 동아시아에서도 주술, 도술, 요술, 신내림 등과 같은 비슷한 종류의 문화가 존재하였다.
① 주술 : 주술은 주문을 이용하여 마법을 행하는 것으로 [홍길동전], [전우치전]과 같은 영웅 소설에 등장한다.
[서유기]에는 불경의 독송에 영험한 힘이 깃든다고 묘사되고 있어 주술의 영향을 보여 준다.
② 도술 : 도술은 도교를 바탕으로 하는 신선술, 방생술과 같은 것으로 초자연적인 존재인 신선이 되는 수련 방법이나 신선 또는 신령이 부리는 힘을 말한다.
③ 요술 : 요술은 칼삼키기와 같이 오늘날의 서커스 묘기에서부터 분신술, 축지법 등 기이한 재능까지 다양하게 부르는 말이다.
④ 신 내림 : 무당과 같은 특별한 사람이 신령이나 귀신과 교감하여 나타나는 여러 가지 일을 가리킨다. 앞날을 예지하거나 죽은 사람의 말을 전하는 등과 같은 일이 있다.
동아시아에서 샤머니즘은 주술이나 요술, 신 내림 등을 제의의 중요한 부분으로 삼았다. 불교, 도교 등은 근본적인 교의가 이와 같은 마법과 부합하지는 않았으나 신도들의 마법에 대한 관심에 관대하였으며 일부를 자신들의 틀에 포함시키기도 하였다.
불교의 산신각이나 도교의 방생술 등이 그것이다.
유교는 마법에 대해 헛된 눈속임이라는 단호한 입장을 취했으며, 기이한 일들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완전히 부정하지 않았으나, 추상화된 하늘을 존중하였을 뿐 현실에서는 철저히 부정하였다.
유학자가 무당을 불러 굿을 하는 것을 큰 부끄러움으로 여겼다.
2) 서양
고대 오리엔트 문명 및 지중해 문명에서 마법은 신탁과 함께 종교의 주된 수단이었다. 그러나 기독교가 지배적인 종교로 자리 잡게 되면서 신이나 성자의 기적 이외의 불가사의한 일들은 악마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믿었다.
중세가 지속되는 동안 표면적으로는 기독교의 교리에 의한 기적만이 공인되었으나, 이면에서는 점성술이나 악마 숭배와 같은 일들이 지속되었다.
중세 말기에는 흉년이나 전염병 등에 의한 사회 내부의 여러 문제를 마법사 또는 마녀에 의한 것으로 몰아 단죄하는 마녀 사냥이 벌어지기도 하였다.
3) 아랍
이슬람 이전의 아랍 사회는 조로아스터교를 비롯한 여러 종교가 존재하였으며, 이들은 지니라 불리는 정령이 마법을 행한다고 믿었다.
이슬람이 아랍 사회의 지배적인 종교가 되면서 다른 신들은 부정되었으나 정령(꾸란 제72수라 알진)이나 마법에 대한 믿음에 대해서는 관용적이었다.
마야부인
부처님의 어머니, 석가족(族) 호족(豪族)의 딸로서 가비라바소도[伽毘羅衛]의 성주(城主) 정반왕(淨飯王)의 왕비가 되어 석가를 낳았다.
(마야(摩耶)는 마하마야(摩訶摩耶, 대 마야라는 뜻)라고 존칭한다.
마장(魔障)
줄여서 마(魔)라고도 한다. 악마(惡魔)의 장애(障碍). 장(障)은 범어(梵語) Mara를 번역한 말.
마장(魔障)이라 함은 범어(梵語)와 한어(漢語)의 병칭. 이에 삼마(三魔), 사마(四魔), 팔마(八魔), 십마(十魔) 등이 있다.
마지 (摩旨)
부처님 또는 보살에게 올리는 밥이나 예불시 불단에 올리는 밥을 말함.
부처님께 올리는 밥을 마지(摩旨)라고 한다.
특별히 마지그릇에 담는다.
마지그릇을 들 때는 오른 손으로 마지그릇의 맨 아래 부분을 받쳐 잡는다.
그리고는 오른손을 오른 어깨 위에 올린다.
이럴 경우 왼손은 오른 손목을 받쳐 붙잡는다.
즉 마지그릇이 오른쪽 귀와 오른쪽 어깨 위에 닿는다고 생각하면 된다.
이러한 자세는 부처님의 밥에 입김이 닿지 않도록 하는 배려에서 비롯된 것이다.
마하가섭 존자
석가모니 10대 제자의 하나. 두타 제일의 마하가섭 존자.
두타행으로(두타행이란, 언제나 산중에서 생활하고 평등한 마음으로 걸식하며 항상 누더기 옷을 입고 나무아래 앉아 정진하는 등 철저히 무소유 정신으로 살아가는 것을 말함) 근면 검소함이 으뜸이며 부처님께서 입멸하신 후에는 교단을 통솔하고 부처님 경전 편찬을 총지휘하였다.
삼처전심의 주인공이며 불교 교단의 初祖이다. 가섭은 「카샤파라」 라고도 한다.
만공선사(滿空禪師)
만공선사(滿空禪師 1871~1946)근대의 고승.
여산송씨. 속명은 도암(道巖), 법호는 만공(滿空), 월면은 법명. 전라북도 정읍출신. 신통(神通)의 아들이다.
1883년 김제 금산사에서 불상을 처음 보고 크게 감동한 것이 계기가 되어 출가를 결심하고, 공주 동학사(東鶴寺)로 출가하여 진암(眞巖) 문하에서 행자생활을 하였다.
1884년 경허(鏡虛)의 인도로 서산 천장사(天藏寺)로 가서 태허(泰虛)를 은사(恩師)로, 경허를 계사(戒師)로 삼아 사미십계(沙彌十戒)를 받고 득도하였다.
그 뒤 “모든 법이 하나로 돌아가니 하나는 어디로 돌아가는가, 만법귀일 일귀하처(萬法歸一 一歸何處.”라는 화두(話頭)를 가지고 참선에 열중하였다.
1895년 아산 봉곡사(鳳谷寺)에서 새벽에 범종을 치면서 "법계의 본성을 관찰하여야 한다.
모든 것은 오직 마음이 만드는 것이다(응관법계성 일체유심조 應觀法界性 一切唯心造)."라는 게송(偈頌)을 읊다가 홀연 깨달았다.
그 뒤 공주 마곡사(麻谷寺) 토굴에서 보경(普鏡)과 함께 계속 수도하다가 경허로부터 "아직 진면목(眞面目)에 깊이 들어가지 못하였으니 조주(趙州)의 무자(無字) 화두를 가지고 다시 참선을 하도록 하라."는 가르침을 받고 정진하였다.
1901년 경허와 헤어져 양산 통도사의 백운암(白雲庵)에 들러 며칠 머무르는 동안, 새벽에 "원컨대 이 종소리가 법계에 두루 퍼져 칠벽의 어둠이 모두 밝게 하소서(원차종성편법계 철원유음실개명 願此鐘聲遍法界 鐵圓幽音悉皆明)"라는 게송을 읊으면서 범종을 치는 소리를 듣고 크게 깨달았다.
그리하여 곧 천장사로 돌아와 법열을 즐기던 중,
1904년 함경북도 갑산으로 가던 길에 천장사에 들른 경허로부터 전법게(傳法偈)를 받았다.
1905년 예산 덕숭산(德崇山)에 금대(金仙臺)을 짓고, 보임(保任)을 하는 동안 참선을 하려는 수도승들이 찾아와 그 지도를 맡게 되었다.
1905년부터 1908년까지 3년 동안 금강산 마하연(摩訶衍)에서의 선(禪) 지도와 1937년을 전후하여 잠시 마곡사의 주지를 맡았던 때를 제외한 대부분의 생애를 덕숭산에 머물렀다.
이곳에서 선을 지도하면서 선불교를 크게 중흥시켜 현대 한국불교계에 하나의 큰
법맥을 형성하였다.
덕숭산 수덕사와 정혜사(定慧寺), 견성암(見性庵), 서산 안면도의 간월암(看月庵) 등을 크게 중창하였고,
1920년대 초에는 선학원(禪學院) 설립운동을 하였으며, 선승들의 결사(結社)인 동시에 경제적 자립을 위한 계(契) 모임의 성격을 지닌 선우공제회운동(禪友共濟會運動)에 지도자의 한 사람으로 참여하였다.
마곡사 주지로 있던 1937년, 당시의 조선총독 데라꾸찌 각도 지사가 동석한 조선총독부 회의실에서의 31본산주지회의에 참석하여 한국불교를 일본 불교화하려는 총독부의 종교정책방침에 정면으로 반대하였다. 그 반대의 요지는 종교가 정치로부터 분리되어야 한다는 점과 한국불교가 조선총독부의 종교정책에 의하여 일본불교로 변질되어 계율이 문란해지고 한국불교의 전통과 종교적 순수성이 흔들리고 있다는 점을 강력히 주장하였다.
그리고 "전 조선총독 미나미(南次郞)는 한국불교를 파괴시켰으므로 분명히 지옥에 떨어질 것이니 이 미나미 총독을 우리가 지옥에서 구제하지 않으면 누가 구하겠는가."라고 하였다.
1941년, 서울 선학원에서 개최한 전국고승법회에 초대되어 설법하고 계율을 올바로 지키고 선을 진작시켜 한국불교의 바른 맥을 이어가자고 하였다.
이론과 사변을 철저히 배제하고 무심(無心)의 태도로 화두를 참구(參究)하는 간화선법(看話禪法)을 채택하였고, 제자들에게는 항상 조주(趙州)의 무자화두를 참구하도록 가르쳤다.
말년에는 덕숭산 상봉 가까이에 전월사(轉月舍)라는 초암을 짓고 생활을 하다가 1946년10월20일에 입적하였다.
나이75세, 법랍62세였다.
만다라
원(圓) 윤(輪) 단(壇) 장(場) 회(會) 중(衆)이라 번역. 흔히 만개한 연꽃과 여덟 잎사귀의 그림에 비유된다.
우주의 본질, 또는 생명의 진수가 가득한 원형의 바퀴를 뜻하며 부처님의 큰 생명력에 하나가 되고자하는 깨달음을 향한 안내도라 할 수 있다.
① 우주의 진리, 깨달음의 경지, 부처나 보살의 서원. 가르침, 세계를 상징적으로 묘사한 그림.
② 깨달음을 닦는 장소, 곧 도량(道)
③ 한 곳에 여러 부처나 보살을 모신 단.
만다라(mandala, 曼茶羅) 티베트불교를 대표하는 미술. 모든 법을 다 원만하게 갖추어서 결함이 없다는 뜻.
통상적인 언어를 가지고 표현할 수 없는 깨달음의 세계를 한 장의 그림 속에 도형화한 것이다.
화엄의 세계, 밀교적 깨달음의 세계라고 할 수 있다.
만타라(曼陀羅) 만달라(曼羅)라고도 쓰며, 줄여서 만다(曼茶)라고 한다.
또 만다라에는 금강계 만다라. 태장계 만다라 등이 있다.
만발공양(萬鉢供養)
만발(萬鉢)은 만 개의 발우를 뜻하는 말로 불가에서 이루어지는 만발공양(萬鉢供養)을 뜻한다.
만발공양은 절에서 발우에 밥을 담아 대중에게 베푸는 공양.
부처님 생전 발우에 밥을 수북하게 담아 대중에게 공양을 베푸는 데서 유래됐다.
초기불교에서는 출가자는 신도들에게 법을 설하며 법을 보시하고 재가자는 수행자를 위해 옷 음식 약품 등 생활에 필요한 물건을 보시하는 역할을 했다.
그러나 대승불교에서는 보살도가 출, 재가 모두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이 되면서 사찰과 스님도 재보시의 주체로 등장한다.
인도 중국 한국 등에서 사찰이 굶주리는 백성들에게 먹을 것을 제공하는 구휼처의 역할을 겸하게 된 것이다.
만(卍)
① 卍은 만이라고 발음한다. 인도의 말로는 스바스티카라고 하여 원시 불교시대부터 전해 내려오는 길상을 표시하는 기호이다.
부처의 마음이다,
대자비의 마음 또는 중생들 마음속에 잠재해 있는 불성(본마음)의 근본적인 마음자리를 설명하는 기호로 쓰여지고 있다.
② 卍. 한자로 절만이라 한다. 태양의 광명을 상징한 글자였으나 불교에서는 일심의 서기방광을 비유하였고 부처님의 가슴. 손발. 머리에 나타난 길상 행운 경복의 마크로 사용하고 있다.
이 표시는 옛 독일의 히틀러 당시의 마크와 비슷해서 유럽이나 미국 등에서 오해의 소지가 있다.
지금도 이 지역에 거주하거나 여행하는 이는 이 표시의 제품을 소지하거나 간직하지 않는 것이 좋다.
만자문
만자문은 연화문과 더불어 불교를 상징하는 대표적 문양이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길상(吉祥)과 만덕(萬德)을 나타낸다.
원래 인도에서는 이 문양을 슈리바트사라고 불렀다.
불교의 중국전래에 따라 중국에 들어와서는 만(萬)으로 통일됐다.
① 첫째는 길상해운(吉祥海雲)을 상징하는 슈리바트사.
② 둘째는 오른쪽으로 선회하는 난디아바타라.
③ 셋째는 행복을 상징하는 스바스티카.
④ 넷째는 물병모양의 푸르나가타이다.
특히 만자문은 히틀러의 나치문양인 하켄크로이츠와 비슷해 오해를 사는 경우가 있다.
하켄크로이츠는 만자문과는 달리 왼쪽으로 누웠고 반대로 돈다.
그러나 사실 두 문양의 기원과 뿌리는 같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기본적으로 고대신앙의 최고신인 태양신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아리안족은 태양숭배사상을 갖고 있었다.
만자문양의 고리들은 태양광의 방사(放射)를 뜻한다. 여기에서 만자문양과 십자가도 나왔다.
같은 물도 소가 마시면 우유를 만들지만 독사가 마시면 독을 만든다.
만자문이 영어의 L자 4개를 붙인 것과 같다고 해서 4L 정신을 지키고 있다.
라이프(영원한 생명), 라이트(영원한 빛), 러브(무한한 사랑), 레이버(신성한 노동)정신이다.
만장(輓章,挽章)
만장(輓章,挽章)은 죽은 사람을 슬퍼하고 기리며 적는 글이다.
비단이나 종이에 적어 기처럼 만들어 들고 상여 뒤를 따른다.
죽은 이의 학덕, 선행, 문장, 직위 등에 대한 칭송과 친분 관계나 망자와 있었던 특별한 일을 적는다.
크기는 약 2.4m, 폭은 60㎝나 되는 천에 쓴 뒤 깃대에 받치고 장례가 끝나면 이를 태운다.
말세
불교에서는 정상말(正像末) 삼시(三時)라고 해서 정법 상법 말법으로 시대를 나눈다.
여기서 정법(正法)은 교(敎)와 행(行)과 증(證)이 고루 갖추어져 있는 5백년이요, 상법(像法)은 교와 행은 있으나 증이 없는 1천년이다.
그리고 末法은 교만 있고 행과 증이 없는 1만년이란 얘기다.
망념(妄念)
① 망념(忘念)은 문자 그대로의 뜻은, 잊어버린 기억으로, 실념(失念)의 다른 말이다.
망념 또는 실념은 8정도(八正道) 가운데 하나인 정념(正念 바른 기억)의 반대말이며, 정념(正念)을 잃음을 뜻.
② 망념(妄念)의 일반 사전적인 의미는 아래 목록과 같은데, 불교에서는 미망(迷妄)한 집착하는 생각(執念집념), 또는 범부(凡夫), 즉 수행 계위 중견도(見道) 이전의 단계에 있는 사람이 6진(六塵) 경계, 즉 6경(六境)을 탐착 할 때의 마음상태를 망념이라 한다.
망어(妄語)
망어(妄語)는 거짓말 또는 헛된 말을 말하며, 특히 남을 기만(欺瞞 속여넘김)하거나 사기(詐欺 나쁜 꾀로 남을 속임)를 치기 위해 거짓말을 하는 것을 말한다.
허광어(虛?語) 허망어(虛妄語) 허위(虛威) 망설(妄舌) 또는 기(欺)라고도 한다.
망어(妄語)의 한자어 문자 그대로의 뜻은 '속이는 말' 또는 '헛된 말'이다. 허광어의 문자 그대로의 뜻은, 헛되고 속이는 말이다.
① 5악(五惡) 가운데 하나이다.
② 5계(五戒) 가운데 불망어계(不妄語戒)의 반대이다.
③ 10악(十惡) 가운데 하나이며, 그 중에서 구사(口四)의 하나다.
④ 10선(十善) 가운데 불망어(不妄語)의 반대이다.
멸제(滅諦)
불교 사성제의 하나.
멸은 없앤다는 뜻이다. 번뇌와 고통이 모두 없어지는 해탈의 세계, 열반의 세계를 말하는 것이다. 때문에 그러한 번뇌와 고통이 사라진 세계는 영원한 자유와 기쁨, 깨끗함이 있다.
고가 없는 이상의 세계를 제시하는 것이 멸제이다.
명부의 재판관
명부에는 모두 10명의 재판관이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49일 동안 만나는 재판관은 모두 일곱명이다.
나머지 세명은 재심재판관이다.
① 제1코스 담당이 진광대왕(秦廣大王)이다.
원래의 모습은 부동명왕(不動明王)이다.
② 제 2코스 담당이 초강대왕(初江大王)이다.
역시 정체는 석가여래다.
③ 제 3코스 담당이 송제대왕(宋帝大王)이다.
문수보살의 화현이다.
④ 제 4코스의 재판관은 오관대왕(五官大王)이다.
보현보살의 화현이다.
⑤ 제 5코스는 명부의 슈퍼스타 염라대왕(閻羅大王)이다.
지장보살의 화현이다.
⑥ 제6 코스는 변성대왕(變成大王)이 맡고 있다.
미륵보살이 원래의 정체라고 한다.
⑦ 제 7코스는 태산대왕(泰山大王)의 담당구역이다.
약사여래께서 나투신 것이다.
명부왕(冥府十王)
사찰의 명부전(冥府殿)에는 이 지장보살이 주불(主佛)로 모셔져 있고 좌우에는 사후세계의 심판관인 시왕(十王)이 안치되어 있다.
죽은 자의 영혼이 도달하는 세계를 명계(冥界), 명토(冥土), 황천(黃泉)이라 부르고, 이 세계를 다스리는 왕을 시왕이라 부른다.
진광왕(秦廣王) 초강왕(初江王) 송제왕(宋帝王) 오관왕(五官王) 염라왕(閻羅王) 변성왕(變成王) 태산왕(泰山王) 평등왕(平等王) 도시왕(都市王) 오도전륜왕(五道轉輪王) 중생들은 죽은 날로부터 7일 단위의 일곱 번과 사후 100일, 1년, 3년 등 열 번에 걸쳐서 시왕들로부터 자신의 선악업을 심판 받는다고 한다.
심판 받는 동안 망자(亡者)의 죄업을 용서하기 위해 열 번의 재(齋)를 베푼다.
명부전(冥府殿)은 불교의 지옥 세계를 상징적으로 나타낸 곳이며 지장보살의 지옥중생 구제와 결부되어 있다.
명부전 시왕의 심판 결과 지옥에 떨어진 중생들의 곁에는 반드시 지옥 중생을 구제하려는 지옥의 자비화신인 지장보살이 서 계신다.
따라서 명부전은 공포와 두려움의 세계에서 지장보살로 인해 자비도량이 되고 있는 것이다.
명부시왕은 중생이 선(善)으로 돌려지기를 바라는 중생교화의 상징적 신앙인 것이다.
명부전(冥府殿)
죽은 사람들을 지옥의 고통에서 구원해주는 보살로 알려진 지장보살의 대원력이 살아 숨 쉬는 곳.
지장전 또는 저승의 유명계를 심판한다는 시왕(十王)을 봉안하고 있기 때문에 시왕전이라고도 불림.
주불인 지장보살을 도명존자와 무독귀왕이 모시고 있다.
저승의 명부를 상징하는 불전을 이른다.
심판관인 시왕을 모시고 있다고 해서 十王殿이라고도 한다.
혹은 지장보살을 주불로 모시고 있다고 해서 지장전(地藏殿)이라고도 부른다.
말하자면 지장보살과 시왕이 모셔진 곳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본존인 지장보살(地藏菩薩)은 지장삼존으로 좌우에 도명존자(道明尊者)와 무독귀왕(無毒鬼王)을 협시로 둔다.
좌우에 명부시왕들은 앉힌다.
시왕상 앞에는 시봉을 드는 동자상 10구를 세운다.
또한 판관(判官) 2구, 녹사(錄事) 2구, 장군 2구 등 모두 29구의 존상(尊像)을 갖추게 된다.
이렇게 되면 상당히 폭이 길어진다. 그럴 땐 자연스레 ᄃ자 모양으로 꺾여 들어간다.
명부전은 하위불전이다.
명색(名色)
명색(名色)은 12연기설에서 4번째 지분이다. 명(名)과 색(色)의 두 낱말이 합쳐져서 이루어진 복합어로, 명(名)은 온갖 정신적 대상과 정신작용을 가리키며 색(色)은 온갖 물질적 대상을 가리킨다.
즉, 명색(名色)은 5온(五蘊)의 모든 요소, 즉 색온(色蘊) 수온(受蘊) 상온(想蘊) 행온(行蘊) 식온(識蘊)을 통칭하는 낱말이다.
명(名)은 수온(受蘊) 상온(想蘊) 행온(行蘊) 식온(識蘊)에 해당하고 색(色)은 색온(色蘊)에 해당한다. 명색(名色)이 5온을 의미 한다
는 것에는 불교 전반에서 의견이 일치하지만, 12연기설의 4번째 지분으로서의 명색(名色)에 대한 해석에 있어서는 불교 부파 또는 종파에 따라 의견의 차이가 있다.
명자(命者)
명자(命者jiva), 또는 지바는 능활자(能活者 활성화시키는 자), 생명의 원리, 살아가는 자, 목숨 또는 생명체를 뜻한다. 음역하여 기바(耆婆)라고도 하고, 수명(壽命)으로 한역하기도 한다.
유정(有情)의 대명사로 쓰인다.
명행족
부처님의 명호의 하나.
계정혜 삼학에 의해 바른 깨달음을 얻으셨다는 말이다.
목건련 존자
석가모니 10대 제자의 하나.
신통 제일의 목건련 존자.
부처님 당시의 중인도에서 가장 세력이 크던 6인의 종교가의 교파를 「육사외도」라 하는데 이중 산사야비라지자(궤변론 회의설로 유명)를 섬기다가 사리불과 함께 그들의 제자 250명을 데리고 부처님께 귀의하였다.
지옥에서 고통을 받는 어머니의 천도를 위하여 지옥을 다녀온 분으로 만고의 노력 끝에 우란분절에 어머니를 천도하였다. 만년에 그를 시기하고 미워하는 외도들에 의해 부처님 보다 3일 먼저 순교하였다.
다른 이름으로는「목갈라나. 목련」라 한다.
목어(木魚)
불교 사물의 하나. 물에 사는 중생들과 수중의 고혼을 위하는 법구이다.
나무로 고기모양을 깎아 속을 파고 조석예불 때 친다.
물고기가 눈을 감는 일이 없으므로 우리 중생들이 물고기를 닮아 부지런히 정진하라는 경책의 의미기 깊다.
이 목어가 줄여진 것이 목탁이다. 목탁을 자세히 보면 고기 모양을 하고 있다.
목탁(木鐸)
예불, 불공 때 치는 도구. 독경, 예불, 염불 등에 사용하는 사찰 고유의 목관 악기다.
목탁은 울력이나 공양시간을 알릴 때, 또는 각종 행사를 집전할 때도 쓰인다.
목탁은 박자용 겸 신호용이다.
목탁소리는 한 편의 청아한 법음이다.
번민이 많은 중생은 잠시나마 그 소리에 마음이 정화된다.
목탁의 원래 명칭은 “목어(木魚)”이다.
잠을 잘 적에도 눈을 감지 않고 잠을 자는 물고기처럼, 졸지 말고 열심히 수행 정진하라는 뜻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목탁을 두 손으로 들고치는데, 다른 나라에서는 탁자 위에 놓고 한 손으로 친다.
그리고 한 손으로는 경전이나 염불문을 넘긴다고 한다.
① 추를 나무로 만든 큰 방울. 금탁(金鐸)의 반대. 옛적에 정령(政令)을 발할 때 쳤음. 세상 사람을 가르쳐 인도할 만한 사람이나 기관 등을 가리키는 말.
② 경(經)을 읽을 때나 예불(禮佛) 또는 식사시간을 알리는데 치는 목어(木魚)의 다른 이름.
목환자(木患子)
무환자(無患子)라고도 한다.
모감주나무. 무환자과의 낙엽교목. 이 나무의 열매로 염주를 만든다.
[목환자경 木患子經] 제1권은 염주 쓰는 법이 나와 있다.
108개의 목환자로 염주를 만들어서 불타, 달마, 승가의 이름을 외우면 죄장이 없어지고 생사를 면한다 하고, 또 이름을 외우는 편수에 따라 그 공덕의 얕고 깊음을 나타내었다.
묘음보살
법화경 묘음보살품에 나오는 보살.
범어로는 가드가다스바라. 의역하면 묘음(妙音), 묘후(妙吼)라고 한다.
동방 정화수왕지불(淨華宿王智佛)이 있는 정광장엄국(淨光莊嚴國)에 사는 보살이다.
묘음보살은 전생에 묘장엄왕의 왕후 정덕(淨德)부인이었다.
그녀는 운뢰음왕불(雲雷音王佛)에게 10만가지 악기로 1만2천년동안이나 음악공양을 올렸다.
또한 8만4천의 바리때에 가득 음식공양을 드렸다.
그러한 공덕으로 묘음보살이 되었다.
부처님이 법화경을 설법할 때 사바세계에 와서 법문을 듣고 갔다.
묘음보살은 대단한 위신력의 소유자다.
한번 움직이면 대지가 여섯 가지로 진동한다.
칠보의 연꽃이 비처럼 쏟아지며 백천가지 악기가 연주된다.
묘음보살은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34응신으로 나툰다.
지금도 정광장엄국에서 법화경을 설하고 있다.
음악의 신격화라 할 수 있다.
무간(無間)
① 무간(無間, 산스크리트어: nirantaratva)은 근(根)과 경(境)이 이들 사이에 어떠한 간격도 없이 서로 절대적으로 근접하여, 그 사이에 아무 것도 없는 것을 말한다. 설일체유부의 교학에 따르면, 극미(極微)는 서로 접촉하지 않는데, 다만 무간(無間)으로 적집(積集)한다.
② 마음은 찰나 찰나로 생멸하면서 상속하는데 이 때 전념(前念)과 후념(後念)과의 사이에는 다른 생각 또는 마음이 개입하지 않으며 따라서 후념(後念)은 간격 없이 전념(前念)으로부터 상속한다고 한다. 이와 같은 간격 없는 상속을 무간(無間)이라고 한다.
무간지옥
아비지옥이라고 알려져 있으며 8열지옥 중 가장 고통이 심한 곳.
몸으로부터 불길이 나와 일 겁 동안 끊임없는 괴로움에 시달린다고 함.
무괴(無愧)
무괴(無愧, lack of propriety, disregard, shamelessness)는 설일체유부의 5위 75법에서 심소법(心所法) 중 대불선지법(大不善地法) 가운데 하나이며, 유식유가행파와 법상종의 5위 100법에서 심소법(心所法)의 수번뇌심소(隨煩惱心所) 중 중수번뇌심소(中隨煩惱心所) 가운데 하나이다.
무괴(無愧)는 괴(愧)의 반대인데, 계(戒) 정(定) 혜(慧)의 3학(三學)의 공덕이 있는 사람, 즉 스승의 꾸짖음이나 죄과에 대해 부끄럽게 여기지 않는 마음작용, 또는 죄에 대해 두렵게 보지 않는 마음작용이다.
무명(無明)
불교 12연기법의 하나.
실재하지 않는 무상한 것을 실체로 착각하고 그 무상한 형체를 완전하고 영원한 것으로 집착해 버리는 어리석음을 말한다.
지리에 대한 무지로 연기와 사제의 도리도 모르고, 선과 악도 모르고, 참다운 인생관도 없으니 인생의 고뇌와 불행이 생기는 원인이 된다.
무상(無相) alaksana. animitta
모든 사물에는 고정적(모습), 실체적(모양) 특질이 없다는 의미.
상(相)은 특징을 말한다.
유상(有相)의 반대어이다.
무상은 공(空)의 사상을 근본으로 한다.
모든 사물은 공이며 자성(自性)이 없다. 그러므로 무상이며, 무상이기 때문에 청정(淸淨)하게 된다.
또한 무상은 차별, 대립의 모습(相)을 초월한 무차별의 상태를 말하기도 하는데, 그 수행을 무상관(無相觀), 무상삼매(無相三昧)라고 한다.
또한 불교 수행의 최고경지인 삼해탈문(三解脫門 空, 無相, 無類)의 무상은 일체의 집착을 떠난 경지를 말한다. 따라서 무상은 열반(涅槃)의 이명(異名)으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① 고유한 형태나 모양이 없음. 불변하는 실체나 형상이 없음, 고유한 실체가 없는 공(空)의 상태.
② 대립적인 차별이나 분별이 없음. 대상에 가치나 감정을 부여하지 않음. 형상을 떠남. 집착이나 속박에서 벗어남.
③ 특징이 없음.
무상사
부처님 명호의 하나. 광명이며 진리 당체이신 부처님은 이 세상에서 제일 높으신 분이다.
무색(無色)
무색(無色)은 욕계(欲界) 색계(色界) 무색계(無色界)의 3계(三界) 중 무색계(無色界)의 줄임말이다.
무색계(無色界)
무색계(無色界)는 욕계(欲界) 색계(色界) 무색계(無色界)의 3계(三界) 가운데 하나로, 욕유(欲有) 색유(色有) 무색유(無色有)의 3유(三有) 가운데 무색유(無色有)와 동의어이다.
불교의 우주론 또는 세계관에서 3계 또는 3유는 28천(二十八天)으로 나뉘지만, 수행론과 번뇌론에서는 흔히 9지(九地)로 나뉜다.
9지 중 무색계 또는 무색유에 해당하는 것은 제6지인 공무변처지(空無邊處地)부터 제9지인 비상비비상처지(非想非非想處地)까의 4가지 지(地)이다.
무신교(無神敎)
창조의 신을 부정하고 어떤 원리나 법칙을 따라 성주괴공(成住壞空)한다고 믿는 종교이다. 불교 유교 도교가 있다.
불교는 종교(宗敎). 유교는 인륜교(人倫敎). 도교는 신선교(神仙敎) 이들은 서로 배타하지 않고 융화함으로 유불선 삼도라고 한다.
무심(無心)
① 무심(無心)은 망념(妄念)을 멀리 떠난 진심(眞心 참된 마음)을 가리킨다.
이것은 심식(心識) 즉 마음이 없다는 말이 아니며, 심식 즉 마음이 범성(凡聖) 조묘(粗妙) 선악(善惡) 미추(美醜) 대소(大小) 등의 사량 분별의 정식(情識)과 처소(處所), 즉 삼계(三界)의 일체의 처(處) 또는 천(天)을 멀리 떠나서 이들에 집착하지 않고 이들에 의해 장애되지 않는 무애자재의 상태에 있는 것을 말한다.
즉, 유위(有爲)의 상태를 멀리 떠나 무위(無爲)를 증득한 상태를 말한다.
② 허망하게 분별하는 마음은 환영(幻影) 즉 유위법(有爲法)이므로, 결국 마음에는 찾을 수 있는 자성(自性)이 없다는 것을 가리켜 무심(無心)이라 한다.
③ 무심(無心)은 미혹되어 본성을 잃어버린 마음을 말한다.
난심(亂心)의 뜻 중에는 이 뜻과 같은 뜻이 있다.
④ 설일체유부 등의 부파불교에서, 무심(無心)은 무상정(無想定)이나 멸진정(滅盡定)에 들어가는 것을 말한다. 무상정은 제4정려(靜慮), 즉 색계 제4천의 선정(禪定)의 상태이며, 멸진정은 무색계 제4천인 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의 선정(禪定)의 상태이다. 이에 대해, 무상정과 멸진정 이외의 삼계의 어느 처(處) 또는 천(天)에 처해 있는 상태의 마음을 유심(有心)이라 한다.
⑤ 무심(無心)은 유식유가행파와 법상종에서 말하는 무상천(無想天) 무상정(無想定) 멸진정(滅盡定) 극수면(極睡眠) 극민절(極悶絶)의 오위무심(五位無心)을 말한다. 이들 5가지 상태[位]에서는 8식 중 제6식인 의식(意識)이 잠깐 단절하므로 無心이라 한다.
일반적으로는 그 어디에도 마음을 두지 않는 것, 또는 자기 자신을 의식하지 않는 상태를 무심이라고 한다.
반면 유심(有心)이라고 한다면 무언가 괘념(掛念)하고 있는 상태, 어디엔가 마음을 두고 있는 상태라고 할 수 있다.
무심은 선어 가운데서도 대표적인 말이다. 선에서 말하는 무심은 일반적인 개념과는 좀 다르다.
즉 번뇌 없는 마음 상태(無煩惱心), 분별없는 마음 상태(無分別心), 집착 없는 마음 상태(無執着心) 망념이 없는 마음 상태(無妄心)를 뜻한다.
동의어인 무념(無念) 역시 무망념(無妄念)의 준말이다.
무심과 무념은 공, 중도, 무집착의 이칭으로서 공을 실천한 결과 얻어지는 마음 상태다.
이것을 선에서는 깨쳤다고 한다. 무자화두로 유명한 조주선사는, 만물에 무심하라고 말하고 있다.
무재칠시(無財七施)
물질(재물)을 가지지 않고도 7가지의 보시를 베풀 수 있다는 것을 말한다.
① 화안시(和顔施), 부드럽고 편안한 눈빛으로 사람들을 대(對)함.
② 화안열색시(和顔悅色施), 자비롭고 미소 띤 얼굴로 사람들을 대함.
③ 언사시(言辭施), 공손하고 아름다운 말로 사람들을 대(對)함.
④ 신시(身施), 내 몸을 수고롭게 하여 남들을 도움(助力).
⑤ 심시(心施), 착하고 어진 마음을 가지고 사람들을 대(對)함.
⑥ 상좌시(床座施), 다른 사람에게 기쁜 마음으로 자리를 양보함.
⑦ 방사시(房舍施), 잠자리 없는 사람에게 방을 내어주고 친절히 대함.
무족(無足)
무족(無足)은, 무착의 [대승아비달마집론] 안혜의 [대승아비달마잡집론] 호법 등의 [성유식론] 등에 나오는, 정진(精進) 또는 근(勤)의 5단계의 차별인 피갑(被甲) 가행(加行) 무하(無下) 무퇴(無退) 무족(無足)의 5정진(五精進) 가운데 하나이다. 무족(無足)은 문자 그대로의 뜻은, 만족하지 않음으로, 불교 경전에서 소[牛]에게 멍에를 씌움으로써 소로 하여금 도망가지 않고 능히 나아가게 하는 것과 같이 수행자에게 멍에를 지워 선법(善法)에서 벗어나지 않고 열반에 나아가게 한다는 뜻의 불사선액(선의 멍에을 버리지 않음)에 해당하는데, 이전의 무퇴(無退)의 노력과 성취에 안주하여 정체되지 않고 4성제를 관찰하는 수행인 제관(諦觀) 등의 보다 뛰어난
도(道)에 들어가는 것을 말한다.
무진(無瞋)
선근(善根) 중의 하나이며, 설일체유부의 5위 75법에서 심소법(心所法) 중 대선지법(大善地法) 가운데 하나이며, 유식유가행파와 법상종의 5위 100법에서 심소법(心所法) 중 선심소(善心所) 가운데 하나이다.
무진(無瞋)은 유정(有情)과 비유정(非有情)에 대해 미워하지 않는 마음작용이다.
설일체유부의 중현(衆賢)은 [아비달마장현종론 阿毘達磨藏顯宗論]에서, 무진(無瞋)이란 유정이나 비유정에 대해 미워하거나 해치려는 마음이 없는 애민(哀愍 가엾고 불쌍히 여김)의 종자라고 말하고 있다.
무진장
무진장(無盡藏)은 한자 뜻 그대로 끝없이 많은 것을 의미한다.
대승의장(大乘義章)에 보면 덕이 넓고 궁(窮)함이 없는 것을 무진(無盡)이라 하고 이 무진한 덕을 포함하는 것을 장(藏)이라 한다고 되어 있다.
여기서 무진(無盡)은 다함이 없다는 것이고 장(藏)은 곳간이란 뜻으로 쓰였다.
불법의 무궁무진함을 비유한 것이다. 지금도 무진장 많다는 말은 흔히들 쓰인다.
우리말에 써도써도 한없이 나오는 보물그릇을 빗대 화수분이라 부른다.
무차대회(無遮大會)
승속과 노소. 귀천을 가리지 않고 누구나 자유롭게 참여하여 법문을 듣고 잔치를 열어 물건을 베푸는 일종의 법회이다.
① 수륙재가 수륙무차평등재의(水陸無遮平等齋儀)라고 하여 물과 육지의 모든 유주무주 고혼에게 평등하게 시식을 베풀어주는 것과 일맥상통하는 의미로 모든 중생에게 불법의 공덕이 골고루 미치도록 잔치를 즐기고 시주가 물건을 베풀며 불경을 강의하고 불교의 이 이치에 대하여 의견을 제시하는 법회였다.
이는 보시정진에 근거하여 부처님의 덕을 모두에게 나누어주는 신앙적 의미도 있었다.
또 이 대회를 통하여 왕은 백성들의 어려운 생활을 달래 주고 민심을 수습하려는 의도에서 국가가 시주가 되어 베풀기도 하였다.
② 고려 태조 23년(940)의 신흥사 공신당 신축 때 무차대회가 있었고, 고종 3년(1216)에 미륵사 공신전 중수 후, 광종 때의 무차대회, 의종19년(1165)의 궁중 무차대회의 기록이 있다.
무출가(無出家)
처자를 거느리고 호사를 누리면서 마음으로 탐내기를 그치지 않으면 이는 몸과 마음이 모두 출가하지 못한 사람이다.
무치(無癡)
선근(善根) 중의 하나이며, 유식유가행파와 법상종의 5위 100법에서 심소법(心所法) 중 선심소(善心所) 가운데 하나이다.
설일체유부의 5위 75법에서는 심소법(心所法) 중 대지법(大地法) 가운데 하나인 혜(慧)에 속한 것으로 보아 별도의 법으로 설정하지 않는다.
무치(無癡)는 모든 법의 사리(事理)를 밝게 아는[明解] 마음작용으로, 우치(愚癡)의 마음작용을 대치(對治)하여 마음(6식 또는 8식, 즉 심왕, 즉 심법)으로 하여금 선법(善法)을 행하게 하는 작용을 한다.
무탐(無貪)
선근(善根) 중의 하나이며, 설일체유부의 5위 75법에서 심소법(心所法) 중 대선지법(大善地法) 가운데 하나이며, 유식유가행파와 법상종의 5위 100법에서 심소법(心所法) 중 선심소(善心所) 가운데 하나이다.
설일체유부에 따르면, 무탐(無貪)은 애착하지 않는 마음작용이다.
즉, 불생불멸의 무위법인 출세간의 존재나 대상이 아닌 생멸변화하는 유위법인 세간의 존재나 대상에 대해 애착하거나 집착하지 않는 마음작용이다.
설일체유부의 중현(衆賢)은 [아비달마장현종론 阿毘達磨藏顯宗論]에서, 무탐(無貪)이란 이미 획득하였거나 아직 획득하지 않은 [세속의] 경계에 대한 탐착 희구와 반대되는 것으로서, 마음에 애염(愛染 세속의 경계에, 애착하는 번뇌, 탐착) 없는 것을 본질로 한다[無愛染性]고 말하고 있다.
무퇴(無退)
무퇴(無退)는, 무착의 [대승아비달마집론] 안혜의 [대승아비달마잡집론] 호법 등의 [성유식론] 등에 나오는, 정진(精進) 또는 근(勤)의 5단계의 차별인 피갑(被甲) 가행(加行) 무하(無下) 무퇴(無退) 무족(無足)의 5정진(五精進) 가운데 하나이다.
무퇴(無退)는 문자 그대로의 뜻은 물러나지 않음으로, 불교 경전에서의 견용(堅猛 견고하고 용맹한 것)에 해당하는데, 추위나 배고픔 등의 고통을 능히 인내로써 받아들이고, 열등한 선(善) 또는 선법(善法)에 대해서 혐오(嫌惡)나 만족함을 일으키지 않으며, 다음 단계의 뛰어난 공덕 등을 기쁘게 구하는 것을 말한다.
무하(無下)
무하(無下)는, 무착의 [대승아비달마집론] 안혜의 [대승아비달마잡집론] 호법 등의 [성유식론] 등에 나오는, 정진(精進) 또는 근(勤)의 5단계의 차별인 피갑(被甲) 가행(加行) 무하(無下) 무퇴(無退) 무족(無足)의 5정진(五精進) 가운데 하나이다.
무하(無下)는 문자 그대로의 뜻은, 낮추지 않음으로, 불교 경전에서의 유용(有勇 용감한 것)에 해당하는데, 증득해야 할 선법(善法)에 대해 스스로를 경멸하지 않고, 그 선법(善法)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묵조선
달마선의 하나로 화두와는 상관없이 자신의 마음을 밝히고 본성을 비추어 보는 것을 묵조선이라 한다.
문도(門徒)
같이 배우는 이나 문하의 제자. 종문(宗門)의 신도.
한 절에 딸린 신도.
문수보살(文殊菩薩)
1) 대승보살로 문수사리라고도 하며 석가모니 부처님의 왼쪽 협시불로 머리에다 5계를 맺은 것은 지혜를 표방하는 뜻이다.
오른 손에 지혜의 칼을 들고 왼쪽에는 꽃 위에 지혜의 그림이 있는 청련화를 쥐고 있다.
사자를 타고 위엄과 용맹을 보이는 상도 있다.
2) 문수사리보살로 석가모니부처님의 대지혜를 상징하며 협시보살, 오른손에 지혜의 칼을 쥐거나 푸른 연꽃을 지니고 좌대는 연화대를 이용하거나 청사자를 타고 있는 모습을 나타내기도 함.
3) 불교에서 관음보살, 보현보살과 더불어 주된 신앙의 대상이 되어온 대승보살(大乘菩薩) 중 하나.
① 문수사리(文殊師利) 또는 문수시리(文殊尸利)의 준말이다.
범어로는 만주슈리(Majushri)이다. 더 줄여서 문수(文殊)라고도 한다.
문수(文殊)는 묘(妙)하다는 뜻이고 사리는 길상(吉祥)이라는 의미다.
합쳐서 묘길상(妙吉祥)으로 푼다.
문수보살은 석가모니불의 삼존으로 보현보살과 함께 이룬다.
또한 비로자나불의 삼존으로도 보현보살과 더불어 봉안되고 있다.
고로 지혜의 상징인 문수보살은 행원(行願)의 상징인 보현보살과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인 것이다.
문수보살은 연화대에 앉아 오른손에는 칼을, 왼손에는 청련화(靑蓮花)를 들고 있다. 용맹과 위엄의 상징인 사자를 타고 있다.
화엄경에서는 선재동자(善財童子)의 스승으로 나온다.
중국의 오대산(五臺山)은 문수신앙의 터전이다.
우리나라의 오대산이란 산 이름도 문수신앙에서 비롯된 것이다.
바로 오대산에서 문수보살이 1만 보살과 더불어 주처 한다는 것이다.
한국의 문수신앙은 신라의 고승 자장(慈藏)으로부터 비롯된다.
중국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자장은 오대산 기슭에 적멸보궁을 건립한다.
오대산이 문수신앙의 중심도량이 된 것이다.
② 문수사리보살이라고도 하며 원래 범어의 발음은 만주슈리이고 이를 한자어로 바꾼 것이 문수사리이며 약칭하여 문수라 한 것이다.
문수보살은 대승보살 가운데 한 사람으로 특히 초기의 대승경전에서 설법을 행하는 부처님의 대변자로서 많은 역할이 나타나 있고 반야경을 결집 편찬한 보살로도 알려져 있다. 문수보살은 뛰어난 지혜의 공덕을 지녔기 때문에 항상 석가모니부처님의 보처로서 왼쪽에 위치하여 지혜를 맡고 있으며 부처님의 중생교화를 돕기 위하여 일시적인 권현으로 보살의 자리에 있다고 한다.
또 화엄경에서는 비로자나불의 협시보살로 대행의 보현보살과 더불어 삼존불의 일원이 되어 있다.
문수보살은 보통 연화대에 앉아 오른 손에는 지혜의 칼을, 왼손에는 지혜의 그림이 있는 푸른 연꽃을 들고 있다.
사자를 타고 있는 것은 위엄과 용맹을 나타낸 것.
이 보살은 벌써 성불하여 용존상불, 대신불이라 하며 또 미래에 성불하여 보건여래라고 부른다. 환희장마니보적여래 라고도 한다.
문혜(聞慧)
문혜(聞慧)는 3가지 뛰어난 유루혜(有漏慧), 즉 3가지 뛰어난 세간의 지혜인 문혜(聞慧) 사혜(思慧) 수혜(修慧)의 3혜(三慧)의 하나이다.
문소성혜(聞所成慧)라고도 한다. 또한 3혜에 생득혜(生得慧)를 더한 4혜(四慧)의 하나이다.
3혜는 모두 무루성혜(無漏聖慧) 즉 무루지(無漏智)가 생겨나게 하는 역할을 한다. 문혜(聞慧) 또는 문소성혜(聞所成慧)는 스승이나 친구로부터 교법을 들음에 따라 생겨나는 뛰어난 지혜[勝慧]를 말하며, 사혜(思慧)와 수혜(修慧)의 근거 또는 바탕이 된다.
미래(未來)
미래(未來)는 과거 현재 미래의 삼세(三世) 중 하나로, 어떤 法이 아직 이미 생겨나지 않은 것이다.
불교에서는 시간의 실체를 인정하지 않고, 잠깐도 정지하지 않고, 생기면 반드시 멸하는 유위법(有爲法: 현상계의 사물)에 의지하여 가설적 존재로서의 시간을 세운다.
미륵보살(彌勒菩薩)
대승의 보살이다.
인도의 부라만이라는 귀족출신으로 석존의 교화를 입어 미래에 성불하리라는 수기를 받고 도솔천에 올라가 살면서 석가모니 입멸 후 56억7천만년을 지나면 다시 이 사바세계에 온다는 것이다.
화림원 안의 용화수 아래에서 성도를 이룬 다음 3회의 설법을 하여 부처님 당시에 제동에서 빠진 모든 중생을 완성의 길로 인도한다는 것이다.
미륵불(彌勒佛)
불교의 미래불이다.
미륵불은 석가모니 부처가 열반에 든 뒤 56억 7000만 년이 지나면 이 사바세계에 출현하는 부처이다. 그때의 세계는 땅은 유리와 같이 평평하고 깨끗하며 꽃과 향이 뒤덮여 있다고 한다.
인간의 수명은 8만 4000세나 되며, 지혜와 위덕이 갖추어져 있고 안온한 기쁨으로 가득 차 있다.
이 세계에 케투마티(Ketumati)라는 성이 있고, 상카(Sankha)라는 왕이 정법(正法)으로 나라를 다스리는데, 이 나라에는 수많은 보배들이 길거리에 즐비하지만, 사람들은 이 보배를 손에 들고 [옛 사람들은 이것 때문에 서로 싸웠으나 오늘날은 이것을 탐하거나 아끼는 사람이 없게 되었다]고 한다.
이와 같은 아름다운 세상에 미륵이 수범마와 범마월을 부모로 삼아 태어난다.
그는 출가하여 용화수(龍華樹) 아래에서 성불하고 3회에 걸쳐 사제(四諦), 십이연기(十二緣起) 등의 법문을 설한다. 6만년 동안 중생을 교화한 뒤 미륵불은 열반에 든다. 그런데 미륵불의 세계인 용화 세계에 태어나기 위해서는 현실세계에서의 갖가지 노력이 요청된다.
즉 경(經), 율(律), 논(論)의 삼장(三藏)을 독송하거나, 옷과 음식을 남에게 보시하거나, 지혜와 계행(戒行)을 닦아 공덕을 쌓거나, 부처의 향화(香華)를 공양하거나, 고통받는 중생을 위하여 깊은 자비심을 내거나, 인욕과 계행을 지켜 깨끗하고 자비
로운 마음을 기르거나, 절을 세워 설법하거나, 탑과 사리를 공양하며 부처의 법신(法身)을 생각하거나, 사람들을 화해시켜 주거나 하는 등의 공덕으로 용화회상에 태어날 수 있다고 한다.
결국 이 미륵신앙은 미륵불이 출현하는 국토의 풍요로움과 안락함에 대해 설함으로써 중생으로 하여금 죄악의 종자와 모든 업장과 번뇌의 장애를 끊고 자비심을 닦아서 미륵불의 국토에 나도록 하자는 데 그 진의가 있다.
미륵전(彌勒殿) 용화전(龍華殿)
미륵부처님이나 미륵보살을 모신 불전, 일명 용화전으로도 부른다.
미래의 부처 미륵이 그분의 불국토인 용화(龍華)세계에서 중생을 교화하는 것을 상징하는 법당, 즉 먼 미래의 새로운 부처님 새계에서 함께 성불하자는 것을 다짐하는 참회와 발원의 장소이다.
① 미륵전은 용화세계를 상징한다는 뜻에서 용화전이라고도 하고, 미륵의 한문의역인 자씨를 취하여 자씨전(慈氏殿)이라고도 부른다.
② 현재 도솔천에서 설법하며, 내세에 성불하여 중생을 교화할 미륵보살을 봉안하거나, 용화세계에서 중생을 교화하게될 미륵불을 봉안하게 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대개 미륵불을 봉안한다.
③ 미륵후불탱화로는 일반적으로 미륵정토변상, 용화회상도, 미륵내영도의 세 가지 유형이 있다.
미륵정토변(彌勒淨土變), 미륵보살이 설법하고있는 도솔천의 미륵천궁을 묘사하며, 미륵보살을 단독으로 그릴 때도 있지만 보살과 성중(聖衆), 그리고 범천과 제석천등의 외호신(外護神)을 배치하는 경우가 많다.
용화회상도(龍華會上圖), 용화수 아래에서 미륵불이 되어 중생을 제도하는 모습을 묘사. 미륵내영도(彌勒來迎圖), 보관을 쓴 미륵보살이 구름을 타고 내려오는 장면을 묘사. 주위에 보살과 성중, 범천과 제석천들이 둘러쌓고 있으며 미륵정토에서 수행하는 자가 작게 배치된다.
우리나라 대표적인 미륵전은 전라도 김제의 금산사 미륵전이다.
미타정인(彌陀定印)
① 아미타여래인의 수인으로 묘관찰지정인이라고도 함.
선정인과 같은 모습에서 검지를 세워서 엄지와 서로 끝을 마주 대어 검지의 등이 사로 닿게 하는 모양으로 미타정인에는 9품(九品)이 있다.
② 미타정인은 아미타불의 수인인데, 좌선자세에서 양손의 검지를 꼬부려 손가락 끝을 붙이되 검지 손가락의 등이 서로 맞닿도록 하는 상품상생인을 비롯하여 아홉 가지의 모양이 있다. 이것은 구품인이라 하여 극락정토에 왕생하는 아홉 가지의 차별을 의미하는데, 상품, 중품, 하품을 각각 상, 중, 하로 세분한 아홉 가지이다.
미혹(迷惑)
① 헤매는 것. 도리에 어두워 헤매는 것. 마음이 도리에 어두워 헤매고 정신이 어리둥절한 모습. 또 미(迷)는 사리(事理)의 잘못됨을 말하고 혹(惑)은 사리(事理)에 밝지 못한 것을 말함.
② 남을 미혹하게 하는 것.
③ 술등에 탐익하는 것
밀교의 융성
대승블교의 두 학파가 학문불교로서 변화해 가면서 초기의 신선함을 잃는 것과 함께 밀교(密敎)가 일어나 인도 불교의 주류를 이루었다.
① 밀교란 비밀불교란 뜻으로 주술적인 의례를 통해서 신비주의적인 교의를 설법하는 가르침이다.
이미 원시불교 무렵부터 인도 일반사상의 영향을 받아 주술적 요소가 불교에 침입해 특히 재가신자들 사이에서 그것을 배제하는 일은 불가능했었다.
② 재가신자들에게서 흥했던 대승불교에서는 더더욱 그런 경향이 심했다.
한편에서는 공과 같은 심오한 철학을 탄생시키면서도 경전은 대부분 다라니 따위의 주문을 설교했으며 그 효과를 가르쳤다.
③ 부처님의 법신이란 이론도 이런 범신론적 경향에서 신비주의와 쉽게 결합하고, 오히려 신비주의적 해석 안에 불교의 구극적 입장이 있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해서 대승불교의 새로운 해석이라는 형태로 밀교의 교의가 성립되었다.
그 시기는 7세기 경 최초로 나타난 [大日經]과 때를 같이 한다.
조금 뒤에는 [金剛頂經)]이 나타나 대승과는 다른 밀교의 특색이 명료해졌다.
④ 밀교에서는 제불과 보살, 명왕(明王)의 세계를 묘사한 만다라(蔓陀羅)를 장식하여 그 앞에서 인계(印契)를 맺고 진언(眞言 만트라)을 외우고 요가를 수행한다.
진언은 주(呪)라고도 해석되지만 다라니(陀羅尼)란 말로 그 속에서 부처님 가르침의 진언 수행을 실천의 주안으로 삼는 까닭에 밀교를 진언승(眞言乘)이라고도 한다.
⑤ 밀교 독특의 요가가 발달함에 따라 그것에 부응해 그 교리와 예법이 상세하게 규정되고 여러 가지 유파도 생겼다.
금강승(金剛乘)이라든가 시륜승(時輪乘)등이 그것이다.
그 중에는 좌도밀교(左道密敎)라 불리는 쾌락주의의 사도(邪道)까지 나타났다.
⑥ 반야(般若)와 방편(慈悲)의 합치라는 이상경(理想境)을 반야는 여성, 방편은 남성으로 내세워 그 결합을 강조하는 것이다. 밀교는 깨달음을 얻기 위한 방법 즉 행(비밀행:三密)을 극기에 의해 단련하는 면이 적고 현실긍정적이기 때문에 일반인에게는 환영받았지만 동시에 타락의 위험도 내포돼 있었던 것이다.
⑦ 후기 밀교는 그 성전을 탄트라라 칭하고 의궤(義軌)와 예법을 주요한 내용으로 했다.
탄트라란 말은 힌두교에서 성전이란 뜻으로 사용하던 말로 밀교에서도 사용됨으로써 밀교를 널리는 탄트리즘이라고도 부른다.
금강승의 좌도밀교는 힌두교의 탄트리즘의 영향을 받아 성립된 것으로 보인다.
⑧ 이슬람교도가 북인도 각지에 침략을 개시했던 11세기 경 인도 불교는 밀교 일색이었으며 그것은 거의 힌두교와 구별이 안 되는 것이었다.
13세기 초 이슬람군대에 의해 벵갈지방의 대사원이 파괴되고 불교의 근거지가 상실되자 출가수행자와 학승들은 경전을 가지고 위난을 피해 네팔과 티베트로 갔다. 그리고 교단 조직의 붕괴와 함께 불교는 힌두교 속으로 흡수되었다.
이로써 인도불교는 마지막을 맞이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