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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프랭크지안 2017. 5. 28. 23:36


괘불

괘불은 기우제, 영산제, 예수제, 수륙제 등 사찰에 대중이 많이 모이는 큰 집회 때 야외에 모셔지는 거대한 불화이다.

평소에는 법당 뒷편의 괘불함에 보관되며, 사용시에는 옥외의 괘불대에 걸려진다.

이러한 괘불의 조성은 불교국가 일반에 보편한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와 서역 등 몇몇 국가에서만 유행하였다.

우리나라의 괘불은 1600년대에서부터 1900년대에까지 약 300년에 걸쳐 제작된 70여점이 전해지고 있으며, 그중 절반 이상이 영남지역의 사찰에 소장되어 있다.

괘불의 내용으로는 주로 석가모니불이 많은데, 1, 3, 또는 다위의 입불, 좌불 등이 있다.

그 형태는 석가모니불을 보신불로 하여 장엄 보살상으로 표현하는 것이 많으며, 영산회상도와 같은 그림도 있다.

괘불의 도상적 특징은 괘불 특유의 대형화된 형식상의 문제와 영산회상의 주존에 대한 표현에 있다.

일반불화에서 통용되는 의궤와는 달리 괘불 특유의 도상을 지니고 있으며, 이는 전적으로 영산회상의 장엄한 종교적 분위기를 대형화하여 표현하였다고 풀이 할 수 있겠다.

오늘날 티벳의 괘불 가운데 30여미터의 크기에 달하는 것도 있어 대형괘불의 기원은 서역과 밀접한 연관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서역에서는 탱화를 탕가(Thangka)라고 발음하고 있는데, 그 발음이 우리의 탱화와 유사하다.

또한 우리나라에서는 불화를 정화(幀畵)라 표기하고 그대로 정화라 읽지 않고 탱화라 발음하는 것에서 그 영향을 짐작할 수 있다.  

타력염불(惰力念佛)

아미타불의 본원(本願)에만 의지하여 자기 스스로 힘서 닦는 공을 함께 하지 않고 염불만을 하는 것을 말한다.  

탁발(托鉢)

불교 수행법 중의 하나로 걸식(乞食)수행을 말한다.

범어로는 핀다파타. 의역하면 걸식(乞食) 걸행(乞行)으로 푼다.

탁발이란 발우(鉢盂)를 들고 집집마다 돌아다니면서 음식공양을 구하는 것이다.

여기서 탁발(托鉢)이란 글자는 발우에 몸을 기탁한다는 의미다.

그만큼 불가에서는 먹을 것을 담는 발우를 중시한다.

출가자가 걸식을 하는 것은 생산이나 상행위를 하지 못하기 때문이며, 출가자에게 생산이나 상행위를 금하는 것은 이익추구를 금하기 위해서다.

이익추구란 궁극적으로 남의 희생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인 것이다.

따라서 걸식은 출가자의 중요한 수행법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직접 음식을 탁발하기도 하지만 주로 곡식이나 재물을 탁발해서 절 운영이나 특정한 불사(佛事)에 충당했다.

그러나 지금은 탁발을 빙자한 비행을 방지하기 위해 불교 종단에서는 원칙적으로 탁발을 금하고 있다.

동남아의 소승 불교권에서 지금도 전통적인 탁발을 하고 있다.

생명을 살리는 음식철학은 불교만큼 탁월한 종교가 없다.

그래서 생명과 환경과 평화의 코드로서 불교사상이 새롭게 떠오르고 있다.

전 세계적인 현상이다.

이러한 탁발수행은 승려의 아집아만(我執我慢)을 경계하려는 깊은 의미가 있다.

철저히 하심겸허(下心謙虛)의 불도를 깨우치기 위함이다.

더불어 시주하는 사람들에게 보시공덕을 길러주는 의미도 있다.

그러나 근래들어 탁발행위가 타락의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다.

사이비승려의 등장 때문이었다.

식사 때, 수행승이 발우(鉢盂)를 들고 집집을 다니며 음식을 구걸함.

승려가 집집마다 다니며 염불을 하고 곡식 따위를 구걸함.

중국의 사찰에서, 식사 때 승려들이 발우를 들고 식당으로 향함 

탁발(托鉢)

탁발은 걸식 또는 행걸이라 하며 옛적 인도의 수행자들은 생명을 유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음식물을 빌어먹는 것이 당시의 풍습 이였는데 석존께서도 어린 제자들에게 출가 사문의 생활은 이 세상의 어떤 생활보다도 하급의 생활이며 출가자는 걸식에 의해야 하며.....라 했다.

출가자는 세벌의 옷과 발우 이외의 것을 지니거나 비축해서는 안 된다 는 계율과 출가자는 의식주를 위해 생업을 가져서는 안 된다

는 계율에 따라 걸식을 했으며 석존께서도 예외 없이 손수 발우를 들고 집집마다 다니며 음식을 구걸했다.

수행자들은 걸식을 통해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나를 낮춤으로써 아집과 아만 그리고 인욕하는 마음을 닦게 되고. 중생들은 출가자들에게 음식을 베풀게 되므로 보살의 마음을 일으키고 보시의 공덕을 쌓게 하는 계기가 된다.

탁발은 가난한 집과 부잣집을 가리지 않고 차례로 일곱 집에서 탁발하라고 했다. 걸식 때의 네 가지 마음가짐.

주정계. 심신을 바르게 가져야 한다.

주정위의. 용모를 단정히 하고 위의를 갖추어 보는 이로 하여금 공경하고 믿고 따르게 해야 한다.

주정명. 법도 따라 걸식하고 다섯 가지 부정한 생각을 여의어야 한다.

주정각. 몸이 괴로움의 근본 인을 알고 음식은 겨우 몸을 지탱할 수준에서 만족해야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스님들이 곡식이나 불사에 사용할 재물을 얻기 위하거나 수행의 한 방편, 그리고 포교의 일환으로 탁발을 하였으나 요즘에는 다양한 생활문화가 바뀌어 현실적으로 탁발에서 중생들과의 문제점이 속출하여 각종단과 불교 단체에는 공식적으로 탁발을 금하고 있다. 

탈의파와 현의옹

저승의 상징나무인 의령수에는 두 사람의 지킴이가 있다.

바로 탈의파(奪衣婆)와 현의옹(懸衣翁)이다.

문자 그대로 탈의파는 저승길에 오른 나그네의 옷을 벗긴다.

탈의파는 노파이기 때문에 차마 저항도 못할 것이다.

이때부터 망자는 완전누드 상태가 된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저승길이 그리 쓸쓸하지는 않을 것 같다.

탈의파는 벗긴 옷을 현의옹에게 건넨다. 그러면 현의옹은 옷을 의령수 가지에 건다. 생전의 죄를 심판하기 위함이다. 

탐진치

탐욕(貪慾)과 진에(?)와 우치(愚癡), 곧 탐내어 그칠 줄 모르는 욕심과 노여움과 어리석음.

이 세 가지 번뇌는 열반에 이르는 데 장애가 되므로 삼독(三毒)이라 함.

()

탑은 범어로 스투파의 음역인 탑파의 약칭으로 방분 원총이라 의역한다.

부처님과 스님들의 사리, 유골, 유품을 안치한다. 탑은 신앙의 대상으로서 부처님과 스님들의 덕을 기리는 성스러운 분묘 혹은 공덕을 쌓는 청정 한곳을 뜻한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열반 후 다비를 하여 나온 사리를 여덟 나라에 나누어 탑을 세우고 생전의 부처님처럼 모셨는데 것을 근본 팔탑이라 한다.

100년 후 인도를 통일하고 제국을 세운 마우리야 왕조의 아쇼카왕이 이 팔탑을 해체하여 사리를 다시 84천으로 나누어 전국에 84천 개의 사리탑을 세웠다.

불탑은 사용된 자료에 따라 목탑, 석탑, 전탑, 모조석탑, 금동탑, 청동탑, 철탑 등으로 구분한다.

탑돌이 법

원래는 불교의식에서 비롯된 민속놀이다.

특히 불탄절이나 큰 재()가 있을 때 밤새도록 탑을 돌았다. 그러면서 부처님의 공덕을 기리고 소원을 간구했다.

이러한 풍속은 석가모니의 제자들이 석가모니에게 참배하고 오른쪽으로 세 번 돌았다는 우요삼잡에서 유래한다. 그래서 탑을 돌 때도 탑을 자신의 오른 쪽에 두고 돌았다. 그래야 탑돌이 과정에서 서로 부딪치지 않는다.

그러나 일상적으로 탑돌이를 하거나 홀로 할 때는 좌우로 돌아도 괜찮다는 생각이다. 아니 훨씬 좋을 수 있다.

왜냐하면 인간의 육신은 좌우(左右)를 함께 쓰도록 되어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을 경우 흔히 말하듯 탈이 난다.

백번 천번 도는 탑돌이에서 한 방향으로만 돈다면 적지 않은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

인간의 두뇌는 왼쪽 뇌가 이성을, 오른쪽 뇌가 감성을 지배하고 있다.

알기 쉽게 좌이우감(左理右感)이다. 그런데 한쪽 몸만 지속적으로 사용하면 균형과 조화가 깨진다.

한마디로 몸이 망가지고 병이 난다.

스님들 중에 환자가 많은 이유가 이런 데에도 있다.

불가(佛家)의 큰절도 일어나기 귀찮다고 계속 엎드려 절만 한다면 백번을 채우기도 힘든다.

구부렸다 폈다를 계속하는 큰절은 대단히 유용한 건강비결이기도 하다.

음양상하가 한데 어우러져야 한다.

탑비(塔碑)

탑비(塔碑)는 고승의 부도에 부속되어 석조로 조영되는 것으로써 일반적으로 대왕의 석비나 묘비와 그 형태는 동일하나 불교의 유물인 까닭에 그렇게 부르고 있다.

탑비에는 고승의 일평생 행적이 건립 년월일과 함께 새겨 지고 있어, 그 비문의 내용이 역사적으로 귀중한 사료가 되고 있다.

또한 서체는 금석학의 입장에서 중요한 연구자료가 되기도 한다.

탑비는 맨 밑에 구부(龜趺)가 조각되고, 그 위에 비신(碑身)이 세워지며, 상부에는 용머리가 구름과 함께 화려하게 조각 장식되어 진다.

태고 보우(太古普愚)

태고보우(太古普愚) 1301(忠烈王27)~1382(禑王8), 고려 말기의 승려 보우의 법호. 일명 보허. 속성은 홍씨. 13세에 양주 회암사에서 광지에게 중이 되고, 19세에 가지산총림에서 도를 닦아 26세에 화엄선에 합격하다.

30세에 룡문산 상원암, 서성의 감로사에서 고행 정진하여 지혜가 크게 열리었으며 38세 때 송도 전단원에서 참선하다가 다음해 정월에 크게 깨치다.

41세 때 삼각산 중흥사 동쪽에 태고암을 짓고 오랫동안 주석하면서 호를 태고라 하고 태고암가를 짓다.

46세 때 중국에 건너가 약 2년 동안 행유하면서 나라 황제로부터 특별한 우대를 받아 두어 차례 법회를 주관했으며 또 임제선사의 18대 법손으로서 당시 중국의 고승인 석옥 청공선사의 법을 잇다.

48세 때 본국에 돌아와 룡문산에 소설암을 짓고 주하든 중 공민왕의 지우를 받아 52세 때 경룡사에 주석하였고,

56세 때 봉은사에서 개당하였으며 이어 왕사로 책봉되다.

원융부를 설치하여 구소원융오교홍통에 힘썼으며 71세 때 국사로 책봉되었고,

81세 때 우왕에 의하여 재차 국사 책봉되는 등 왕사로서 16, 국사로서 12년 동안 봉직하다가 우왕 8년에 세수82, 법랍69로 화연을 마치다.

태산대왕

명부 시왕의 하나로 본래의 법신은 약사여래로서 왕신을 명도에 나타내어 죄인이 태어날 곳을 정해 준다고 한다.

시왕탱화에서는 오른손에 수염을 잡고, 왼손에는 홀을 잡고 산수병풍 앞에 바르게 앉아 있는 모습으로 녹사, 판관, 귀왕 등의 옹호와 아랫부분에 대애지옥의 장면과 힘께 묘사된다.  

탱화 불화(佛畵)

탱화는 족자그림을 말한다.

특히 그 중에서도 족자형식의 불화(佛畵)를 지칭한다.

탱화는 내용에 따라 상단(上壇) 중단(中壇) 하단(下壇) 탱화로 나눈다.

상단탱화는 중앙에 모셔진 불보살의 뒤에 거는 탱화다.

대웅전에선 석가모니불탱화가, 극락전이나 미타전에선 아미타불탱화가, 대적광전이나 대명광전에선 비로자나불탱화가, 약사전에선 약사불탱화가 주로 걸린다.

중단탱화는 불단(佛壇)의 좌우측에 있는 영가단(靈駕壇)에 거는 탱화로 격이 한 수 아래다.

주로 호법신이나 신중(神衆)탱화가 걸린다.

이를테면 칠성탱화나 산신탱화다.

하단탱화는 명부전에서 지장과 시왕의 뒤에 건다.

감로탱화이다.

우리나라 탱화의 기원은 확실치 않다.

다만 현존하는 탱화는 13세기 고려불화가 5점 정도 국내에 있고 일본에 80여 점이 전해지고 있다.

고려시대 탱화가 귀족적이라면 조선시대 탱화는 서민적이다. 그래서 고려탱화는 주존(主尊)을 돋보이게 배열하였으나 조선탱화는 보살상이나 불제자들이 주존을 둘러싸게 그려져 있다.

1) 상단탱화

전각의 상단 즉 불전(佛殿)의 중앙에 모셔진 불 보살상의 뒷면에 거는 탱화로서 다음과 같은 종류가 있다.

석가모니불탱화 : 대웅전 후불탱화로서 영산회상도를 바탕으로 해서 아미타불과 관음보살 대세지보살 그리고 약사불과 일광보살 월광보살 이 각각 좌우에 협시한 구도가 일반적이다.

아미타불탱화 : 극락전 탱화로서 서방정토에서 아미타여래가 설법하는 모습을 그린 것이 보통이지만 대웅전 후불탱화와 같은 영산설법도의 내용을 그린 것도 있다.

비로자나불탱화 : 대광명전대적광전 후불탱화로서 [화엄경]의 설법장면을 그린 것이다.

대웅전이 주불전일 경우에는 비로전이나 문수전 화엄전 중앙에 배치된다.

약사불탱화 : 약사전 후불탱화로서 약사정토의 특성을 묘사했다.

일광 월광보살을 협시보살로 하고 사천왕이 호법신중을 하고 있다.

단독으로 배치되기보다는 삼불 탱화의 하나로 많이 그려졌다.

2) 중단탱화

불단의 좌우측에 있는 영가단(靈駕壇)에 거는 탱화로서 주로 신중(神衆)이나 호법신(護法神) 등을 그린 탱화이다.

칠성(七星)탱화: 중국 도교의 북두칠성에 대한 신앙이 칠성신앙으로 불교에 습합되면서 그려진 탱화이다.

산신(山神)탱화 : 토속신앙의 산신신앙이 불교에 습합되어 독립된 신앙체계를 이루게 되면서 산신각에 봉안된 탱화로 산신과 그의 화신인 호랑이를 그렸다.

3) 하단탱화

명부전의 지장보살 시왕상 뒤에 거는 탱화이다.

대체로 불전의 좌우측 벽면에 설치되는 하단의 전면에 영가의 위패나 사진을 봉안하고 그 뒷면에 탱화를 건다.

템플스테이

템플스테이(Temple Stay), 사찰문화체험. 템플스테이는 말 그대로 산사에 머물며 절에서 행해지는 전통문화를 몸소 체험하는 것으로 울력(노동)과 발우공양, 선무도 등 사찰에서만 전해 내려오는 각종 생활방식을 경험할 수 있다.

통알

새해가 되어 덕을 입고 있는 교주이신 석가모니 부처님을 비롯 삼보와 호법신중과 인연있는 일체대중에게 세배드리는 의식이다.

온 대중이 대웅전에서 우선 불전에대중은 업드려 청하옵니다. 일대교주 석가모니불이시여하고 세알 삼배를 한다. 이것은 세속의 세배와 달리 삼보로부터 은혜를 입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통괄적으로 그 동안의 은덕에 감사드리고 모두에게 부처님의 자비영광이 함께 할 것을 기원하는 의식이다.  

퇴마(退魔)

또는 엑소시즘(exorcism)은 귀신을 쫓아내는 일을 말한다. 이것을 퇴마를 행하는 사람을 퇴마사 또는 엑소시스트라고 한다.

일반적으로 가톨릭에서 행하는 엑소시즘 의식만을 엑소시즘으로 보는 경우가 많은데, 엑소시즘이란 귀신을 쫓아내는 행위 자체를 말하며 이러한 것은 많은 종교들에서 존재한다.

기독교의 엑소시즘 가톨릭에서의 엑소시즘가톨릭 교회법에 의하면 엑소시즘은 가톨릭 의식의 하나이지만 세례성사, 고해성사 등과 같은 성사로 분류되지는 않는다.

성사와 달리 엑소시즘은 그 완전함과 효력이 확립된 형식의 엄정한 적용이나 사전에 정해진 예식의 실행 등에 얽매이지 않는다.

엑소시즘이 효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적법한 교회당국의 허가와 엑소시스트의 신앙심이 필요하다.

가톨릭 교회의 현행 엑소시즘 의식은 19991월에 개정되었는데 전통적 라틴어 의식도 옵션으로 허락하고 있다.

엑소시즘은 영적으로 지극히 위험한 일로 간주되고 있다.

가톨릭의 엑소시즘 의식은 악령들린 사람은 악령에 의해 육체적인 자유를 빼앗겼지만 자유의지는 여전히 존재한다고 간주하며, 기도, 축복, [Of Exorcisms and Certain Supplications] 문헌을 이용한 기도문들을 이용하여 이루어진다.

근대에 들어 가톨릭 주교들은 엑소시즘을 거의 허가하고 있지 않으며 의심되는 사례들에 대해서 정신적 혹은 육체적 질병의 가능성에 더욱 중점을 두고 접근하고 있다.

정식의 엑소시즘은 규정된 성직자 혹은 고위 성직자에 의해서만 실행될 수 있으며, 주교의 서면에 의한 허가와 정신장애를 배제하기 위한 세밀한 의학적 검사가 선행

되어야 행해질 수 있다.

[가톨릭 백과사전 (Catholic Encyclopedia)] 1908에 의하면?신앙과 미신은 역사적으로 많은 부분이 서로 연관이 있지만 미신은 반드시 신앙과 구분되어져야 하고 마술은 (백마술이라 할지라도) 합법적인 종교적 예식과 구분되어져야만 한다.?라고 정하고 있다.

[가톨릭 의식서 (Roman Ritual)]에 기술된 악령들린 것으로 의심되는 징후에는 악령들린자가 전혀 알지 못하는 외국어 혹은 고대어로 말하는 것, 초자연적인 능력이나 힘, 알 방도가 없는 숨겨진 물건이나 다른 곳에 있는 물건을 알아맞히는 일, 성스러운 것에 대한 혐오, 성스러운 것에 대한 지속적이고 극심한 불경과 모독 등이 있다.

개신교에서의 엑소시즘, 개신교에서는 특별한 엑소시즘 의식이나 엑소시스트는 없다.

다만 목사가 귀신을 쫓기 위하여 기도를 행위를 하며 이를 축사(逐邪)또는 축사행위라 한다. 다만 개신교에서는 축사행위가 성경적이냐 아니냐 하는 논쟁이 있으나 축사를 인정하는 쪽은 마가복음 16:17을 근거로 들어 축사를 인정하고 있다.

정교회에서의 엑소시즘, 유대교에서의 엑소시즘모세시대의 신약 이전 유대교 문헌들에 나타난 엑소시즘은 독성이 있는 뿌리 추출액 등의 물질과 희생제물을 통해서 이루어졌다.

문헌에 의하면 엑소시즘이 유대교의 에세네파에서 행해졌다고 기록되어 있다.

유대교의 랍비 예후다 페타야(Yehuda Fetaya)는 그의 저술[Minchat Yehuda]에서 엑소시즘에 대해 상세히 기술하고 있으며 그가 악령에 사로잡힌 사람들을 어떻게 치료했는지, 그리고 다른 여러 주제에 대한 유대교의 입장에 대해 논하고 있다.

그는 1859년에서 1942년까지 이라크에서 살았으며 그 책은 히브리어로 저술 된 후 영어로 번역되었다.

불교에서의 엑소시즘, 불교에서는 구병시식(救病施食)이라는 의식이 있다. 이는 귀신이 몸에 달라붙어 병에 걸린 사람을 치료하기 위한 의식인데, 귀신을 없애거나 쫓아내는 것이 아닌 음식을 주고 법문을 알려주어 귀신을 불법에 귀의시키기 위한 의식이라는 점에서 일반적인 엑소시즘과는 조금 다르다. 이러한 의식은 그 사찰에

서 가장 법력(法力)이 높은 승려만이 할 수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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