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보사찰

법보사찰 해인사-4

유프랭크지안 2017. 7. 11. 03:36

해인사-4

8. 산내 암자

1) 고불암

해인사 고불암은 가야산 자락의 해인사 부지 내에 있으며 해인사 말사 중 가장 높은 해발 900m에 법당이 위치하고 있다.

해인사 고불암 건축불사는 약 1년간에 걸쳐 한국의 유명사찰의 가람을 두루 섭렵한 후 이를 참고로 하여 부지 약 1만평, 건평 725평으로 2003년 7월에 토목기초를 착공하고 2004년 3월부터 본격적인 건축공사를 하여 같은 해 10월에 준공하여 해인사에서 공찰로서 운영하도록 해인사에 기부하여 해인사 재산으로 등록하였다.

본 사찰은 전통사찰식 목조건축물과 현대식 건축물이 함께 조화를 이루고 있다.

전통사찰식 목조건물은 법당을 중심으로 양옆에 육화당, 벽안당이 있고 앞으로는 고불루가 있다.

육화당은 주지실, 접견실로 사용하며, 벽안당은 스님 요사채로 사용하고 있다.

현대식 건물은 반야당과 용선당이 있는바, 반야당은 1층 종무소로 2층은 스님들의 참선방으로 사용하고 있다.

용선당 1층은 공양실, 2층은 신도들의 숙소로 사용하고 있다.

2) 고운암

원래 고운 최치원(孤雲 崔致遠)선생이 살던 초막이라는 이곳은 백련암의 맞은편으로 그 전망이 아주 좋다.


1974년에 새로이 법당을 짓고 선생의 호를 따서 고운암이라 명명하였다.

3) 국일암

국일암의 창건 연대는 알려져 있지 않고 다만 중건한 기록만이 있는데 부휴대사의 문하인 벽암 각성대사가 이곳에서 오래 주석하면서 인조 15년 곧 서기 1637년에 중건하였다고 전한다.


벽암스님은 일찍이 글씨와 군법에 능통한 스님으로, 조선조 인조임금 때에 남한산성을 축성한 공적으로 인조임금으로부터 원조국일대선사라는 시호를 받았는데, 국일암이라는 이름이 여기에서 비롯되었다.

그 뒤에 정인스님이 해방 전후에 두 차례에 걸쳐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곳에는 부휴스님, 고한스님, 벽암스님의 부도들이 모셔져 있다.

4) 금강암

1976년 창건한 비구니스님들의 수행처로서 보현암과 나란히 자리하고 있다.

원래 이곳의 지명이 오가리(五佳里)인데 이 다섯 가지의 아름다움이란 다음과 같다.


청룡과 백호와 전망(展望)과 문수보살의 정진과 보현보살의 교화, 이 다섯 가지가 아름다운 곳이라는 것이다.

금강암은 금강굴(金剛窟)이라고도 불린다.

5) 금선암


금선암은 1945년에 하담스님께서 창건한 비구니 수도처로서, 큰절과 가장 가까이에 있는 암자이다.

6) 길상암

길상암은 해인사 동구에서 한 1km쯤 떨어진 곳에 있으며, 백화담을 위시하여 자연 경관이 아름답기로 이름나다.


1972년에 영암 대종사께서 창건한 이 암자에는 부처님 사리를 모신 적멸보궁이 있다.

7) 백련암

백련암은 산내 암자 가운데에서도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여 한가할 뿐 아니라 경계 또한 탁 트여 시원하다.

특히 암자 주변에 우거진 노송과, 환적대, 절상대, 용각대, 신선대와 같은 기암이 병풍처럼 에워싸고 있어 예부터 백련암터를 가야산의 으뜸가는 절승지로 일컬어 왔다.


백련암을 처음 창건한 연대는 잘 알 수 없고 다만 선조 38년 곧 서기 1605년에 서산대사의 문하였던 소암스님이 중건하였다는 기록이 남아 있을 뿐이다.

오래 전부터 고승들이 즐겨 수행처로 삼아 오던 이곳은 역대로 산중 어른들이 주석해 왔다.

곧, 소암대사를 비롯하여 환적, 풍계, 성봉, 인파대사와 같은 스님들이 일찍이 주석하였고, 성철스님께서 입적하기 전까지 주석하였다.

현재 이곳에는 원통전과 영자당을 위시한 요사채 몇 동이 조촐하게 서 있고 축대를 새로 쌓고 기도터를 새로이 신축하여 도량이 일신되었다.

8) 보현암

보현암은 1973년에 혜춘스님의 원력으로 세운 비구니 수행처이다.


전망이 탁 트여 가야산과 홍류동계곡이 한눈에 들어오는 절승지이다.

9) 삼선암

삼선암은 1893년에 자홍스님께서 창건한 뒤로 1904년에 보찬스님과 지종스님 두분이 중건한 바 있으며, 최근에 새로이 비구니 선원을 세운 것을 비롯하여 도량의 규모가 꽤 커졌으려니와 면모도 새로워졌다.


가까이에 문오 스님의 부도가 모셔져 있다.

10) 약수암

약수암은 비구니 수도처로서, 구한말인 1904년에 비구니인 성주스님이 창건하였고 1927년에는 도삼스님이 중건하였다.


가까이에 해봉스님의 부도와 도삼스님의 부도가 모셔져 있다.

11) 용탑암


3.1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 중에 한분이었떤 용성스님을 위하여 창건된 이 암자는 스님의 사리탑을 수호관리하기 위하여 1945년에 창건되었으며 용탑전(龍塔殿)이라 불리기도 한다.

12) 원당암

신라 왕실의 원찰로 세운 원당암은 큰절이었는데 대덕광전과 마주보이는 비봉산 중턱에 자리하고 있는데, 그래서 본디 이름을 봉서사라고 했다.

이 암자는 해인사 창건을 위한 기초 작업장의 역할을 한 것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본 절인 해인사보다도 더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또 역사가 오랜 만큼 풍부한 사적과 더불어 몇 차례의 중수 기록을 전하고 있다.


조선시대의 세조임금 때에는 학조대사가 오랫동안 주석했고, 철종3년 곧 서기 1852년에는 우룡스님이 중수하였으며, 고종 11년 곧 서기 1874년에는 비구니인 성주스님이 또 중수 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근대에 이르러 해운스님과 지금 이곳에 주석하고 있는 혜암 큰 스님께서 도량의 면모를 일신하였다.

원당암에는 귀중한 유물과 유적이 전해오고 있는데, 그 가운데에서도 보물 제518호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는 점판석 다층탑과 석등, 그리고 정교하게 안상을 넣은 금당의 축대석 들은 중요한 사적으로 꼽힌다.

13) 지족암

지족암은 신라말과 고려초에 걸쳐 살았던 희랑대사의 기도처로서 본디 이름은 도솔암이었다.


오래도록 터만 남아 있던 자리에 조선시대 후엽에 이르러 철종7년 서기1856년에 추담대사가 창건하였는데, 뒤에 다시 고종30년 서기1893년에 환운스님이 건물을 중건하면서 도솔의 의역인 지족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근래에 일타스님께서 주석하시면서 도량의 면모가 새로워졌다.

14) 청량사

청량사는 그 창건 연대가 확실하지 않지만, 신라말의 학자인 고운 최치원이 이곳에서 놀았다는 기록이 삼국사기에 있는 것으로 보아 신라시대에 창건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한동안 폐사가 되었던 것을 1811년에 회은스님이 중수하였고, 최근에 이르러 경암스님이 다시 중건하였는데, 지금 또다시 큰 불사를 일으켜 새로이 단장하고 있다.

신라 때의 고찰인 청량사는 그만큼 보물을 많이 간직하고 있는데, 그 가운데에서도 통일신라시대의 양식으로 보이는 여래좌상과 국보 제266호로 지정된 삼층석탑과 보물 제253호로 지정된 석탑들은 천년 고찰의 향기를 전하기에 모자람이 없다.

15) 홍제암

홍제암은 해인사의 서편으로 일주문에서 한 200m 남짓 떨어진 곳에 있는 암자이며, 특히 사명대사가 입적한 곳으로 유명하다.

임진왜란이 끝난 뒤에 이곳에 은거하던 사명대사는 광해군 2년에 속세 나이 67세로 입적하였는데, 광해군은 스님의 열반을 애도하여 자통홍제존자(慈統弘濟尊者)라는 익호를 내리고 이곳에 스님의 비를 세웠다.


그 뒤로부터 스님의 익호를 따라 이 암자를 홍제암이라 하였다.

사명대사의 비문은 홍길동전으로 더 잘 알려진 석학 허균이 지은 것으로서, 문장도 아주 빼어날 뿐더러 대사의 행장이 비교적 소상하게 적혀 있어 사적으로서의 값어치가 높다.

지금의 홍제암 건물은 최근에 신축한 것이며, 암자 안에는 청허, 사명, 기허대사를 비롯한 뭇 큰스님들의 영정을 모신 영자전이 있다.

그리고 뒷동산에는 평범한 석종의 모습으로 만든 사명대사의 부도가 모셔져 있다.

16) 희랑대

희랑대사는 그 암자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희랑조사가 머물던 곳으로서, 자연이 이루어낸 기기묘묘한 지형과 빼어난 경치로 말미암아 일찍이 금강산의 보덕굴에 비유되곤 했다.


희랑대는 이곳의 삼성전에 모셔진 독성님은 그 영험이 불가사의하다고 해서 기도처로 퍽 유명한데, 이를테면 이곳에서 기도하여 부자가 되었다거나 하는 따위의 여러 영험 설화를 간직하고 있다.

그래서 이 암자는 특히 일반 신도들에게 친근하다

9. 기타

1) 학사대

신라의 문학가이자 충신이었던 고운 최치원선생이 거문고를 튕기며 기울어가는 신라왕조에 대한 시름을 달래던 곳이다.


그때에 거꾸로 꽂아둔 전나무 지팡이가 지금까지 살아서 거목을 이루고 있으며,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가지가 모두 아래로 처져 거꾸로 자라고 있는 느낌이다.

2) 해인성지표석

가야면에서 약 2 Km 정도 가야산 쪽으로 들어오다 보면 좌측에 '해인성지'라고 새겨진 큰 바위를 볼 수 있다.

가야산과 해인사는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라 성스러운 부처님의 법과 우리 민족의 애국혼이 서려있는 민족과 불교의 성지이다.

성철 대종사 사리탑


가야산


가야산 상왕봉

높이 : 1,433 m

목록 : 대한민국의 국립공원

위치 : 경상북도 성주군. 경상남도 합천군. 경상남도 거창군

산맥 : 소백산맥

좌표 : 북위 35°49′20″ 동경 128°07′05″

가야산은(1,430m)일명 우두산이라고 불리는 주봉인 상왕봉을 중심으로 서쪽은 비계산,동쪽은 백운산성 줄기로 백련암을 감싸고 있다.


해인사를 품에 안고 있어 더욱 유명하고 바람소리, 물소리, 목탁소리 아름다운 소리로 찾는 사람의 마음을 적시는가 하면, 함께 어우러진 노송과 그 사이 비단결 같은 시심이 흐르고 붉게 물든 홍류동 계곡으로 떨어지는 황금빛 물줄기 사이로 푸근한 고향의 향수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산세가 웅장하고, 수려하여 해동제일의 명산으로 유감이 없으며 또한 절 뒤의 소나무와 기암괴석은 한폭의 산수화를 보는 것 같은 꿈을 꾸게 한다.

법보종찰 해인사의 주산으로 정상에서 바라본 일출과 일몰은 경이로움을 자아내어 조선8경의 하나로 이름나있다.

합천 8경 중 제1경이기도 하다.

가야는 우리말로 가람, 개에서 비롯된 이름이라고도 하고, 또 석가모니부처님께서 수행을 하신, 인도의 붓다가야에 있는 가야산의 이름을 따온 것이라고도 한다

우두니 상왕이니 영산이니 하는 이름들도 인도의 가야산에서 온 것들이다.

지환과 중향은 옛적부터 가야산을 일러 삼남의 금강산 이라 한 데에서 연유하여 금강산에서 따온 이름이다.

이러한 이름에서도 짐작할 수 있거니와, 산의 남녘에 신선의 세계인 만수동이 있다고 전해 오는 말이 있을 만큼 가야산은 수려한 산세를 자랑한다.

높이가 해발 1,430M나 되고 넓이는 4,328 정보에 이르는 큰 산이기도 하려니와, 그 경치가 썩 빼어나서 예로부터 해동의 십승지로 일컬어졌던 것이다.

적송, 잣나무 같은 늘푸른 나무며 철따라 빛깔을 달리하는 여러 활엽수가 온 산에 울창한가 하면, 기암괴석이 또한 장관을 이루고 있으며, 그 사이로는 말 그대로 맑고 푸른 벽계청수가 쉬임없이 흘러내린다.

특히 해인사 앞자락을 굽이쳐 도는 홍류동 계곡은 우리나라 팔승 가운데 으뜸이라는 그 명성이 무색하지 않게 여느 산에서는 볼 수 없는 멋들어진 계곡 풍경을 철따라 운치 있게 펼쳐내고 있다.

그렇듯이 빼어난 명산 가야산에 해인사가 터를 잡은 모습을 일러 행주형국이라하니, 이는 곧 큰 바다에 배가 가고 있는 모양이란 뜻이다.

가야산의 이런 지형은 일찍이 신라의 이름난 선비 고운 최치원이 찬탄하여 이른대로, 가야산이 명산 가운데 명당이라는 것을 잘 드러내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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