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광사(松廣寺)-1
사적 : 제506호(2009년 12월 21일 지정)
면적 : 44,297 ㎡
주소 : 전남 순천시 송광면 송광사안길 100, 등 (신평리)
좌표 : 북위 35°00′08″ 동경 127°16′34″
전라남도 순천시 송광면 신평리 조계산 북쪽 기슭에 자리 잡은 사찰로 대한불교 조계종 제21교구 본사이다.
합천 해인사(법보사찰), 양산 통도사(불보사찰)와 더불어 한국 삼보사찰로 불리고 있다.
신라 말엽에 혜린대사가 작은 암자를 짓고 길상사라 부르던 것을 시작으로 보조국사 지눌이 정혜사를 이곳으로 옮겨와 수도, 참선 도량으로 삼은 뒤부터 승보사찰이 되었다.
지눌, 진각을 비롯한 16국사를 배출하였다.
외국 승려가 수도하는 국제선원이 있다.
1) 주요 문화재
목조문화재가 많은 사찰로 경내에는 약 80여 동의 건물과 부도 비석 등이 있다.
16국사의 영정을 봉안하는 국사전 등의 국보 4점.
하사당, 약사전, 영산전 등 보물 13점.
천연기념물인 쌍향수 등 국가문화재 17점.
정혜국사 사리함 등 지방문화재 10점을 포함, 모두 27점의 문화재가 보존되어 있다.
대웅전을 중심으로 좌우에 승보전과 지장전이 자리하고 있어 장엄한 기상을 나타낸다.
2) 국보
(1) 순천 송광사 목조삼존불감(順天 松廣寺 木彫三尊佛龕:국보 제42호)
순천 송광사 목조삼존불감(順天 松廣寺 木造三尊佛龕)은 송광사에 있는, 나무로 만든 불감(佛龕)이다.
불감이란 불상을 모시기 위해 나무나 돌, 쇠 등을 소재로 건축물을 본따 작게 만든 것을 말한다.
대한민국의 국보 제42호 목조삼존불감로 지정되었다가, 2010년 6월 28일 현재의 명칭으로 변경되었다.
남북국 시대 신라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불상을 모시기 위해 나무나 돌, 쇠 등을 깎아 일반적인 건축물보다 작은 규모로 만든 것을 불감(佛龕)이라 한다.
불감은 그 안에 모신 불상의 양식뿐만 아니라, 당시의 건축 양식을 함께 살필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된다.
이 목조삼존불감은 보조국사 지눌이 중국에서 돌아오는 길에 가져온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정확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불감은 모두 3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가운데의 방을 중심으로 양쪽에 작은 방이 문짝처럼 달려 있다. 문을 닫으면 윗부분이 둥근 팔각기둥 모양이 되는데, 전체 높이는 13㎝이고, 문을 열었을 때 너비 17㎝가 되는 작은 크기이다.
가운데 큰 방에는 연꽃무늬가 새겨진 대좌(臺座) 위에 앉아 있는 본존불이 조각되어 있고, 양쪽의 작은 방에는 각각 보살상이 모셔져 있다.
본존불은 양 어깨를 감싼 옷을 입고 있으며, 옷주름은 2줄로 표현되어 있다.
오른손은 어깨 높이로 들었고, 무릎 위에 올리고 있는 왼손에는 물건을 들고 있다. 오른쪽 방에는 실천을 통해 자비를 나타낸다는 보현보살을 배치하였는데, 코끼리가 새겨진 대좌 위에 앉아 있다.
보살의 왼쪽에는 동자상이, 오른쪽에는 사자상이 서 있다.
왼쪽 방에는 지혜를 상징하는 문수보살이 연꽃가지를 들고 서 있다.
문수보살은 사자가 새겨져 있는 대좌 위에 서 있으며, 보살의 좌우에는 동자상이 1구씩 서 있다.
이 목조삼존불감은 매우 작으면서도 세부묘사가 정확하고 정교하여 우수한 조각 기술을 보여주고 있다.
세부의 장식과 얼굴 표현 등에서는 인도의 영향을 받은 듯 이국적인 면이 보이며, 불감의 양식이나 구조에서는 중국 당나라의 요소를 발견할 수 있다.
국내에 남아 있는 불감류 가운데 매우 희귀한 예라고 할 수 있다.
※도난 및 회수 : 1974년 10월 9일 도난 되었다가 11월 15일 회수되었다.
(2) 혜심고신제서(惠諶告身制書:국보 제43호)
혜심고신제서(惠諶告身制書)는 고려 고종이 조계산 제2세 진각국사 혜심에게 대선사(大禪師)의 호를 내린 사령장으로, 대한민국 국보 제43호이다.
종전 명칭은 고려고종제서(高麗高宗制書)로 송광사에서 소장하고 있다.
1216년(고종3)에 발행한 이제서는 능형화문(菱形花文)을 나타낸 홍황백 등의 색릉(色菱) 7장을 이어서 두루마리로 만든 것이다.
지금 그 보존 상태는 좋지 못하여 자세히 알아볼 수 없으나, 고려시대의 고문서로 귀중하다.
(3) 순천 송광사 국사전(順天 松廣寺 國師殿, 국보 제56호)
순천 송광사 국사전(順天 松廣寺 國師殿)은 송광사 에 있는 조선시대의 불전이다.
1962년 12월 20일 대한민국의 국보 제56호로 지정되었다.
정면 4칸, 측면 3칸, 단층 맞배지붕으로 주심포집이다.
조선 초기(1400년대) 주심포 건물로 내부 전체에 걸쳐 우물천장이 가설되었으며 주두(柱頭)에 벽면으로 뻗는 행공첨차 형태의 집이다.
건물의 단청은 건립 당시의 것으로 추정되며 천장의 연화문, 대들보의 용문 등은 보기 힘든 당시의 단청문양이며, 현재 16국사진영을 봉안하고 있다.
송광사 국사전은 나라를 빛낸 큰 스님 16분의 영정을 모시고 그 덕을 기리기 위해 세운 건물로, 옛날에는 참선을 하던 곳이었다.
고려 공민왕 18년(1369)에 처음 지었고, 그 뒤 두 차례에 걸쳐 보수하였다.
앞면 4칸, 옆면 3칸 크기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으로,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짜은 구조가 기둥 위에만 있는 주심포 양식이다.
건물 안의 천장은 우물 정(井)자 모양의 천장으로 꾸미고 연꽃무늬로 장식하였는데, 천장의 연꽃무늬와 대들보의 용무늬는 건물을 지을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건축 구조상 조선 초기 양식을 지니고 있는 이 건물은 순천 송광사 하사당(보물 제263호)과 같은 시대에 지은 것으로 짐작되며, 소박하고 아담한 형태와 그 기법에서도 주심포 중기 형식의 표준이라고 할 만한 중요한 건축물이다.
(4) 순천 송광사 화엄경변상도(順天 松廣寺 華嚴經變相圖, 국보 제314호)
순천 송광사 화엄경변상도(順天 松廣寺 華嚴經變相圖)는 송광사에 있는, 조선시대의 탱화이다.
2003년 2월 3일 보물 제1366호로 지정되었다가 2009년 9월 2일 국보 제314호로 승격되었다.
[화엄경(華嚴經]역본 중 실차난타(實叉難陀)가 번역한 80 화엄경에 의거해서 일곱 장소에서 아홉 번의 설법이 행해지는 칠처구회(七處九會)의 설법 장면을 하나의 화면에 그린 불화이다.
송광사 화엄경변상도는 화기를 통해 1770년(영조46) 무등산 안심사에서 조성하여 송광사 대화엄전에 봉안하였고, 18세기 후반 조계산을 중심으로 활약했던 연화(蓮華)를 비롯한 13명의 승려화가들이 참여하여 그린 것이다.
이 화엄경변상도의 구성은 제일 아래에 큰 연꽃이 있고 그 위에 글자로써 찰종(刹種. 世界種)을 배치하여 마치 설법회를 떠받들고 있는 모습으로 그려졌다.
본 화면은 이분하여 아래 부분에는 지상설법회(제1회 보리도량회, 제2·7·8회 보광명전회, 제9회 서다림회)를 배치하고, 윗부분에는 천상설법회(제3회 도리천궁회, 제4회 야마천궁회, 제5회 도솔천궁회, 제6회 타화자재천궁회)를 배치하였다.
각 설법회는 존상에 따라 여러 형태를 이루고 있다.
조선시대의 화엄경변상도로는 송광사(1770년) 선암사(1780년) 쌍계사(1790년) 통도사(1810년)의 화엄경변상도가 있으며, 기록상으로는 1765년(영조41)에 김룡사 화장암에 칠처 구회도의 화엄회를 제작하여 봉안하였다고 하지만 현존하지 않는다.
송광사를 비롯한 선암사와 쌍계사 화엄경변상도는 채색된 불화로서 거의 같은 화면구성과 채색감을 보여주고 있어 송광사의 화엄경변상도가 모본이 되었을 가능성이 높지만, 두 폭은 현재 도난당하여 소재가 불분명하다.
이 작품은 1770년에 제작된 것으로 국내에 알려진 채색 화엄경변상도 중 연대가 가장 앞서며, [화엄경]의 칠처구회의 복잡한 설법장면을 한 화면에 빈틈이 없을 정도로 밀도 높게 묘사하였지만, 정확한 표현력과 계획적이며 완벽한 구성력, 그리고 빼어난 필력과 조화로운 색채감을 극대화시켜 맑고 산뜻한 완성도 높은 작품을 만들어 낸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불화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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