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광사-2
3) 보물
(1) 보물 제90호 대반열반경소 권9~10(大般涅槃經疏)
대반열반경소 권9~10(大般湟槃經疏 卷九~十 )은 송광사 사찰에 있는 조선시대의 불경이다.
1963년 1월 21일 대한민국의 보물 제90호로 지정되었다.
(2) 보물 제134호 순천 송광사 경질(順天 松廣寺 經帙)
순천 송광사 경질(順天 松廣寺 經帙)은 송광사에 있는, 고려시대의 경질(經帙)이다.
경질이란 두루마리로 된 불경을 담아 두는 공예품이다.
1963년 1월 21일 대한민국의 보물 제134호로 지정되었다.
두루마리로 나온 경전을 보관하기 위해 만든 불교 공예품이다.
가느다란 대나무 조각을 색실로 엮어서 직사각형 모양으로 만들고, 끝단에는 삼각형의 비단 베를 붙여 끈을 달아 경전을 말아 두게 하였다.
대쪽은 색실로 엮어 꽃무늬를 넣었고, 둘레는 비단을 두르고 그 안에 종이를 발랐다.
전체적으로 손상이 심한 편이지만 여러 가지 색실로 나타낸 문양은 아직도 정교하며 잘 남아 있다.
비록 낡아서 그 형체만 남아 있지만, 국내에서 유일하게 전하는 유물로 그 가치가 높다.
(3) 보물 제175호 순천 송광사 경패(順天 松廣寺 經牌)
순천 송광사 경패(順天 松廣寺 經牌)는 송광사에 있는, 고려시대의 경패(經牌)이다.
경패는 경전을 넣어 두는 나무 상자에 거기 어떤 경전이 들었는지 표기하는 데 쓰는 작은 나무 조각이다.
패마다 불경의 명칭과 번호가 새겨져 있으며, 여러 조각이 새겨져 있다.
모두 43개가 송광사에 전해져 온다.
1963년 1월 21일 대한민국의 보물 제175호로 지정되었다.
(4) 보물 제176호 순천 송광사 금동요령(順天 松廣寺 金銅搖鈴)
순천 송광사 금동 요령(順天 松廣寺 金銅 搖鈴)은 송광사에 있는, 고려시대의 금동 요령(搖鈴)이다.
요령이란 작은 종으로 절에서 강의할 때 쓴다.
1963년 1월 21일 대한민국의 보물 제176호로 지정되었다.
요령(搖鈴)은 절에서 강의할 때 사용한 도구로, 이 요령은 고려 전기에 높이 20.6㎝, 지름 6.6㎝의 청동으로 만들었다.
몸은 4각형이고 각 면이 팽창되어 둥근 형태를 하고 있다.
몸 위에는 마디가 하나있는 긴 손잡이가 있으며 몸과 접하는 곳은 후세에 보수한 흔적이 있고 손잡이 윗부분도 손상을 입었다.
손잡이 아랫부분은 둥글며, 큼지막한 꽃이 한 송이씩 아래를 향하고 있다.
몸 전체 각 면을 구분하는 모서리와 입구 주위에 굵은 돌출선을 돌리고 그 테두리 안에 몸을 꼬며 위로 치솟는 용 한 마리와 그 사이 공간에 구름무늬를 도드라지게 새겼다.
각각의 면에 있는 무늬는 하나의 틀에서 찍어낸 듯하다.
입구 부분은 중앙에 반원형을 만들어 단조로움에 변화를 주었다.
이 요령은 예로부터 송광사에 전해 내려온 절 행사도구로 우아한 형태와 아름다운 조각으로,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요령 중에도 걸작에 속하며 제작 연대도 가장 오래된 것으로 추정된다.
(5) 보물 제204호 묘법연화경관세음보살보문품삼현원찬과문
妙法蓮花經觀世音菩薩普門品三玄圓贊科文
송광사 사찰에 있는 고려시대의 불경이다.
1963년 1월 21일 대한민국의 보물 제204호로 지정되었다.
묘법연화경은 줄여서 ‘법화경’이라고 부르기도 하며, 부처가 되는 길이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는 것을 기본사상으로 하고 있다.
묘법연화경은 천태종의 근본경전으로 화엄종과 함께 우리나라 불교사상 확립에 크게 영향을 끼쳤다.
이 책은 법화경 28품 중에서 제25품인 관세음보살보문품을 송나라 사효(思孝)가 알기 쉽게 풀이하여 쓴 것으로 크기는 세로 26㎝, 가로 35㎝이다.
보문품이란 법화경의 한 부분으로 관세음보살이 중생의 구제에 관하여 이야기 한 내용을 담고 있다.
조선 세조 7년(1461)에 불경을 한글로 풀이하여 간행하기 위해 설치한 간경도감(刊經都監)에서 판을 새겨 찍어낸 것으로, 고려 대각국사 의천이 만든 교장(敎藏)을 원본으로 삼았다.
다른 책과는 달리 내용을 도표식으로 요약하여 정리하고 있는 것이 특징적인데, 각 행의 글자수가 일정하지 않고 문장간에 경계선이 없다.
책 끝에는 고려 숙종 4년(1099)에 만들어졌다는 기록이 있으나, 세조 7년(1461)에 간행된 [송광사금강반야경소개현초](보물 제207호)와 새긴 솜씨, 종이질 등이 같아 세조 때 다시 펴낸 것으로 보인다.
(6) 보물 제205호 대승아비달마잡론소(大乘阿毘達磨雜論疏)
(7) 보물 제206호 묘법연화경찬술(妙法蓮華經讚述)
(8) 보물 제207호 금강반야경소개현초(金剛般若經䟽開玄抄)
(9) 보물 제263호 순천 송광사 하사당(順天 松廣寺 下舍堂)
순천 송광사 하사당(順天 松廣寺 下舍堂)은 전라남도 순천시 송광사에 있는, 조선시대의 불교 건축물이다.
1963년 1월 21일 대한민국의 보물 제263호로 지정되었다.
송광사는 통일신라 경문왕 7년(867)에 도의선사가 처음 세웠지만 대부분의 건물이 허물어져 고려 중기 보조국사가 제자들에게 당부하여 다시 지었다.
지금의 절은 조선 광해군 14년(1622)에 다시 고쳐 세운 것이다.
그 중 스님들이 생활하던 하사당은 대웅전 뒤 한층 높은 곳에 있다.
앞면 3칸, 옆면 2칸 규모로, 왼쪽 2칸이 툇마루를 갖춘 온돌방이고 오른쪽 1칸은 부엌이다.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이며, 기둥 위에서 지붕 처마를 받치고 장식을 겸하는 간결한 구조가 기둥 위에만 있다.
부엌 지붕 위로 네모 구멍을 내고 조그만 환기구를 만들었는데 다른 건물에서는 볼 수 없는 시설이다.
이 건물은 조선 전기 스님들이 생활하는 승방(僧房) 건축으로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10) 보물 제302호 순천 송광사 약사전(順天 松廣寺 藥師殿)
송광사 약사전(順天 松廣寺 藥師殿)은 송광사에 있는 조선시대의 건축물이다.
1963년 1월 21일 대한민국의 보물 제302호로 지정되었다.
약사전은 모든 질병을 고쳐 주는 부처인 약사여래를 모신 불전으로서, 규모가 송광사에서 가장 작은 법당이다.
앞면 옆면이 모두 1칸으로 간결하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현재 있는 우리나라 법당 중 가장 작은 이 약사전은 조각 수법으로 보아 조선 중기인 17세기 무렵의 건물로 추정한다.
(11) 보물 제303호 순천 송광사 영산전(順天 松廣寺 靈山殿)
송광사 영산전(順天 松廣寺 靈山殿)은 송광사에 있는, 조선시대의 불교 건축물이다.
1963년 1월 21일 대한민국의 보물 제303호로 지정되었다.
절의 기록에 이 건물은 조선 인조 17년(1639)에 세웠고 영조 12년(1736)에 수리하였다고 한다.
지금 있는 건물은 1973년에 보수한 것이다.
영산전에는 석가모니불상을 모시고 석가의 생애를 8단계로 나누어 그린 팔상도가 있으며, 이외에도 석가가 설법하는 장면을 담은 영산대회 그림도 볼 수 있다.
규모는 앞면 3칸, 옆면 2칸이고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짜은 구조가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이다.
건물에 사용한 부재의 세부 기법이 힘차고 간결하여 조선 전기 건물의 기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좁은 자리에 아담한 규모로 세운 소박한 건물이다
(12) 보물 제572호 순천 송광사 고려고문서(順天 松廣寺 高麗告文書)
(13) 보물 제1043호 송광사십육조사진영(松廣寺 十六祖師眞影)
순천 송광사 십육조사진영(順天 松廣寺 十六祖師眞影)은 조선 시대에 고려 후기 활동한 고승 16명을 그린 회화이다.
1990년 9월 20일 대한민국 보물 제1043호로 지정되었다.
현재 1, 2, 14세를 제외한 모든 작품이 도난된 상태이다.
보조국사 지눌을 비롯해 송광사를 중심으로 고려 후기에 활약한 16명의 고승들의 초상화로 모두 16점이다.
보조국사의 초상화는 가로 77.4㎝, 세로 134.8㎝로 16점 모두 규모나 제작수법이 동일한 것으로 같은 화가에 의해 그려진 것으로 보인다.
오른쪽을 바라보며 앉아있는 보조국사를 중심으로 왼쪽에는 7명이 중앙을 바라보며 있고 오른쪽에 8명이 중앙을 바라보며 있다.
보조국사는 녹색 장삼에 붉은 가사를 입고 오른손에 지팡이를 쥔 모습이다.
옷자락은 선으로 윤곽을 그리고 색의 농담으로 부드럽고 안정된 느낌을 보여준다.
정조 4년(1780)에 안치된 이 초상화들의 보존 상태는 양호하며 조선 중기 불교 초상화의 기법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보조국사(普照國師)
2세(世) 진각국사(眞覺國師)
3세(世) 청진국사(淸眞國師)
4세(世) 충경진명국사(沖鏡眞明國師)
5세(世) 회당자진국사(晦堂慈眞國師)
6세(世) 자정국사(慈精國師)
7세(世) 원감국사(圓鑑國師)
8세(世) 자각국사(慈覺國師)
9세(世) 담당화상(湛堂和尙)
10세(世) 혜감국사(慧鑑國師)
11세(世) 자원국사(慈圓國師)
12세(世) 혜각국사(慧覺國師)
13세(世) 각암국사(覺巖國師)
14세(世) 부암정혜국사(復菴淨慧國師)
15세(世) 홍진국사(弘眞國師)
16세(世) 고봉화상(高峯和尙)
송광사(松廣寺)를 중심으로 고려후기(高麗後期)에 활약하던 16인(人)의 고승진영(高僧眞影)으로서 송광사(松廣寺) 국사전(國師殿)에 봉안(奉安)되어 있다.
전신좌안(全身左顔) 7분면(分面)의 의자상(椅子像)인 보조국사(普照國師) 진영(眞影)을 중앙(中央)에 안치하고, 이를 중심으로 하여 왼쪽엔 짝수세(世) 7인(人)이 중앙을 향(向)하는 우안(右顔)으로, 오른쪽엔 홀수세(世) 8인(人)이 역시 중앙을 향하여 좌안(左顔)으로 조성(造成)되어 배열되고 있다.
16점의 작품은 규격(規格)이나 제작수법(製作手法)이 거의 같아서 동일시기에 동일 화사(畵師)에 의하여 일괄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화기(畵記)는 보조국사(普照國師) 진영(眞影)의 하단(下段)에 상세히 기록되어 있고 나머지 진영에는 시주자(施主者)의 이름만이 기록되어 있는데 화기(畵記)에 의하면 건륭(乾隆)45년(年)(1780) 4월(月) 중성(重成)되어 영당(影堂)에 안치되었으며, 작자(作者)는 금어(金魚), 쾌윤(快玧), 복찬(福璨)인 것으로 되어 있다.
형식(形式)은 모두 전신(全身) 의자상(椅子像)으로 되어 있으나, 의자 위에 가부좌(跏趺坐)를 한 것도 3세 청진(淸眞), 4세 진명(眞明), 8세 자각(慈覺), 9세 담당(湛堂), 10세 혜감(慧鑑), 12세 혜각(慧覺), 13세 각암(覺巖), 14세 정혜(淨慧), 15세 홍진(弘眞) 진영(眞影) 등 9점(點)에 이른다.
지물(持物)로는 불자(拂子)를 들었거나 보조국사(普照國師)처럼 주장자(柱杖子)를 짚었으며, 지물(持物)이 없는 경우는 선정인(禪定印) 또는 설법(說法)의 자세를 취하고 있다.
색조(色調)는 대부분 암갈색의 어두운 배경에 녹색(綠色)을 주색조(主色調)로 사용하고 있다.
(14) 보물 제1367호 송광사응진당석가모니후불탱.십육나한탱(松廣寺應眞堂釋迦牟尼後佛幀.十六羅漢幀)
순천 송광사 응진당 석가모니후불탱 십육나한탱(順天 松廣寺 應眞堂 釋迦牟尼後佛幀 十六羅漢幀)은 송광사 응진당에 있는 조선시대의 불화로, 정면 가운데 있는 후불탱화인 응진영산탱과 그 양옆에 각 4점씩 대칭으로 배치되어 있는 16나한도와 제석·범천탱화이다.
2003년 2월 3일 대한민국의 보물 제1367호로 지정되었다.
석가후불도는 '提華羅'와 '彌勒菩薩'이 협시하고 가섭, 아난존자 만을 등장시킨 석가오존불 형식의 아주 간단한 구성을 보여주고 있다.
2중의 둥근 광배에 통견식 법의를 착용하고 있는 본존불은 수미단 위에 항마촉지인을 짓고 있다.
의겸 전성기의 작품으로 구성은 간단하나 정교하고 세련된 필치에 의한 얼굴과 손·발 등의 섬세한 표현, 조화로운 색채, 그리고 밝고 화려한 꽃무늬 구사로 말미암아 의겸의 탁월한 묘사력이 돋보인다.
16나한도는 응진당에 봉안되었던 것으로 현재 성보박물관에 수장되어 있는데 좌우 3폭씩 모두 6폭으로 1. 3. 5. 7 - 9. 11. 13. 15존자도를 좌측(向 右)에, 2. 4. 6 - 8. 10 - 12. 14. 16존자 그림을 우측(向左)에 배치하여 서로 마주하게끔 그렸다.
각 폭마다 화기가 남아 있으나 조성연대 및 그림의 명칭에 대해서는 홀수ㆍ짝수존자의 첫째 폭에만 '雍正三年(乙巳)五月日順天(曺溪山)松廣寺羅漢幀繪畢敬安’이라 명기되어 있을 뿐이다.
모두 황토색 바탕에 명암 처리가 두드러진 암벽과 수목을 배경으로 각 존자를 배치하였는데, 부드러운 중간 색조를 많이 사용하여 전반적으로 차분한 느낌이다.
제석(帝釋) 범천(梵天)도는 16나한도 좌우 끝부분에 배치되는 그림으로 제석천도는 홀수 존자, 범천도는 짝수 존자도의 마지막 폭이다.
응진당 16나한도 및 제석 범천도 역시 석가후불도보다 1년 늦게 조성되었지만, 성격상 석가후불도와 한 조를 이루는 작품이다.
특히 의겸이 주도적으로 조성한 여수 흥국사 응진당 16나한도에 비해 보아 도식적이며 제석 범천도를 분리하고 존자들의 배치만 약간 달리하고 있을 뿐, 인물의 형태 및 자세라든가 얼굴 표정 등이 거의 같고, 또한 각 존자 명칭과 함께 施主者 이름을 밝혀놓아 동일본 사용의 예 파악과 조성의도를 짐작하는데 자료로서 의의가 크다.
(15) 보물 제1368호 송광사영산전후불탱.팔상탱(松廣寺靈山殿後佛幀.八相幀)
순천 송광사 영산전 후불탱 팔상탱(順天 松廣寺 靈山殿 後佛幀 八相幀)은 송광사 영산전에 있는 조선시대의 불화이다.
2003년 2월 3일 대한민국의 보물 제1368호로 지정되었다.
후불탱은 비록 규모는 작지만 일반적으로 석가후불화에서 보이는 불·보살과 제자 등의 교화성중 및 사천왕·팔부중 등 호법신들에 추가하여, 국왕과 대신같은 많은 청문성중을 비롯한 부처님께 법을 청하는 사리불(舍利佛)까지 등장시켜 놓았다.
팔상도는 제1도인 도솔래의상(兜率來儀相)으로 부터 마지막 내용의 제8도 쌍림열반상(雙林涅槃相)에 이르기까지 모두 8폭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토황 바탕에 적·녹색을 많이 사용하고 영산회도에서와 마찬가지로 전반에 걸쳐 칙칙한 갈색 분위기의 다자색 바람질이 시행되어 무거운 느낌을 준다.
영산전의 주불인 석가모니불의 후불화이면서도 다른 영산회도 및 기타 전각의 석가후불도와는 다르게 그림 하단부에 설법을 듣는 청중들과 사리불까지 배치시킴으로써 법화경 내용에 매우 충실한 대표적인 영산회도라는데 의의가 있다.
팔상도 또한 구성이 복잡하지 않고 간단한 초기 팔상도의 경향을 띠고 있으며, 자연스럽고 사실적인 나무 표현기법과 여유로운 경물의 배치를 보여주고 있어 당시 또는 앞선 시기 일반회화와의 관계까지도 가늠해 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16) 보물 제1376호 순천 송광사 티베트문 법지(順天 松廣寺 티베트文 法旨)
순천 송광사 티베트문 법지(順天 松廣寺 티베트文 法旨)는 송광사 성보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티베트문 법지로, 송광사 16국사 중 제6세인 원감국사가 당시 충렬왕의 명을 받고 원나라를 방문하고 돌아오는 길에 원나라 세조인 쿠빌라이로부터 받아온 것이라 전해진다.
2003년 6월 26일 대한민국의 보물 제1376호로 지정되었다.
현재 크고 작은 6장의 지편(紙片)으로 나뉘어 있는데 색깔은 고르지 못하지만 전체적으로 황토색계의 밝은 황갈색이며 종이의 두께, 색깔 및 필체 등으로 보아 본래는 1매의 문서인 것으로 보인다.
본 문건은 온전한 상태는 아니지만 내용상으로 보아
문서의 소지자에 대한 신분과 신분보장,
신분을 보장해줄 자들에 대한 명시와 협조요청,
문서 발급자의 증명부분 등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이 유물은 고려시대 원나라와의 활발했던 불교교류사를 파악하는데 있어 매우 중요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17) 보물 제1467호 순천 송광사 소조사천왕상(順天松廣寺塑造四天王像)
순천 송광사 소조사천왕상(順天 松廣寺 塑造四天王像)은 송광면 송광사에 있는 조선시대의 명부상이다.
2006년 4월 28일 대한민국의 보물 제1467호로 지정되었다.
순천송광사소조사천왕상은 흙으로 조성한 것으로 송광사 천왕문의 좌우에 2구씩 모두 4구가 안치되어 있다.
사천왕상의 배열은 천왕문의 향 우측으로 비파를 든 북방 다문천왕과 검(劍)을 든 동방 지국천왕이, 향 좌측으로는 당(幢)을 든 서방 광목천왕과 용, 여의주를 든 남방 증장천왕이 각각 시계방향으로 북→동→남→서방의 순서로 안치되어 있다.
네 상 모두 의자에 걸터앉은 자세로 전형적인 분노형 얼굴에 머리에는 용(龍) 봉(鳳) 화(花) 운문(雲紋)이 장식된 관을 쓰고 갑옷을 입은 무인상(武人像)이며 각기 오른발은 악귀를 밟고 있는데 비해 왼 발은 악귀들이 받쳐 든 형식을 취하고 있다.
얼굴 모습은 표정이 분노형으로 강한 인상이기는 하나 볼륨감이 뛰어나 입체적인 면이 돋보일 뿐 아니라 다소 해학적인 면도 나타난다.
대형의 상임에도 불구하고 신체 각 부의 비례가 어긋나지 않고 적당하며 부피감과 함께 사실적 기법이 돋보인다.
보물로 지정되어 있는 장흥 보림사 사천왕상(16세기 초반)과 완주 송광사 사천왕상(1649)에 비하여 결코 뒤지지 않는 조형성이 뛰어난 작품이라 하겠다.
이와 더불어 서방 광목천왕상의 지물 중 보탑 대신 새끼호랑이가 등장하는 등 새로운 도상을 보여주어 학술적 자료로서도 그 가치가 크다 하겠다.
송광사 사천왕상은 조선시대 1628년(인조 6)에 다시 만들었다(重造)는 묵서명과 송광사사고(松廣寺史庫) 사지(寺誌) 등의 자료가 남아있어, 정유재란으로 훼손된 상을 1628년에 다시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18) 보물 제1468호 순천 송광사 소조 사천왕상 복장유물(順天 松廣寺 塑造 四天王像 腹藏遺物)
송광사 소조사천왕상 복장유물(順天 松廣寺 塑造四天王像 腹藏遺物)은 송광사에 있는 소조사천왕상의 전체적인 해체보수 과정에서 발견된 복장전적 12종 14책, 인본다라니 383장, 후령통 등의 복장유물이다.
2006년 4월 28일 대한민국의 보물 제1468호로 지정되었다.
송광사 소조사천왕상의 전체적인 해체보수 과정에서 불복장 유물을 수습하였는데 그 결과 복장전적 12종 14책, 인본다라니 383장, 후령통 등이 발견되었다.
특히, 복장유물 중에서도 사천왕상 출토 복장전적은 고려시대 교장(敎藏)의 성격을 밝히는 새로운 자료로서 가치가 높은 것으로 평가된다.
복장전적은 대부분 교장(敎藏)의 중수본(重修本)에 해당되는데 그중 일부는 재조본 대장경과 사찰본이 혼합되어 있다.
그러나 대각국사 의천(義天)이 주관하여 당시 교장도감(敎藏都監)에서 간행된 <교장(敎藏)>은 1000여종 가운데 국내외를 합쳐 모두 3종에 불과한 실정이며, 그 후 조선 세조가 간경도감(刊經都監)에서 중수한 책이 지금까지 송광사를 비롯하여 개인소장 등 대략 10종정도 알려져 있을 뿐이다.
그런데 송광사 사천왕상에서 발견된 교장 중수본은 무려 10종에 달하고 있어, 현재까지 알려진 종수와 동일한 수량이 발견되었다.
그리고 새로 발견된 중수본은 교장도감에서의 간행실태를 추정해 볼 수 있는 다음과 같이 다양한 성격을 지닌 판본들이다.
① 흥왕사 교장도감 이전에 이미 금산사 광교원에서 간행된 판본이 실재 존재하였다는 사실.
② 교장도감에서는 거란에서 입수한 목판본은 그대로 복각 간행하였다는 사실.
③ 사본으로 전해 오던 것을 조선 간경도감에서 정서본을 따로 마련하여 간행하였다는 사실.
이처럼 사천왕상 복장전적은 그 동안 학계에서 간헐적으로 논의되었던 내용들을 입증할 만한 새로운 자료로서의 가치가 있는 등 불교문화사, 서지학, 인쇄문화사적인 측면에서 중요성을 지닌다.
사천왕상 복장전적과 함께 출토된 인다라니경과 후령통 등도 불복장의 내용과 성격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19) 보물 제1549호 순천송광사목조석가여래삼존상및소조16나한상일괄
(順天 松廣寺 木造釋迦如來三尊像 및 塑造十六羅漢像 一括)
(20) 보물 제1660호 순천 송광사 목조관음보살좌상 및 복장유물
(順天 松廣寺 木造觀音菩薩坐像 및 腹藏遺物)
(21) 보물 제1661호 순천 송광사 목조관음보살좌상 복장전적
(順天松廣寺木造觀音菩薩坐像腹藏典籍)
4) 천연기념물
(1) 천연기념물 제88호 순천 송광사 천자암 쌍향수(곱향나무
)(順天 松廣寺 天子庵 雙香樹(곱향나무))
송광사 천자암 쌍향수(곱향나무)는 송광사 천자암에 있는 곱향나무이다.
대한민국의 천연기념물 제88호로 지정되어 있다.
옛 이름은 ‘송광사의 곱향나무 쌍향수’였는데, 2008년 4월 변경되었다.
향나무는 우리나라 중부 이남을 비롯해 울릉도와 일본에 분포하고 있다.
강한 향기를 지니고 있어 제사 때 향료로 쓰이거나 정원수, 공원수로 많이 심는 나무이다.
송광사의 곱향나무 쌍향수는 나이가 약 800살 정도로 추정되며, 높이 12.0m, 가슴높이 둘레 4.10m, 3.30m이다.
두 그루가 쌍으로 나란히 서 있고 줄기가 몹시 꼬인 신기한 모습을 하고 있다.
전설에 의하면, 고려시대에 보조국사(普照國師)와 담당국사(湛堂國師)가 중국에서 돌아올 때 짚고 온 향나무 지팡이를 이곳에 나란히 꽂은 것이 뿌리가 내리고 가지와 잎이 나서 자랐다고 한다.
담당국사는 왕자의 신분으로 보조국사의 제자가 되었는데, 나무의 모습이 한 나무가 다른 나무에 절을 하고 있는 듯하여 예의바른 스승과 제자의 관계를 나타내는 모습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또한 한손으로 밀거나 여러 사람이 밀거나 한결 같이 움직이며, 나무에 손을 대면 극락(極樂)에 갈 수 있다는 전설이 있어 이곳을 찾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송광사의 곱향나무 쌍향수는 앞에서 설명한 전설과 기이한 모습을 가진 오래된 나무로서 문화적 생물학적 가치가 높아 천연기념물로 지정보호하고 있다.
5) 종루
송광사는 통일신라 경문왕 7년(867)에 도의가 처음으로 세운 절이다.
그 뒤 폐허가 되어가던 것을 고려 중기의 고승 보조국사가 제자를 시켜서 그 자리에 절을 지으려고 했지만, 오랫동안 짓지 못하다가 광해군 14년(1622) 응호 승명 운정 덕림 득순 홍신 등이 지었다고 한다.
이후로도 인조 14년(1636)에 이르기까지 계속해서 절의 확장공사가 있었고 큰 절로 번창하였다.
종을 달아 놓은 종루는 십자각을 가리키는 말이다.
십자각은 열 십(十)자 모양을 하는 2층형 누각이다.
종이 걸려 있는 중앙칸을 중심으로 동서남북에 각각 1칸씩 덧붙여 이루는 모양인데, 지붕 역시 중앙에서 모아지는 화려한 모습을 하고 있다.
가운데 칸에는 종을 두고 목어 북 운판은 돌출된 칸에 각각 보관되어 있다.
마루 밑의 기둥들은 원형기둥과 사각기둥이 섞여 있으며, 위에 기둥들은 모두 원형기둥을 세워 놓았다.
조선시대의 유일한 열 십(十)자형 2층 누각으로 그 가치가 크다.
6) 응진당
순천 송광사 응진당(順天 松廣寺 應眞堂)은 송광사에 있는, 조선시대의 불교 건축물이다.
2001년 6월 5일 전라남도의 유형문화재 제254호로 지정되었다.
송광사의 응진당은 나한전 또는 응진전이라고도 하며, 그 안에는 16나한상과 16나한도가 모셔져 있다.
조계산에 있는 송광사는 고승을 가장 많이 배출한 승보사찰로 우리나라 3대 사찰 중 하나이며 매우 유서 깊은 절이다.
응진전은 높은 기단 위에 세워진 건물로 단아한 모습을 하고 있다.
앞면 3칸, 옆면 3칸 규모의 맞배지붕에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짜은 구조가 기둥 위에만 있다.
건물 내부에는 우물마루를 깔고 내부기둥을 세우지 않아 좁은 공간을 넓게 이용하려 하였으며, 천장은 서까래가 훤히 보이는 연등천장으로 꾸몄는데 불단 위에만 화려한 닫집을 마련하였다.
조선 연산군 10년(1504)에 처음 지어진 응진전은 1623년에 고쳐지어진 후로 여러 차례 보수를 하였으나 별다른 변화 없이 처음의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어 축조시기를 가늠할 수 있는 좋은 자료이다.
7) 조계문
조계문은 송광사의 첫 관문으로 일주문이라고도 부른다.
이 일주문은 신라 말에 처음 세운 것을 1310년, 1464년, 1676년, 1802년에 고쳐지었으며 현재의 조계문은 양식상 1802년에 새로 지은 것으로 보인다.
계단 좌우에 세운 돌짐승은 그 형태가 모호하여 사자 같기도 하고 원숭이 같기도 하다.
일주문을 들어서는 것은 세속의 번뇌와 흐트러진 마음을 모아 진리의 세계로 들어선 것이니 가능한 행동과 마음가짐을 경건히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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