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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마선(下蟆禪)
두꺼비는 한갓 뛰는 것만을 알고 다른 활발한 활동을 알지 못하는 것 이믈 선하는 사람이 한편에만 고집하고 자유로운 살림살이가 없는 이를 꾸짖는 말.
나뭇잎에 앉아 있는 두꺼비 모양이 좌선하는 것과 비슷함으로 좌선이라 이름을 붙임.
하안거(夏安居)
음력 4월15일부터 7월15일까지 3개월 동안 스님들께서 외출을 금하고 참선을 중심으로 수행에만 전념하는 제도.
불교에서 승려들이 여름동안 한곳에 머물러 수행하는 일.
음력 4월 보름부터 7월 보름까지다.
동안거에 대척되는 말이다.
원래 안거는 범어의 바르샤를 의역한 말이다.
바르샤는 비를 말한다.
하안거(夏安居)는 하행(夏行) 하경(夏經) 하단(夏斷) 하좌(夏坐) 하롱(夏籠) 백하(白夏) 좌하(坐夏) 좌랍(坐臘)이란 다양한 언어로 장식되어 있다.
원래 인도는 비가 많은 나라다. 우기와 건기가 뚜렷하다.
우기인 몬순기에 3개월 동안 엄청난 비가 내린다. 그래서 아예 외부출입을 삼가고 일정한 곳에 머물러 수행과 정진을 한 것이다.
아울러 여름에 돌아다니면 뭇 벌레와 생명을 죽일 수 있으므로 이를 피하고자 함이다.
역시 불교는 생명존중의 종교다. 또 지방마다 우기가 다르므로 전(前) 중(中) 후(後)로 나누어 하안거를 실시했다.
보통 안거를 시작하는 것을 결제(結制) 결하(結夏)라 한다. 그리고 안거를 푸는 것을 해제(解制) 해하(解夏)라고 했다. 또한 안거중에 밖으로 나가는 것을 파하(破夏)라 하였다. 이러한 경우 대단히 엄중하게 다스렸다.
해제일은 자신의 허물을 지적 받고 사과하는 자자일(自恣日)을 겸했다. 이렇게 영혼과 육신이 맑아진 다음에야 7월 보름 해제일에 우란분재(盂蘭盆齋) 공양을 받을 수 있었다.
한국불교 법화종(韓國佛敎法華宗)
한국불교 법화종(韓國佛敎法華宗)은 1969년5월31일 서울 성북구 삼선동 2가 233 소재 법화사(法華寺)에서 김혜선(金慧宣) 스님이 창종하였으며 법화사상계에 속한 한국불교의 한 종파이다.
석가모니불을 본존불로, 대각국사를 종조로, [묘법연화경]을 소의경전으로 삼는다.
종지(宗旨)는 구원실성(久遠實成) 본불인 시아본사 석가모니불의 근본교리를 봉지하고 광도중생함에 있다.
[법화경요품]을 종전으로 하고 있다.
한국불교 태고종(韓國佛敎太古宗)
한국불교 태고종(韓國佛敎太古宗)은 대한민국의 불교 종단이다.
해방 이후 비구(대처) 분규 도중에 대처승들이 따로 종단을 만든 것이 태고종이다.
1970년4월8일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 51의 7에서 박대륜(朴大輪) 대종사가 창종하였다.
석가모니불을 본존불로, 태고보우(太古普愚)를 종조로, [금강경]을 소의경전으로 삼는다.
종지(宗旨)는 석가세존이 자각 각여한 각행원만의 근본정신을 봉체하고 태고 종조의 종풍을 선양하여 전법도생함을 근본으로 한다.
태고종은 372년(고구려 소수림왕 2년) 중국으로부터 전래되어 조선 초기의 태고보우국사를 종조로 삼아 청허․부휴의 법맥을 잇고 있다.
종단기구로 종정 아래 총무원 ․ 감사원 ․ 종회와, 상벌 ․ 법규 ․ 고시의 3위원회를 두고 총무원 아래 5부 3국이 있다. 또한 총무원 예하에 각도 종무원과 사찰이 있으며, 총무원장은 종회의 선거를 통하여 종정의 승인을 얻어 취임하고 주지는 선거에 의하여 종정이 임명한다.
신도조직으로는 중앙에 전국중앙신도회와 지방에 총무원 예하 지방신도회가 있다.
교육문화사업의 일환으로 1972년 2월에 [불교성전 佛敎聖典]을 간행하였고 기관지인 [월간불교]를 발행하고 있다.
포교활동은 봄가을로 교육자 특별 수련대회를 개최하고, 종로구 사간동 법륜사(法輪寺)를 비롯하여 각 사찰은 일요일 일제히 정기법회를 가진다.
태고종은 승려의 결혼을 자율에 맡기고 있다.
한빙지옥
차가운 태풍이 몰아 치는 곳이다.
문자 그대로 차가운 얼음의 나라다.
이 바람을 맞은 죄인은 그대로 얼어붙어 얼음조각상이 된다.
피부와 살이 떨어져 나간다. 무서운 지옥이다.
할(喝갈)
큰 소리로 고함치는 것을“할”이라고 한다.
일갈(一喝)하다는 말에서도 볼 수 있듯이 원래 발음은“갈”이다.
곧 큰 소리로 고함쳐서 참선자로 하여금 고정관념과 집착, 알음알이, 그리고 사량 분별심을 끊고 깨닫게 하기 위한 것이다.
“할”은 깨달음의 길로 인도하기 위한 교육용 수단이므로 음성 그 자체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망상 피우지 말라는 의미이므로“악”“억”“꽥”해도 상관없다.
선문답에서“할”은 여러 가지 의미로 사용된다.
주로 사량 분별심 등 망상에 젖어 있는 참선자를 질타할 때 사용하지만, 때론 잘 수행하고 있음을 칭찬할 때도“할”을 사용한다.
긍정적인 할, 부정적인 할, 질타하는 할, 등 여러 가지 유형과 용법이 있다.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선의 이치를 표현할 때도“할”을 사용한다.
어떤 의미의 “할”인지 그것은 앞뒤 문장을 보고 파악해야 한다.
“할”을 가장 잘 쓴 이는 임제(臨濟)이다.
임제할 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자유자재롭게“할”을 사용했는데, 덕산의“방(棒)”과 함께 기봉(機鋒, 선의 액션)으로는 쌍벽을 이루었다.
합장(合掌)
합장은 고대 인도에서 행하던 인사법이기도 하며, 합장은 산란한 마음을 한데 모아 부처님의 마음에 합일시킨다는 의미로 한결같은 마음으로 공경을 표시하는 몸짓 행위이며 불교의 모든 예절의 기본이다.
① 두 손을 조용히 올려 열 손가락은 가지런히 붙이고 손바닥은 가운데가 뜨지 않게 해야 하며 손은 세워서 가슴 명치 부분에서 5cm 정도 띄우고 팔은 상대방이 보아 수평이 되게 한다.
② 합장한 손은 장지와 약지 끝만 보일 정도로 약45°의 각도로 유지하고서 있을 때는 발을 모으고 붙인다.
합장인(合掌印)
손바닥을 합하여 마음이 한결같음을 나타내는 인도인의 인사법과 유사한데, 보통은 두 손바닥과 열 손가락을 합하는 모양이다.
항마(降魔)
악마의 유혹을 물리친다는 뜻.
경전에 의하면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기 위해 보리수 아래에서 수행을 하고 있을 때, 여러 악마가 나타나 유혹하고 협박하며 수행을 방해했으나 부처님께서 그것을 모조리 물리치셨다. 이것을 항마라고 한다.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
① 항마인, 촉지인, 항마촉지인으로 석가모니만이 취하는 수인. 선정한 오른손을 풀어서 오른쪽 무릎 위에 얹고 손가락을 땅에 댐.
② 왼손은 손바닥을 펴거나 엄지와 중지를 맞닿게 하여 결가부좌한 오른쪽 발위와 배꼽 앞부분에 놓고 오른손은 땅으로 드리우면서 손바닥을 안으로 향하여 다섯 손가락을 펴는 결인이다. 이 수인은 부처님이 보리수 아래서 성도하실 때 마군을 항복시키고 지신(地神)으로 하여금 증명하게 한데서 유래한다.
항삼세법(降三世法)
밀교에서 항삼세 명왕을 본존(本尊)으로 하고 숙세(宿世)의 죄장(罪障)을 없애거나 또는 악인을 항복 받거나 또는 싸움에 승리하기 위하여 행하는 수법(修法)
해우소
절에서 화장실을 일컫는 말로, 우울한 마음을 푸는 곳이라는 뜻.
해저아귀
바다의 모래톱에 살고 있다. 그러나 낭만적인 금빛 모래톱이 아니다.
인간계의 여름보다 1천배나 뜨겁다.
나무도 강도 없다.
겨우 아침이슬 몇 방울로 연명해 간다.
불쌍한 행상인을 속여 헐값에 물건을 빼앗은 사람이 가는 아귀다.
바닷물이니 마실 수도 없고 광염(狂炎)의 햇빛은 내리 쬐고. 지옥과 진배없는 아귀계다.
해탈(解脫)
범어 vimukti, vimoksa, 번뇌의 속박으로부터 자유로워진 상태.
모든 번뇌의 속박에서 벗어난 자유 자재한 경지.
모든 미혹의 굴레에서 벗어난 상태.
속세의 모든 굴레에서 벗어난 상태.
모든 번뇌를 남김없이 소멸한 열반의 상태.
깨달은 마음을 고요히 가라앉히고 한곳에 집중하여 산란하지 않는 선정(禪定)의 상태, 고통에서 벗어나 속박으로부터 해방되는 것을 말한다.
또한 번뇌나 속박을 떠나 정신이 자유로와 지는 것, 방황의 속박을 벗어나서 완전한 정신적 자유를 얻는 것, 괴롭고 아픈 세계에서 해방된 평안한 상태, 평온한 경지, 득도 열반과 같은 경지를 말한다.
깨달음을 얻은 상태를 말하며, 전이하며 고승의 죽음을 지칭.
인도사상에서 해탈은 현세, 미망(迷妄)의 세계, 윤회(輪廻) 등의 괴로움에서 해방된 이상적 마음의 경지라고 생각되어 인생의 목적으로 삼았다.
해탈의 상세한 내용과 그에 도달하는 방법은 각 학파에 따라 다르다.
원시불교에서 해탈이란 <번뇌에서 해방된 마음의 상태>이며 삼학(三學戒 定 慧)중 혜, 즉 지혜가 필요하고 이는 중도(中道) 팔정도(八正道) 사제(四諦) 등의 이해에서 생긴다.
소승불교에서도 이 도식은 변하지 않고 특히 사제의 오랜 학습 연구를 중시하였다. 거기서 얻은 지혜로 번뇌를 극복하면 해탈에 이르며, 이는 열반(涅槃)과 동일하다고 한다.
대승불교는 사제를 중요시하지 않고 공(空)을 이해하는 지혜(般若)와 대비(大悲)에 근거하여 일체중생을 구하는 방법이 결부된 반야바라밀(般若波羅蜜)이 해탈 열반이라고 한다.
해탈문(解脫門)
모든 번뇌와 망상을 벗어나 깨달음을 얻는 문이라 한다.
행(行)
불교 12연기법의 하나.
이처럼 밝지 못한 상태(無明)로 행동하고 말하고 생각함으로써 습관 성격 소질 등 옳지 못한 자기가 형성되어 간다. 이른바 업이 지어지는 것이다.
행각
승려가 일정한 소재를 가리지 않고 스승의 밑을 떠나 참선수행을 위해 훌륭한 선지식이나 좋은 벗을 구하기 위해 마치 떠도는 구름이나 흐르는 물처럼 여러 곳을 편력하는 것을 일컫는 말이다.
이런 스님을 우리는 행각승 또는 운수납자라고 한다.
행자(行者)
행자의 수행기간이 스님이 되는 입문과정이다.
보통 1년이 걸리는 행자 기간은 자신이 평생 가르침을 받고자 하는 은사스님 밑에서 초심자로서의 여러 가지 계행을 배우며, 그동안 자신이 과연 스님으로서의 출가생활을 잘 해 나갈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결심을 점검하고 승려로서의 자질을 기르며, 사원의 온갖 허드렛일을 기꺼이 도맡아 해야 하며, 동시에 사찰에서 필요한 기본의식과 송경을 익힌다. 이 모든 일들을 특별한 지도에 의해서가 아니라 행자 자신이 스스로 터득하고 암기
하는 철저한 자발적 교육이다.
조석예불, 조석송주, 불공의식, 시식을 익혀야 하고 계정의, 좌선의, 참회정진의 등의 모든 습의를 익혀야 하며, 또 사미율의와 초발심자경문 등의 공부를 마쳐야 최소한의 기본적인 행자수련을 거쳤다고 인정한다.
향로(香爐)
향을 올리는 불구로 향은 모든 악취를 소멸하게 하고 심신을 쇄락케 한다하여 몸과 마음을 청정하게 하는 계율을 상징한다.
허공장보살
① 허공처럼 무한한 자비를 상징하는 보살.
자비와 지혜가 너른 하늘처럼 광대무변하다고 해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
범어로 아카샤가르바. 번역하여 허공장(虛空藏), 허공잉(虛空孕)이라고 한다.
서방 80억 항하사(恒河沙)를 지난 곳에 일체향집이란 불국토가 있다고 한다.
그곳의 승화부장불(勝華敷藏佛)을 모시고 있는 보살이 허공장보살. 이 보살은 승화부장불의 위신력을 빌어 사바를 정토로 만든다.
일체 대중의 손에 여의마니(如意摩尼)를 쥐어 준다.
이 보살을 염송하면 모든 원을 이룰 수 있다고 한다.
허공장보살경(虛空藏菩薩經)에는 이 보살의 실체가 자세히 나온다.
밀교의 태장계만다라(胎藏界曼茶羅)에서는 허공장원(虛空藏院)의 중심불로 나온다.
허공장보살에는 오대(五大)허공장이 있다. 아름다운 모습이다.
왼손에 연꽃을, 오른 손에 지혜의 칼을 들고 있다.
머리에는 보관(寶冠)을 쓴다.
허(虛)와 공(空)은 동아시아 철학의 기본 화두다.
지고(至高)의 니르바나다. 노장철학(老莊哲學)에서도 구극의 경지에서 허(虛)와 공(空)을 만난다.
비어있음의 위대함을 신격화한 허공장보살이다.
② 허공잉(虛空孕)이라고도 하며 지혜와 자비가 무한하여 광대무변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서방의 승화부장불의 세계에서 와서 대자비심으로 사람들의 재난을 몰아내고 지옥에 가는 중생을 구제한다고 한다.
밀교의 만다라에서는 태장계 허공장원의 주존으로 거의 예외 없이 등장하는데, 일반적으로 아름다운 모습을 하고 왼손에는 공덕을 기리는 연꽃을, 오른손에는 지혜를 상징하는 칼을 들었고 머리에는 5지(五智)의 보관을 쓰고 있다.
헌화하기
우선 헌화할 꽃바구니가 있는 곳으로 합장한 채 걸어간다.
그리고 합장한 자세그대로 우슬착지(右膝着地)로 꽃바구니 앞에 앉는다.
우슬착지란 왼쪽 무릎은 세우고 오른 무릎을 땅에 대고 오른 발꿈치 위에 눌러 앉는 것을 말한다.
그런 다음에 꽃바구니를 안아 받쳐 이마높이까지 올린다.
그대로 부처님 앞으로 가 적당한 장소에 꽃바구니를 놓는다.
합장하고 뒤로 물러서서 반배를 한다.
협시
협시는 가까이에서 모신다는 뜻으로 부처님을 옆에서 모시는 분을 협시보살이라 부른다.
보통 삼존불을 봉안할 때 석가모니불이 주불인 경우 보현보살과 문수보살을 모시고 이 두 보살을 협시보살이라 한다.
아미타부처님의 경우는 관세음보살과 대세지 보살 혹은 지장보살을 협시보살로 봉
안한다.
혜능(慧能)
대감선사 혜능(638~712)을 가리킴.
동토초조 달마로부터 6대째의 조사가 되므로 육조라 이름.
광동성 조경부 신흥현 사람. 성은 노씨. 3살에 아버지를 여의고 집안이 매우 가난하여 사는 항상 땔나무를 팔아 어머니를 봉양하다가 어느 날 장터에서 [금강경] 읽는 소리를 듣고 출가할 뜻을 품었다.
당 함형(670~673)때 소양에 갔다가 무진장비구니가 [열반경] 읽는 것을 듣고 그 뜻을 요해하였으며 지달의 권으로 오조홍인에게 찾아가서 방앗간에서 일하기 8개월
이 지나[보제본무수, 명경역비대, 본래무일물, 하처야진애]의 일게을 지어서 오조의 의발을 전해 받다.
676년 남방으로 가서 교화를 펴다가 조계산에 들어가 대법을 선양하다.
신룡 원(705)年 중종이 내시를 보내 서울로 불렸으나 병을 칭탁하고 가지 않음.
선천 원(712)年 문인에게 명하여 사내에 보은탑을 건립하고 2년에 국은사로 돌아가 동년 8월3일에 입적하였다.
사법제자가 40여인이며 그중 하택신회 ․ 남양혜충 ․ 영가현각 ․ 청원행사 ․ 남악회양 등이 가장 뛰어났다.
당 헌종이 원화 10(815)年에 대감선사의 시호를 내리다.
혜덕왕사(慧德王師)
혜덕왕사(慧德王師, 1038~1095), 고려시대의 고승으로 금산사의 2대 중창주이다. 법속성이 이씨(李氏)이며, 1038년(정종4년) 7월3일 개성의 남쪽 불령리에서 중서령 이자연(李子淵)의 아들로 태어났다.
속명은 민(民)이고 자는 범위(範圍), 법명은 소현(韶顯)이다.
11세 때 출가하여 진표율사의 법상종을 계승한 해린(海麟) 국사의 제자가 되어 [금광명경]과 [유식론] 등을 배우면서 법상종을 익혀나갔다.
12세 때 부흥사(復興寺)에서 구족계를 받았고, 1061년(문종15년) 왕륜사(王輪寺)에서 열린 오교대선장(五敎大選場)에서 대덕(大德)의 칭호를 받았으며,
1069년에 중대사(重大師), 1071년에 삼중대사(三重大師)가 되었다.
1079년 금산사의 주지로 부임하면서 진표율사의 중건이래 가장 큰 규모로 금산사를 중창하였다.
가람의 남쪽에 광교원(廣敎院)을 설립하여 법화현찬(法華玄贊), 유식술기(唯識述記) 등을 비롯한 장소(章疏) 32부 353권을 간행하기도 하였다.
이후 1083년(순종1년)에 개국사(開國寺)와 자운사(慈雲寺)에서 열린 승가고시 시험에서 화주를 맡았으며, 그 해에 승통(僧統)에 임명되어 잠시 현화사(玄化寺)에서 머물기도 하였다. 이후 다시 금산사에 돌아와 주석하다.
1096년(숙종1년) 12월18일 금산사의 봉천원에서 입적하니, 세수59세, 법랍48세였다.
호국불교(護國佛敎) 효예종(孝禮宗)
메말라가는 인간의 본성을 찾아 생활 속에 같이 호흡하고 실천하고 지족할 줄 아는 우리가 되도록 사명을 다할 것을 천명하며, 도덕성이 상실된 시대적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호국관, 효예관, 인연관을 슬로건으로 상구보리 하화중생 심을 세 시대적 발달에 부응하여 정보화 시대에 맞는 열린 불교 정립 구원의 등불을 온 누리에 밝힘을 종지로 하고,석가모니를 교조로 봉체하고 보우국사를 중조로 1989년 10월 15일 일석지안(一石志眼)스님이 창종한 한국의 한 종단이다.
한국최초의 재가법사 양성교육기관인 법왕불교대학(1986년 1년과정)설립하여 현재(2012년)까지 재가법사 4.527명, 출가승려 135명을 배출하였다.
종단의 산하기관으로 법왕불교대학, 참된삶실천운동본부, 효예회, 법완법사단, 금강법사단, 화엄법사단을 두고 있다.
호궤
경례(敬禮)하기 위해 두 무릎을 꿇어 땅에 대고 두 다리를 세우고 몸을 버티는 자세를 말한다.
호궤한 자세에서 합장을 하면 그것을 우리는 호궤합장이라 부른다.
불자가 계를 받는 수계식에서 주로 사용하는 무릎을 꿇는 자세인데 일상적으로 두 무릎을 꿇는 자세와는 다른 점이 있다.
장궤 자세는 두 무릎을 꿇고 앉되 두 무릎을 땅에 디딘 자세에서 허벅지와 상체가 수직이 되게 곧게 일으켜 세우고 두 발끝은 세워서 발끝으로 땅을 지탱하며 손은 합장을 한 자세를 취한다.
다르마의 스승에 대한 최경례의 자세라고 할 수 있다.
동시에 상구보리(上求菩提) 하화중생(下化衆生)을 서원하는 자세이기도 하다.
호법선신(護法善神)
불법을 수호하는 선신들.
금강역사(金剛力士) 4천왕(天王) 호세(護世) 8방천(方天) 10라찰녀(羅刹女) 12신장(神將) 16선신(善神) 28부중(部衆) 30번신(番神) 36신왕(神王) 등 불법을 좋아하며 존중하고 옹호하는 모든 천인 귀신 용왕들을 말함.
호사다마(好事多魔)
좋은 일에는 이런 저런 장애가 생기기 쉽다는 뜻이다.
그래서 옛적에는 귀한 자손일수록 천한 이름을 붙여 마장(魔障)이 끼지 않기를 바라기도 했다.
벽암록(碧巖錄) 86칙에 [호사불여무](好事不如無)라 했다.
호사란 예불. 경 읽기 등 수행을 위한 좋은 행위를 말한다.
즉, 아무리 좋은 일이라도 그런 일에 집착하기가 일쑤이므로 오히려 없는 쪽이 더 낫다는 뜻이다.
우리의 일상생활 자체가 불보살의 가피 안에서 하는 것인데 별달리 또 무슨 좋은 일을 할까보냐는 뜻이다.
이것이 부처의 광명이고 저것이 불보살의 가피라 하고 한정을 짓는 일 자체가 이미 장애라는 뜻이다.
이렇듯 호사 자체가 마장이라는 뜻으로 쓰이던 말이 바로 <호사다마>다. 그것이 차차 후세로 내려오면서 오늘날과 같은 뜻으로 쓰이게 된 것이다.
화두와 공안
공안과 화두는 같은 의미로 쓰인다. 공안은 수행자의 깨우침을 유발하여 공안을 해결하여 단도직입적으로 진리를 깨우치기 위한 하나의 문제.공안은 언어의 논리로 이해되지 않는다.
몇 마디 말에 진리의 핵심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공안을 사용하여 수행하는 참선의 방법을 간화선 이라 한다.
부처님께서 영산회상에서 설법하실 때에 꽃 한 송이를 들어 대중에 보일 때 가섭존자가 미소로서 대답함으로써 후일 거염화의 화두로 불리는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선가에서 종장(宗匠)이나 조실스님이 수행자들에게 풀어보라고 제시하는 일단의 과제, 숙제, 혹은 뚫어야할 관문, 해결해야할 관건이 화두이다.
이 관문을 통과하면“깨달았다”“부처가 되었다”고 칭한다.
화두를 참구하는 방법은 언어적 논리적 분석, 혹은 학문적 고찰을 중지하고 오로지 화두만 생각하는 것이다.
알음알이와 사량 분별심을 버리고 화두에 집중 올인(all in)하는 것이다.
단순히“무란 무엇일까?”“간시궐이란 무엇일까”하고 생각만 할 뿐, 절대로 머리를 굴려서 분석해서는 안 된다.
이것이 화두참구(탐구)의 키포인트이다.
지성적, 지적(知的), 또는 지능적으로 이해한 것은 깨달음이 아니다. 그것은 머리로 이해한 관념적인 깨달음일 뿐 선이 추구하는 바는 아니다. 직관적 사유만이 언어 저 편의 진리에 도달할 수 있다.
화상(和尙)
평생 가르침을 받는 은사스님.
화엄경(華嚴經)
① 정식 명칭은 대방광불화엄경 (대승경전의 왕이라 할만한 경).
② 40화엄(보현행원품), 60화엄, 80화엄 3가지가 있음.
③ 수행과 서원의 가르침으로 아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타행의 실천을 통해서 세상의 실상을 실현하는 것을 설함.
④ 의상대사의 화엄일승법계도:210자의 법성게를 가지고 도표로 만듬.
화엄종(華嚴宗)
중국 당(唐)나라 때에 성립된 불교의 한 종파.
[화엄경]을 근본 경전으로 하며, 천태종(天台宗)과 함께 중국 불교의 쌍벽을 이룬다.
동진(東晉) 말 북인도 출생의 승려 불타발타라(佛陀跋陀羅)가[화엄경]을 한역한 이래[화엄경] 연구가 활발해졌으며, 특히 511년 인도의 논사(論師) 세친(世親)의 [십지경론 十地經論]을 모두 완역한 것을 계기로 지론종(地論宗)이 성립되었는데, 이는 화엄종 성립의 학문적 기초가 되었다.
[화엄경]을 사경(寫經) 독송(讀誦)하는 화엄 신앙과, 이 신앙에 근거하는 신앙 단체인 화엄재회(華嚴齋會)도 발생하여 화엄종 성립의 기반이 성숙되었다.
이러한 배경 아래 두순(杜順)은 종래의 화엄에 대한 교학적 연구보다 실천적 신앙적 입장을 선양하여 화엄종의 제1조가 되었다.
새로이 중국에 전해진 현장(玄)의 유식설(唯識說)을 채용하면서 종래의 지론종 학설을 발전시킨 사람이 화엄종의 제2조인 지엄(智儼)이며, 이 지엄의 학문을 계승하여 화엄종 철학을 대성시킨 사람이 현수(賢首)이다.
그 후 징관(澄觀) 종밀(宗密)이 나와 화엄종을 계승하였으나, 선종의 발흥과 함께 일시 쇠퇴하였다. 그러나 송(宋)나라의 자선(子璿) 정원(淨源) 등이 화엄의 맥을 이었으며, 그 후 많은 선사(禪師)들의 사상에도 화엄사상은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였다.
한국에서는 화엄사상을 신라의 원효(元曉) 의상(義湘) 등이 크게 선양하였는데, 원효의[화엄경소]는 현수의[탐현기 探玄記]에 인용될 만큼 영향을 끼쳤다.
특히 의상은 두순에게서 화엄 교학을 배운 적이 있고, 부석사(浮石寺)를 창건(676)하여 화엄의 종지(宗旨)를 널리 편이래 해동화엄종을 개창(開創)한 사람으로 숭앙되고 있다.
그의[화엄일승법계도 華嚴一乘法界圖]는 방대한[화엄경]의 정수를 요약한 것으로 화엄학 연구에 큰 영향을 끼쳤다.
또한 신라의 심상(審祥)은 당나라 도선(道璿)과 함께 일본으로 건너가 화엄학을 전
달하였다.
통일신라시대에는 화엄십찰(十刹)이라 하여 화엄학 연구의 중요한 사찰을 헤아리기도 하였다.
통일신라 말 화엄학은 부석사를 중심으로 하는 희랑(希朗)과, 화엄사를 중심으로 하는 관혜(觀惠)의 북악(北岳) 남악의 두 파로 갈라져 논쟁이 치열하였다.
고려에 이르러 균여(均如)는 이를 조화시켰으며, 대각국사(大覺國師) 의천(義天)은 고려 불교의 통합이라는 관점에서 화엄 선(禪) 천태(天台)를 융합하였다.
그 후 어느 종파에 속하더라도 화엄학 연구는 필수적인 것이 되었다.
화엄종 교리의 중심은 전 세계가 일즉일체(一卽一切) 일체즉일(一切則一)의 무
한의 관계를 갖는 원융무애(圓融無)를 說하는 법계연기관(法界緣起觀)이다.
그 원융무애한 모습은 십현(十玄) 연기를 說하며, 그 이유로써 육상(六相, 總別同異成壤) 원융의 논리를 전개하였다.
화엄종은 일체의 천지만물을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의 현현(顯現)으로 보며, 불타의 깨달음의 경지에서 전우주를 절대적으로 긍정하는 통일적 입장에 서 있다.
화장(火葬)
화장(火葬, cremation)은 시체를 불에 살라서 그 남은 뼈를 모아 장사 지내는 것이다.
불교의 장례법으로 시신을 불에 태우고 남은 유골을 흰색 재로 만든 다음, 상자에 넣어서 보관하거나 묘지에 묻기도 하며 납골당에 안치하기도 한다.
또 호수․강․산 같은 특별한 장소에 뿌리기도 한다.
화주
① 불법(佛法)으로 중생을 가르치어 착한 마음을 갖도록 하는 분.
② 절에 물건이나 돈을 보시하는 사람.
③ 인가나 거리를 다니면서 여러 사람에게 시주를 얻어 온다.
그리고 법연(法緣)을 맺어 주고 사찰에서 사용할 비용을 마련하는 소임이다.
지금은 불가(佛家)에서 금지시키고 있다. 과거의 소임이다.
④ 가방화주(街坊化主), 약하여 化主 또는 가방(街坊)이라고도 함.
거리에 나가 여러 사람에게 시물(施物)을 얻으면서 사람들로 하여금 법연(法緣)을 맺게 하는 동시에 그 절에서 쓰는 비용을 구해 들이는 이를 말한다.
화탕지옥(火湯地獄)
활활 타오르는 불길 위에 무쇠 솥을 걸고 그 속에 쇳물을 펄펄 끓인다.
뜨거운 가마솥에 지옥의 옥졸들이 죄인을 잡아 장대에 꿰어 솥 속에 집어넣는다. 죄인들이 뜨거워서 겪는 고통은 말로 다 형용할 수가 없다.
아무리 살려 달라고 비명을 지르고 발버둥 쳐도 아무도 동정하거나 도와주는 사람이 없다. 살은 삶기고 뼈는 물러져, 몸 전체가 녹아 없어지면 밖으로 끌어내어 다시 살게 한 다음 또 뜨거운 가마솥 속에 집어넣는다.
지옥에서는 죽음이란 없다. 차라리 죽을 수만 있다면, 죽어 버림으로써 모질고 힘든 그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으련만 지옥의 옥고는 죽음으로도 끝낼 수 없다.
죽을 지경의 고통으로 까무러치면 다시 살아나서 몇 번이고 몇 번이고 같은 고통을 받아야 한다.
실로 무서운 지옥의 형벌이다.
카다란 가마솥을 꺼지지 않는 유황불이 지글지글 달구고 있다.
머리에 뿔이 난 지옥 옥졸들이 비명을 지르는 죄인의 발을 잡고, 죄인을 거꾸로 머리부터 펄펄 끓는 탕 속에 쑤셔 박는다.
펄펄 끓은 뜨거운 물 속에 머리채 처박히니 숨도 못 쉬고 허우적거리며 살려 달라는 말도 나오지 않는다.
입으로 허파 속으로 뜨거운 물이 막 들어간다.
살이 익고 뼈가 타도 죽지 않으니 죄인이 느끼는 고통은 말로 다 할 수가 없다.
환멸문(還滅)門)
적멸(寂滅)로 돌아가는 문이란 뜻. 수행한 공덕으로 말미암아 번뇌를 끊고 생사 고통에서 벗어나 열반의 본원으로 향하는 부문 인과를 말한다.
활구사구(活句死句)
① 활구(活句), 이론이나 이치를 통하지 않고 오직 사람의 안목을 열어주는 화두.
② 사구(死句), 활구의 반대 의미나 이론으로는 해석되지만 사람의 안목을 열어 주기에 족하지 못한 화두.
회주(會主)스님
법회를 주관하는 법사를 이르는 말이다.
그러나 불교의 문중이나 회중의 큰스님을 회주라고 부르기도 한다.
회하지옥
회하지옥은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재의 강을 말한다.
그리고 강바닥에는 날카로운 쇠꼬챙이가 헤아릴 수 없이 꽂혀 있다.
무서워서 강가로 올라오면 칼 잎으로 가득찬 풀들이 살을 베고 자른다.
설상가상으로 늑대들도 쫓아온다. 그러면 검수(劍樹)에 올라가야 하는데 칼 잎들이 피부를 가르고 살을 저민다.
처절한 지옥의 풍경화다.
회향(回向)
자기가 닦은 공덕(功德)을 남에게 돌리어 자타공히 불과(佛果)를 성취하기를 기한다는 뜻.
자신이 쌓은 공덕을 다른 이에게 돌려 이익을 주려하거나 그 공덕을 깨달음으로 향하게 함.
자신이 지은 공덕을 다른 중생에게 베풀어 그 중생과 함께 정토에 태어나기를 원함.
불교에서는 자기가 얻은 정당한 대가나 결실을 다른 사람이나 대상에게 돌리라고 권하고 있다.
회향은 자기가 닦은 공덕을 돌리는 것이다. 그 돌리는 대상은 보리, 즉 깨달음과 중생이다.
이것은 육바라밀에 있어서 보살의 대표적인 실천을 보살행이라고 하고 그 보살이 추구하는 남과 나의 이익을 동시에 추구하는“상구보리 하화중생”을 이루는 것이다.
이것은 회향을 통해 완성된다고 한다.
남의 잘못한 대가를 내가 받겠다는 것이며 내가 잘한 일의 대가를 남에게 돌리겠다는 자비심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즉, 보살의 궁극적인 태도가 회향인 것이다.
흑사지옥
뜨거운 검은 모래가 죄인을 덮친다. 그러면 죄인의 몸이 까맣게 타버린다.
너무나 뜨거워 내장까지 타버린다.
흑승 지옥
우선 흑승지옥은 흑승(黑繩)이란 명칭부터 주목할 필요가 있다.
원래 흑승은 목수들이 갖고 다니는 먹줄을 이른다.
먹줄은 목수가 직선을 긋는데 사용하는 도구다.
옥졸들은 죄인들의 몸에 먹줄로 가로세로를 수없이 긋는다.
말하자면 열십자로 바둑판처럼 선이 그어지는 셈이다. 이렇게 해놓고 칼이나 톱으로 토막토막 자른다. 그러면 살들이 주사위처럼 흩어진다. 그 고통과 처절이야 어찌 상상할 수 있겠는가.
또 흑승지옥에는 펄펄 끓는 거대한 가마솥 위에 쇠줄이 걸려 있다.
죄인들은 바로 이 쇠줄을 잡고 줄타기를 해야 한다. 그러나 모두 중간에 떨어져 끓는 물속으로 들어간다.
산채로 익혀지는 것이다.
흑승지옥에는 이승에서 살생을 하고 도둑질을 한 사람들이 오는 곳이다.
이곳에서도 망자는 죽었다가 살아나기를 거듭한다. 그런데 형기는 무려 12조 8천년이나 된다.
희망 아귀
탐욕과 질투심으로 착한 사람을 괴롭히고 물건을 뺏은 사람이 이렇게 환생한다.
제사의 공양물로 겨우겨우 살아간다.
먹고 싶은 희망은 간절하지만 불가능하다.
얼굴은 주름투성이에 거무튀튀하다. 손발도 쩍쩍 갈라졌다.
지은 대로 베푼 대로 가는 것이 불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