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보사찰

법보사찰 해인사-2

유프랭크지안 2017. 7. 11. 02:10



해인사(海印寺)-2

2) 보물

(1) 보물 제128호 합천 반야사지 원경왕사비

합천 반야사지 원경왕사비(陜川 般若寺址 元景王師碑)는 경상남도 합천군, 해인사 사찰에 있는 고려시대의 비석이다.


1963년 1월 21일 대한민국의 보물 제128호로 지정되었다.

(2) 보물 제129호 합천 월광사지 동ㆍ서 삼층석탑

합천 월광사지 동서 삼층석탑(陜川 月光寺址 東·西 三層石塔)은 경상남도 합천군 월광사지에 있는, 통일신라의 삼층석탑이다.


1963년 1월 21일 대한민국의 보물 제129호로 지정되었다.

월광사터에 동서로 세워진 쌍탑으로, 모두 2층 기단(基壇)위에 3층 탑신(塔身)을 올린 일반적인 모습이다.

기단은 아래 윗층 모두 각 면의 모서리와 가운데에 기둥모양의 조각을 두었다.

탑신의 각 몸돌에도 모서리마다 기둥조각을 두었으며, 지붕돌은 밑면의 받침이 5단씩이다.

전체적으로 볼 때 두 탑이 거의 비슷하지만, 동탑은 전체의 규모에 비해 기단부의 구성에서 다소 많은 돌을 사용하였고, 서탑은 쓰러져 부서진 것을 최근에 세워 파손된 흔적이 보인다.

또한 기단 각 면의 가운데에도 기둥모양을 본떠 새겨놓았는데 서탑은 2개이고, 동탑은 1개이다.

통일신라의 탑이긴 하나, 서로 모습이 비슷하면서도 각 부분의 구성방법이나 양식이 약간 다른 점을 보이고 있어, 만들어진 연대가 조금 차이가 나고 있음을 추측하게 한다.

(3) 보물 제222호 합천 치인리 마애여래입상

마애여래입상(陜川 緇仁里 磨崖如來立像) 9세기 남북국 시대 신라의 마애 여래 입상이다.

대한민국의 보물 제222호로 지정되어 있다.

해인사를 뒤로 돌아 가야산(伽倻山) 정상으로 올라가는 길옆의 바위에 돋을새김으로 높이 7.5m의 불상을 표현하였다.

민머리에는 상투 모양의 머리묶음이 크고 높직하다.

미소가 없는 풍만한 사각형의 얼굴에는 날카로운 눈꼬리, 두꺼운 입술, 턱주름 등이 표현되었으며 귀는 어깨에 닿을 듯 길고 목에는 3개의 주름이 뚜렷하다.


어깨는 넓고 당당하여 얼굴과 함께 자신만만한 자세의 불상을 나타내고 있다.

양 어깨에 걸친 옷은 왼쪽 어깨에서 매듭을 지어 고리를 만들었으며, U자형으로 연 가슴에는 내의가 보이고 띠매듭이 있다.

오른손은 어깨까지 들어 엄지손가락과 가운데 손가락을 맞대었고, 왼손은 검지와 가운데 손가락을 구부려 가슴에 대어 손등을 보이고 있다.

특히 손은 사실적으로 섬세하게 처리하여 생동감이 느껴진다.

머리 뒤에는 단순한 원형의 머리광배가 있을 뿐인데, 이를 지탱하는 자연광배가 몸광배 구실을 겸하는 것 같다.

얼굴과 두 손은 정교하게 조각한 반면 신체는 마치 돌기둥에 새긴 듯 옷주름을 간략하게 처리하였다.

이 불상은 각 부분의 표현이 힘 있고 당당하면서도 세부수법에서 세련된 면이 보여 9세기 무렵에 만들어진 마애불상으로 추정된다.

(4) 보물 제264호 합천 해인사

(5) 보물 제518호 합천 해인사 원당암 다층석탑 및 석등

합천 해인사 원당암 다층석탑 및 석등(陜川 海印寺 願堂庵 多層石塔 및 石燈)은 해인사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다층석탑과 석등이다.

1970년 6월 24일 대한민국의 보물 제518호로 지정되었다.

팔만대장경이 보관되어 있는 호국신앙의 요람인 해인사의 원당암 안에 있는 다층(多層) 석탑이다.


탑신(塔身)을 점판암으로 만든 청석탑(靑石塔)으로, 점판암은 벼루를 만드는데 주로 사용되는 석재이다.

땅과 맞닿아 탑의 토대가 되는 바닥돌은 화강암을 이용하여 3단으로 쌓았으며, 그 위에 탑신을 받치는 기단(基壇)과 지붕돌은 점판암으로 구성하였다.


기단은 1단으로 밑면에는 돌아가며 연꽃무늬를 장식하였고, 윗면은 네 모서리에 대리석 돌기둥을 세웠으며, 맨 윗돌에는 연꽃무늬를 새겼다.

탑신의 몸돌은 남아있지 않고 지붕돌만 10층이 쌓여 있다.

지붕돌은 경사진 4면이 매우 평평하고 얇으며 밑면엔 낮은 3단의 받침이 새겨져 있고 처마는 네 귀퉁이에 이르러 위로 살짝 들려 올라갔다.

탑의 꼭대기에는 화강암으로 만든 노반(露盤:머리장식받침)이 낮게 있고, 그 위로 복발(覆鉢: 엎어놓은 그릇 모양의 장식)만이 높직하게 남아 있다.

청석탑은 대체로 고려시대에 본격적으로 유행하게 되지만 이 석탑은 신라 말에 만들어져 청석탑의 선구라 할 수 있다.

석등은 탑의 옆에 있으며, 탑과 거의 동일한 시대의 작품이다.

땅과 맞닿은 6각형의 바닥돌 위에 아래받침돌과 중간받침돌, 지붕돌로 이루어졌는데, 아래받침돌과 지붕돌이 점판암으로 되어 있고 다른 부재는 화강암이다.

현재는 지붕돌 밑의 불을 밝히던 부분인 화사석(火舍石)이 남아 있지 않다.

중간받침돌은 가늘고 긴 편으로 아래위에 상(上)·하(下)의 글자가 움푹하게 새겨져 있다.

지붕돌은 6각형으로 윗면은 편평하며, 머리장식은 원기둥 모양의 돌 하나가 얹혀있을 뿐이다.

(6) 보물 제734호 합천 해인사 고려목판

합천 해인사 고려목판(陜川 海印寺 高麗木板)은 해인사에 소장되어 있는 고려시대에 새긴 목판으로, [대방광불화엄경] 진본(晉本) 728매, 주본(周本) 941매 등 불교경전, 고승의 저술, 시문집 등 총 54종 2,835판이다.

국가기관인 대장도감에서 새긴 해인사 대장경판과는 달리 사찰이나 지방관서에서 새긴 것으로 현재 해인사 장경판전 사이에 있는 동서 사간판전에 봉안되어 있다.


이 목판들은 금강경, 화엄경 등의 대승경전과 신라 고려 중국의 고승이나 개인의 시문집 및 저술들이다.

경전류는 대부분 간행기록이 있어 고려시대 불교경전의 유통 등 불교신앙의 경향을 알 수 있으며, 고승 및 개인의 시문집과 저술 등은 비록 간행 기록이 없고 산실이 많으나 그 내용이 전해지지 않거나 역사적으로 희귀한 자료들로서 한국 불교사상 및 문화를 알 수 있는 유일한 자료들이다.


그리고 그 자체가 한국 목판 인쇄술의 실증적 자료로서 그 시대의 문화를 상징하는 서각예술품이기도 하다.


해인사의 고려시대에 판각한 경판은 모두 54종 2,835판인데, 이중 28종 2,725판이 국보 제206호로 지정되어 있고, 26종 110판은 보물 제734호로 지정되어 있다.

(7) 보물 제999호 합천 해인사 건칠희랑대사좌상

합천 해인사 건칠희랑대사좌상(陜川 海印寺 乾漆希朗大師坐像) 해인사 조사였던 고려시대 희랑대사의 진영상(眞影像)으로, 해인사에 모셔져 있다.

1989년 4월 10일 대한민국의 보물 제999호로 지정되었다.

해인사 조사였던 고려시대 희랑대사의 진영상(眞影像)으로 경상남도 합천의 해인사에 모셔져 있다.


고려 건국 당시 해인사 승려들은 견훤을 지지하는 남악파(南岳派)와 왕건을 지지하는 북악파(北岳派)로 나뉘어 있었는데 희랑은 북악파의 종주(宗主)였다.

이 상은 화엄종 북악파의 진면목을 적절하게 묘사하여 화엄종의 진리를 무언(無言)의 형상을 통해서 지금까지 끊임없이 설법하고 있는 우리나라 초상의 최고 걸작이다.

앞쪽은 건칠기법으로 뒷쪽은 나무로 제작한 이 상은 체구에 비해 머리가 다소 큰 편이다.

얼굴은 길고 이마에는 주름살이 깊이 파였으며, 자비로운 눈매, 우뚝 선 콧날, 잔잔한 입가의 미소는 노스님의 인자한 모습을 잘 나타내고 있다.

여윈 몸에는 흰 바탕에 붉은 색과 녹색 점이 있는 장삼을 입고 그 위에 붉은 바탕에 녹색 띠가 있는 가사를 걸치고 있는데 그 밑에 금색이 드러나는 것으로 미루어 원래 모습에는 금빛이 찬연했던 것으로 짐작된다.

생략할 곳은 과감히 생략하고 강조할 곳은 대담하게 강조하여 노스님의 범상하지 않은 위용을 사실적으로 표현하고 있는데서 인간적인 따뜻한 정감을 느낄 수 있다.

만들어진 연대는 고려 초인 930년경 이전으로 추정되며, 진영 조각의 진수를 가장 잘 묘사함으로써 10세기 중엽 조각 가운데 최고의 걸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또한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유일한 승려의 진영 조각이라는 점에서도 미술사적 가치가 큰 작품이다.

(8) 보물 제1208-2호 춘추경좌씨전구해 권60~70

춘추경좌씨전구해 권60~70(春秋經左氏傳句解 卷六十~七十)은 경상남도 합천군에 있는 조선시대의 책이다.

2011년 4월 29일 대한민국의 보물 제1208-2호로 지정되었다.

[춘추경좌씨전구해 春秋經左氏傳句解]는 송(宋) 나라 임요수가 두예(杜預:228-284)의[춘추좌씨경전집해 春秋左氏經傳集解]의 난해한 부분마다 초학자의 이해를 돕기 위하여 직접 구두(句讀)를 떼고, 성명이나 지리 등이 중복되면서 다르게 표현된 부분에 모인(某人) 또는 모지(某地)로 직주(直注)를 다는 방법을 채용하였기 때문에 서명에 구두직해(句讀直解)를 붙였는데, 이를 다시 줄여서 구해(句解)라고 한 것이다.


임요수의 이러한 직해식(直解式) 주석은 난해하다는 평을 듣던 두예의 집해를 쉽게 읽을 수 있도록 통속화한 것으로, 송 원(宋 元) 대는 물론 원․명(元․明) 대에도 널리 유행하였는데, 조선 초에 이 책이 수입되면서 태종대에는 계미자로 간행되었고, 이어 세종대와 단종대에도 수차에 걸쳐 번각 등의 방식으로 간행되었다.

이 책은 조선 1431년(세종 13)에 경상도관찰출척사(慶尙道觀察黜陟使) 조치(曺致)와 도사(都事) 안질(安質)의 주선으로 청도지군사(淸道知郡事) 주소(朱邵)의 책임하에 청도(淸道)에서 출간(出刊)한 책으로, 그중 전존한 11권 1책의 영본(零本)이다.

1431년(세종13) 8월에 판각을 시작하여 3개월 후인 동년 11월에 완료한 것임이 권말에 수록된 발문과 간행기록을 통해 알 수 있다.


첫 장에 일부 훼손 부분이 있고 표지는 개장되었으나, 대체적으로 보존 상태는 양호한 편이다.

특히 기 지정문화재인 보물 제1208-1호가 간행기록 부분을 어느 시기에 의도적으로 훼손한 것으로 판단되는 도서인 데 비하여 이 책은 해당 부분이 매우 선명하다.

책의 본체는 전체적으로 배접되어 있다.

[춘추경좌씨전구해 春秋經左氏傳句解]는 조선시대에 여러 차례 간행되면서 널리 읽혀진 책이나 알려진 범위에서는 완질이 없다.

비록 11권 1책의 영본이기는 하나 간행배경을 전하는 발문과 간행기록이 남아있어서 일의 주선자들은 물론 판각을 담당한 각수와 교정자 및 교감자 까지 상세히 알 수 있어 세종대의 서적출판을 비롯한 서지학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된다.

특히 국가문화재로 기 지정된 보물 제1208-1호에 비하여 보존 상태가 양호하다는 점에서 특히 서지학적 연구에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9) 보물 제1242호 합천 해인사 길상탑

합천 해인사 길상탑(陜川 海印寺 吉祥塔) 통일신라의 탑이다.

1996년 5월 29일 대한민국의 보물 제1242호로 지정되었다.

이 탑은 2중의 기단을 지닌 전형적인 통일신라시대의 석탑의 모습을 하고 있는 높이 약 3m의 아담한 소탑이다.

일반적인 탑과는 다르게 상층기단이 하나의 돌로 이루어져 있다.


지붕돌 주름은 각각 다섯 단으로 구성되어 있고, 기단부가 낮고 넓어 상당히 안정된 느낌을 주고 있다.

상륜부는 노반만이 남아 있다.

1966년에 탑안에서 탑지 4매와 석탑공양물이 나왔다.

4매의 탑지는 신라 말기의 대 문장가인 최치원이 작성한 것으로 유명하다.

내용은 895년을 전후한 7년에 걸친 통일신하 말기의 혼란 속에서 도둑들로부터 사찰의 보물을 지키다 희생된 스님들의 영혼을 달래려 탑을 건립하였다는 사실과 탑의 높이, 만든 사람 및 탑의 건립에 사용된 비용 등을 기록하고 있다.

이러한 기록은 통일신라시대 말기 복잡한 사회상 및 경제상과 당시 해인사의 상황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10) 보물 제1253호 해인사 동종

합천 해인사 동종(陜川 海印寺 銅鍾)은 해인사에 있는 조선시대의 동종이다.

1997년 6월 12일 대한민국의 보물 제1253호로 지정되었다.

해인사의 대적광전 안에 있는 높이 85㎝, 입지름 58㎝, 두께 6㎝의 종이다.

꼭대기에는 사실적이고 생동감 넘치는 두 마리의 용이 종을 매다는 고리인 용뉴 역할을 하고 있고, 어깨 부분에는 연꽃을 새겼다.


밑으로는 돌출된 9개의 유두가 사각형 모양의 유곽 안에 있으며, 유곽 사이사이에는 보살상이 있다.

종 중앙에는 3줄의 굵은 가로줄을 돌리고 그 위쪽에는 꽃무늬를, 아래로는 용무늬를 새겨 종 전체가 무늬로 가득 차 매우 화사한 느낌을 주고 있다.

아랫부분에는 다시 2줄의 가로줄을 돌리고, 위쪽에는 일정한 간격을 두고 8괘를, 아래쪽에는 아무런 무늬를 새기지 않았다.

유곽 아래에는 조선 성종 22년(1491년)에 만들었다는 글이 있다.

이 종은 시대적 변천과정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으며, 불교 공예품으로도 가치가 있는 작품이다.

(11) 보물 제1273호 해인사영산회상도

합천 해인사 영산회상도(陜川 海印寺 靈山會上圖)는 해인사에 있는 조선시대의 탱화이다.

1997년 8월 8일 대한민국의 보물 제1273호로 지정되었다.

석가가 영축산에서 설법하는 장면을 묘사한 영산회상도이다.

해인사에 있는 이 불화는 비단 바탕에 채색하였고, 길이 334㎝, 폭 240㎝이다.


이 그림은 본존인 석가불을 중심으로 주변에 여러 무리들을 적절히 배치하여 영산회상의 법회 장면을 자세히 묘사하였다.

중앙에 있는 석가는 손가락을 땅으로 향하게 하여 마귀를 물리치는 의미를 지닌 항마촉지인의 손 모양을 하고 앉아 있다.

다른 무리들에 비해 유난히 신체가 크며, 떡 벌어진 어깨로 인해 보는 이를 압도하는 듯하지만 둥근 얼굴과 엷은 미소로 부드러움과 넉넉함도 느끼게 한다.

중앙의 석가불을 중심으로 많은 무리들이 대집단을 이루어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는데, 그 모습이 서로 닮아 도식적인 느낌이 들기도 한다.

채색은 밝은 홍색과 녹색 바탕에 흰색과 금칠을 해서 전체적으로 밝고 화사한 분위기가 느껴지고 옷과 대좌 등에 표현된 색상과 문양에서 정교함과 꼼꼼함을 엿볼 수 있다.

영조 5년(1729) 승려화가 의겸이 참여한 그린 그림으로 주변에 무리들이 많지만 적절하게 배치하여 시선을 탁 트이게 해주는 구도와 격조 높은 색채와 문양, 정교한 필치 등이 주목되는 작품이다.

그림에 기록된 글로 화가와 제작시기를 정확히 알 수 있어 조선 후기 불교회화 연구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귀중한 자료이다.

(12) 보물 제1300호 합천 해인사 홍제암

합천 해인사 홍제암(陜川 海印寺 弘濟庵)은 해인사에 있는 조선시대의 건축물이다.

2000년 9월 28일 대한민국의 보물 제1300호로 지정되었다.

해인사에 속해 있는 암자로 임진왜란(1592)과 정유재란 때 승병장으로 큰 공을 세운 사명대사가 수도하다 세상을 떠난 곳이다.


홍제암이라는 이름은 사명대사 입적 후 광해군이 내린 ‘자통홍제존자’라는 시호에서 따왔다.

광해군 6년(1614)에 혜구대사가 사명대사의 초상을 모시기 위해 건립하였으며, 1979년 10월에 해체 보수공사를 실시하였다.

법당과 생활공간의 기능을 겸한 인법당(因法堂) 형식의 건물 1동으로 되어 있으나 일반적인 인법당과는 달리 사명대사와 관련이 있는 여러 기능의 공간들이 한 곳에 모여 있는 특이한 형태를 이루고 있다.

기본 평면은 工자형으로 가운데 법당을 중심으로 조사전, 영각, 홍각, 조실, 시자실 등이 있으며, 각각의 공간은 툇마루를 통해 모두 연결되고 있다.

경사진 대지를 이용하여 홍각과 지장전은 돌출된 누각형으로 만들고, 법당 및 다른 공간은 단층의 구조로 만드는 재미있는 공간 배치를 보여준다.

또한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기둥 윗부분에 구성한 공포의 수법도 각 공간의 위계에 따라 달리 표현하였으며, 기둥과 기둥의 간격인 칸의 크기도 각 공간의 기능에 따라 각기 달리 하였다.

밖으로 노출된 기둥은 둥근기둥을 사용하고 안에 있는 기둥은 사각기둥으로 처리한 점도 특이하다.

[합천 해인사 홍제암 사명대사탑 및 석장비] (보물 제1301호)와 영정이 모셔져 있는 홍제암은 여러 기능의 공간이 하나의 건물 안에 모여 있는 특이한 형태의 암자로, 각 공간의 위계와 기능에 따라 건물구조나 양식의 수법을 여러 형태로 표현하고 있어 역사적 의의 뿐만 아니라 건축적인 가치가 크다.

(13) 보물 제1301호 합천 해인사 홍제암 사명대사탑 및 석장비

합천 해인사 홍제암 사명대사탑 및 석장비(陜川 海印寺 弘濟庵 四溟大師塔 및 石藏碑)는 해인사에 있는 조선시대의 탑이다.

2000년 9월 28일 대한민국의 보물 제1301호로 지정되었다.

해인사 홍제암에 있는 사명대사의 탑 및 비(碑)이다.


사명대사는 임진왜란(1592)과 정유재란 때 승병장으로서 큰 공을 세운 승려로, 이곳 홍제암은 사명대사가 수도하다가 세상을 떠난 곳이다.

홍제암이라는 암자 이름은 사명대사 입적 후 광해군이 내린 ‘자통홍제존자’라는 시호에서 따온 것이다.

홍제암의 북동쪽 약 20m 지점의 산기슭에 자리 잡고 있는 사명대사탑은 조선 후기를 대표할 수 있는 거대한 종 모양의 탑으로, 당당한 형태와 조형미를 보여주고 있다.

기단은 하나의 돌로 2단을 이루었는데, 아랫단은 사각형이고 윗단은 둥근 형태를 보이고 있으며, 그 위에 종 모양의 몸돌을 올려놓은 모습이다.


탑의 꼭대기에는 연꽃 봉오리 모양의 보주(寶珠)를 올려놓았다.

사명대사 석장비는 대사의 일대기를 기록한 비석으로, 광해군 4년(1612)에 세웠으며 [홍길동전]을 지은 허균이 비문을 지었다.

일제시대(1943년) 때, 비문의 내용이 민족혼을 불러일으킬 우려가 있다 하여 일본인 합천 경찰서장이 네조각으로 깨뜨린 것을 1958년에 다시 접합하여 세웠다.

이 석장비는 현존하는 사명대사비 가운데 가장 먼저 건립되었으며, 문장이 매우 빼어날 뿐 아니라 비문에 대사의 행적이 비교적 소상하게 적혀 있어 역사적인 가치도 높다.

사명대사의 탑과 석장비는 본래 하나의 짝을 이루고 있던 것으로, 이러한 형식은 신라시대 이래의 전통이 계승되고 있다는 점에서 학문적인 의의가 있다.

(14) 보물 제1697호 합천 해인사 감로왕도

합천 해인사 감로왕도(陜川 海印寺 甘露王圖)는 해인사에 있는 조선시대의 불화이다.

2010년 12월 21일 대한민국의 보물 제1697호로 지정되었다.

1723년 심감(心鑑), 신오(信悟), 득총(得聰)이 조성한 해인사 감로왕도는 17세기 전반에 조성된 불화임에도 구성이나 존상 표현 등에서 조선 전기의 감로도 형식이 많이 남아 있는 작품이다.


화면 구성은 제단을 중심으로 크게 상단과 하단으로 나누어지는데, 망자를 천도하기 위해 강림하는 불보살이 그려진 상단부분이 강조된 반면, 의식이 거행되는 장면과 천도의 대상이 되는 망자의 모습이 매우 조밀하게 표현되었다.

이는 조선 후기 감로도가 상단에 불보살, 중단의 의식장면, 하단의 망자 등으로 구성하는 방식과는 다르다.

상단을 자세히 살펴보면, 철위산을 표현한 산수를 배경으로 도량에 강림한 칠여래가 크게 강조되어 그려졌으며, 그 왼편 아래로 아미타삼존이 제단을 향해 내영하는 모습을 그려 의식장면과 자연스럽고 유기적인 관계가 이어지도록 구성하였다.

아미타삼존불 아래에는 의식을 거행하는 장면이 있으며, 제단 아래에는 금빛 발우를 든 아귀와 합장을 한 아귀를 배치하였다.

제단 오른쪽에는 번을 든 인로왕보살과 석장을 든 지장보살을 그려 지옥의 문을 깨 망자를 구제하여 극락으로 인도하는 일련의 이미지를 전달하고 있다.

화면 하단에는 천인, 왕후제상을 비롯하여, 전쟁으로 죽은 이, 우차에 깔려 죽은 이, 홍수로 죽은 이 등 다양한 죽음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이처럼 해인사 감로도는 화면 구성이 유기성 있게 구성되어 있으며, 불보살을 비롯한 각 존상의 세부 묘사와 녹색, 홍색을 중심으로 분홍, 노랑, 청색 등이 조화가 뛰어나다.

또한 배경을 이루는 청록산수는 안견화풍으로 그려져 중앙화단과 불화간의 영향관계를 살피는데 좋은 자료가 되고 있다.

(15) 보물 제1777호 합천 해인사 법보전 목조비로자나불좌상 및 복장유물

합천 해인사 법보전 목조비로자나불좌상 및 복장유물(陜川 海印寺 法寶殿 木造毘盧遮那佛坐像 및 腹藏遺物)은 해인사 법보전에 있는 불상이다.

1972년 2월 12일 경상남도의 유형문화재 제41호로 지정되었다가, 2012년 10월 30일 대한민국의 보물 제1777호로 지정되었고, 2012년 11월 22일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지정이 해제되었다.

해인사는 신라 애장왕 때 순응과 이정이 세운 사찰로 의상의 화엄 10찰 중 하나이며, 팔만대장경을 보관하고 있는 법보사찰(法寶寺刹)로서 유명하다.

불상은 팔만대장경이 보관되어 있는 장경각 뒤편에 있는 법보전의 본존불로서 이마에는 반달 모양이 표현되었고, 얼굴은 갸름한 편이다.

귀는 어깨까지 길게 내려오고 목에는 3개의 주름인 삼도(三道)가 뚜렷하다.

불상이 입고 있는 옷은 왼쪽 어깨에만 걸쳐 있고, 주름은 평행 계단식으로 표현되었다.

손은 왼손 검지를 오른손으로 감싸고 있는 모습으로 비로자나불이 취하는 일반적인 손모양이다.


좌우에는 높이 47㎝의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이 아담한 크기로 배치되어 있는데, 조선 초기 보살상의 특징을 잘 표현하고 있다.

해인사 법보전 목조비로자나불좌상은 통일신라 말~고려 초에 제작된 목조불상으로 1m가 넘는 크기에, 조형성은 물론 조각적인 완성도까지 갖춘 작품이다.

동글동글한 나발, 이상화된 얼굴과 당당한 신체 표현, 신체에 감기듯 팽팽하게 걸쳐 입은 편단우견의 착의형식과 더불어 치켜세운 왼손 검지를 오른손으로 감싸 쥔 지권인의 형태, 긴장감 넘치게 조각된 옷주름 등은 통일신라 말에서 고려 초에 제작된 불상들과 양식적으로 비교될 수 있다.


복장유물로는 다라니, 발원문 그리고 후령통 등 여러 종류의 유물이 발견되었는데 대부분 1167년경과 1490년의 중수 때 납입된 것이다.

특히 1490년에 납입된 후령통은 안립 절차에 입각하여 정확한 형식을 갖추고 있는데, 이는 조선 후기 [조상경造像經]이 간행되기 이전에 이미 복장의 식이 정립되어 있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이다.

특히 사씨(史氏) 일가에 의해 납입된 반야심경의 발원문은 1167년(고려의종21)에 불상에 대한 중수가 있었음을 말해주는 자료여서 이 불상의 하한연대 결정에 결정적인 자료이다.

이 밖에 1150년, 1156년, 1166년에 각기 판각한 [대비로자나성불경등일대성교중무상일승제경소설일체다라니 大毗盧遮那成佛經等一代聖敎中無上一乘諸經所說一切陁羅尼]가 발견되었다.

복장물 가운데 3점의 조각보는 조선 초기에 제작된 것으로 우리나라 조각보의 역사가 500년 이상 되었다는 것을 뒷받침해준다.

또한 저고리는 조선 초기의 홑저고리 형태를 보여주고 있으며, 후령통 내부의 오보병은 그 구성이 현재까지 알려진 바가 없는 독특한 방식을 갖추고 있어 직물사와 복장물 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다.

(16) 보물 제1778호 합천 해인사 법보전 목조비로자나불좌상 복장전적

합천 해인사 법보전 목조비로자나불좌상 복장전적(陜川 海印寺 法寶殿 木造毘盧遮那佛坐像 腹藏典籍)은 해인사 법보전에 있는 고려시대의 전적류이다.

2012년 10월 30일 대한민국의 보물 제1778호로 지정되었다.

해인사 법보전 목조비로자나불좌상은 통일신라 말~고려 초에 제작된 목조불상으로 1m가 넘는 크기에, 조형성은 물론 조각적인 완성도까지 갖춘 작품이다.

동글동글한 나발, 이상화된 얼굴과 당당한 신체 표현, 신체에 감기듯 팽팽하게 걸쳐 입은 편단우견의 착의형식과 더불어 치켜세운 왼손 검지를 오른손으로 감싸 쥔 지권인의 형태, 긴장감 넘치게 조각된 옷주름 등은 통일신라 말에서 고려 초에 제작된 불상들과 양식적으로 비교될 수 있다.


복장유물로는 다라니, 발원문 그리고 후령통 등 여러 종류의 유물이 발견되었는데 대부분 1167년경과 1490년의 중수 때 납입된 것이다.

특히 1490년에 납입된 후령통은 안립 절차에 입각하여 정확한 형식을 갖추고 있는데, 이는 조선 후기 [조상경造像經]이 간행되기 이전에 이미 복장의식이 정립되어 있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이다.

특히 사씨(史氏) 일가에 의해 납입된 반야심경의 발원문은 1167년(고려의종21)에 불상에 대한 중수가 있었음을 말해주는 자료여서 이 불상의 하한연대 결정에 결정적인 자료이다.

이 밖에 1150년, 1156년, 1166년에 각기 판각한 [대비로자나성불경등일대성교중무상일승제경소설일체다라니]가 발견되었다.

복장물 가운데 3점의 조각보는 조선 초기에 제작된 것으로 우리나라 조각보의 역사가 500년 이상 되었다는 것을 뒷받침해준다.

또한 저고리는 조선 초기의 홑저고리 형태를 보여주고 있으며, 후령통 내부의 오보병은 그 구성이 현재까지 알려진 바가 없는 독특한 방식을 갖추고 있어 직물사와 복장물 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다.

(17) 보물 제1779호 합천 해인사 대적광전 목조비로자나불좌상 및 복장유물

합천 해인사 대적광전 목조비로자나불좌상 복장유물(陜川 海印寺 大寂光殿 木造毘盧遮那佛坐像 腹藏遺物)은 해인사에 있는 고려시대의 전적류이다.


2012년 10월 30일 대한민국의 보물 제1779호로 지정되었다.

(18) 보물 제1780호 합천 해인사 대적광전 목조비로자나불좌상 복장전적

합천 해인사 대적광전 목조비로자나불좌상 복장전적(陜川 海印寺 大寂光殿 木造毘盧遮那佛坐像 腹藏典籍)은 해인사에 있는 전적류이다.



2012년 10월 30일 대한민국의 보물 제1780호로 지정되었다.

(19) 보물 제1799호 합천 해인사 지장시왕도

합천 해인사 지장시왕도(陜川 海印寺 地藏十王圖)는 해인사에 있는, 조선시대의 탱화이다.

2013년 4월 29일 대한민국의 보물 제1799호로 지정되었다.

1739년에 대시주 처옥(處玉)의 발원에 의해 수화원 혜식(慧湜)을 비롯한 6명의 화승이 관음전 불화로 조성하였다.

구도에서는 지장삼존과 시왕, 판관, 지옥사자, 선악동녀, 옥졸 등 31명에 달하는 인물들을 밀도 높게 표현하되, 중앙의 본존에 비하여 권속들을 상대적으로 작게 묘사함으로써 많은 권속들을 효과적으로 배열하였다.


전체적으로 인물들의 형태에 안정감이 있고 신체 비례가 적절하며, 채색은 녹색과 적색을 중심으로 차분하면서도 안정된 색감을 느끼게 한다.

특히 인물묘사에서 수염 하나하나까지도 섬세하게 그려낸 것에서 화승들의 필력이 숙달되었음을 느끼게 한다.

이 불화는 현존하는 명부전 지장보살도 가운데 비교적 이른 시기에 조성된 불화로, 18세기 전반 경상남북도 지역 불화 화풍을 잘 보여주고 있어 국가지정문화재(보물)로 지정, 보호할 만한 가치가 있다.

(20) 보물 제1806호 합천 해인사 내전수함음소 권490 목판

합천 해인사 내전수함음소 권490 목판(陜川 海印寺 內典隨函音疏 卷四百九十 木板)은 해인사에 있는 고려시대의 1245년(고려고종32)에 대장도감에서 판각하여 완성한 경판이다.


2013년 7월 16일 대한민국의 보물 제1806호로 지정되었다.

내전(內典)은 부처의 설법을 담은 불경이고 음소(音䟽)는 음에 대한 해석을 뜻하는 것으로, 내용은 대승불교에서 가장 중시하는 여섯 가지 실천덕목인 육바라밀다(六波羅蜜多)를 설명한 것에 대한 주석이다.

본문은 반야(般若)가 한역한 대승이취육바라밀다경(大乘理趣六波羅蜜多經)의 10권에 대한 음의(音義)가 수록되었고, 권말에는 ’을사세 고려국 대장도감 봉칙조조(乙巳歲高麗國 大藏都監 奉勅雕造)‘의 간기가 있다.

지금까지 대장경목록에도 없이 인쇄본만 알려져 있었으므로 이 경판은 대장경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3) 기타 문화재

(1) 사적 제504호 합천 해인사


(2) 명승 제62호 가야산 해인사 일원


(3) 천연기념물 제541호 합천 해인사 학사대 전나무

합천 해인사 학사대 전나무는 해인사에 있는 전나무이다.

대한민국의 천연기념물 제541호로 지정되어 있다.


나이는 250살 정도이며, 해인사 장경판전 옆에 심겨 있다.

학사대(學士臺)는 최치원이 해인사 대적광전 주변에 작은 정자를 지은 후 자신이 역임한 한림학사 벼슬 이름을 따 지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치원이 지팡이를 꽂았는데 이것이 자라 전나무가 되었다는 전설이 있어서 학사대 전나무라 부른다.

이 전나무는 최치원이 심은 전나무의 손자뻘쯤 되는 나무로 규모가 크고, 최치원과 관련된 문헌기록 [동국여지승람 東國輿地勝覽] 등과 전설이 전해지고 있으며, 1757년 무렵 후계목을 심은 기록이 [백불암집 百弗庵集]에도 남아 있어서 역사적 문화적 가치가 크다.

(4) 중요민속문화재 제3호 광해군 내외 및 상궁 옷

광해군 내외 및 상궁 옷(光海君 內外 및 尙宮 옷)은 해인사에 있는 조선시대의 의복이다.

1965년 10월 12일 대한민국의 국가민속문화재 제3호로 지정되었다.


조선시대 광해군(재위 1608∼1623)과 그의 비(妃) 유씨, 그리고 궁중의 정5품 상궁이 입었던 의복 4점이다.

1965년 해인사 장경판고(藏經板庫)를 수리할 때 남쪽 지붕 아래 구멍에서 건물 완공에 대한 기록과 상궁의 이름이 적힌 명단이 이 의복들과 함께 발견되었다.


발견된 의류는 담청색 직령 1점, 백삼 1점, 홍삼 1점, 자주저고리 1점 등 4점이다.

이 의복들은 재봉질 못지않은 정교한 바느질 솜씨를 보여주고 있는데, 당시 세련되었던 바느질법의 한 단면을 보여 주고 있으며, 조선 중기의 의복 습관을 잘 나타내고 있어 복식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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