ㅂ부-8
병진(丙辰)
六十甲子의 13번째.
① 年 : 불룡.
② 月 : 봄철 가믐.
③ 日 : 乙인수9 癸정관3 戊식신18, 희생봉사마음, 어머니 같다.
④ 時 : 출발이 좋음.
병진(丙辰) 일(日)
난폭성(亂暴性)의 丙火가 食神인 戊土와 正印인 乙木과 正官인 癸水를 만난 형태 이다.
궁리하고 연구하는 것으로 목적을 삼으며 자신의 궁리에 장애가 되는 것은 무조건 쳐내야 속이 시원한 형태가 된다.
이것은 난폭한 偏官인 丙火가 食神을 만났기 때문이다.
그리고 직관력(直觀力)이 그 안에 내재되어 있어서 자신의 생각에 대한 확고한 신념도 발생된다.
그리고 자신의 생각이 개인적으로 판단한 것이 아닌 객관적(客觀的)이라는 점에 대해 강력한 주장이 발생하게 된다.
이러한 점은 궁리하는 것은 표면적으로 작용을 하고, 객관성과 직관성은 내부적으로 작용을 하게 되어 우선 겉보기에는 난폭하게 자신의 주장을 하는 형태로 인식이 될 수가 있다.
丙辰은 자신이 생각하는 것은 모두 합리적이고 객관적이기 때문에 수정을 할 필요가 없다고 하는 생각을 내심으로 하게 된다.
그래서 강경(强硬)한 어투를 사용하게 되고, 남들은 자신의 주장을 그대로 수용(受容)하고 접수(接受)만 하면 되므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판단을 하게 된다.
이것이 잘못 진행이 되면 자신의 능력을 과신(過信)하여 남의 의견을 무시하는 형태로 강행하여 독재(獨裁)의 형태가 될 수도 있는 성분을 포함하고 있다.
丙辰은 순수(純粹)한 면을 갖고 있다.
그야말로 사심(私心)이 없이 순수한 마음으로 자신의 생각을 따라오라는 마음이 강하게 작용하며 더욱 힘차게 그 생각을 널리 전하고자 하는 투사(鬪士)와 같은 면을 갖기도 한다.
순수하게 수용을 하게 되면 기쁜 마음에 자신의 생각을 전달해 주지만, 누군가 반발을 하게 되면 그에 대해서는 끝까지 물고 늘어져서 자신의 생각이 옳고 상대방의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집착을 하게 된다.
다만 이러한 행동은 자신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상대방에게 잘못된 것을 알려줘야 한다는 사명감(使命感)으로 인해서 오해를 할 소지는 있지만 그러한 것을 두려워하지는 않는다.
丙辰은 직관력(直觀力)을 내재하고 있으므로 연구를 하는 과정에서 문득문득 파악되는 순간포착이 잘 이뤄지는 능력을 갖고 있다.
병화(丙火)
天干의 本質. 丙火는 火의 陽에 대한 부호(符號)이다.
火의 氣에 해당하기도 하며 구태여 이름을 붙인다면 빛을 닮았다.
병화를 太陽이라고만 하는 것은 정확한 대입이라 할 수 없다.
태양에는 빛도 있지만 열(熱)도 있기 때문에 모든 불에는 丙火가 포함되어 있으며 어떤 불이든 빛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다만 그 비중이 많은 것도 있고, 적은 것도 있다고 보면 되겠다.
가령 사람이 만들어 사용하는 것 중에 형광등은 병화의 요소가 많으며, 난로(煖爐)는 정화의 요소가 많은 것으로 볼 수 있다.
적천수(滴天髓)에,
병화맹렬 기상모설 능단경금 봉신반겁 토중생자 수창현절 호마견향 갑래성멸
丙火猛烈 欺霜侮雪 能煓庚金 逢辛反怯 土衆生慈 水猖顯節 虎馬犬鄕 甲來成滅
丙火기운이 맹렬(猛烈)하니 눈과 서리를 능히 무시하고, 庚金을 만나면 단련시키나 辛金을 만나면 도리어 겁낸다.
土는 많이 있어도 자애심을 내고, 水는 불을 끈다고 해도 절개를 지키는데 寅午戌의 화세(火勢)가 모여드는 사주에서 甲木을 만나게 되면 木은 불타게 된다.
병화(丙火)의 일주(日柱)
丙火의 기본형은 偏官이다.
十星 중에서 가장 강력하고 난폭하며 통제불능(統制不能)의 상태에 처하게 되는 성분이다.
고서(古書)에 丙火를 太陽이라고 했는데, 그러한 면에 부합되는 작용으로는 한 여름의 폭염(暴炎)을 예로 들 수가 있다.
더위에 숨이 턱에 닿아서 헐떡이는 사람들의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에서 丙火의 모습이 느껴지고, 길게 늘어진 개의 혀와 못 견디겠다는 듯한 표정에서도 병화가 느껴진다.
이러한 경우에는 丙火를 태양이라고 하는 것이 어울리는 장면이다.
丙火는 빛이다.
직선적(直線的)인 구조를 하고 있어서 굽어지는 이치를 모른다.
오로지 직선적으로 파고 들어가는 성분이므로 수용을 하거나 하지 않거나 개의치 않는다.
그래서 원하는 대상에서는 고맙게 수용을 하겠지만 원하지 않는 경우에는 견디기 힘들만큼의 강압적(强壓的)인 현상으로 나타나게 되기도 한다.
이러한 느낌은 폭염(暴炎)이라는 말로 표현할 수가 있으며, 땡볕이라고도 한다.
그만큼 삼복더위의 강력한 햇볕과 같은 역할에 해당하는 것이 丙火이며, 감히 어느 누구도 대들지 못하는 성분으로 인식을 할 수 있다.
丙火는 두려움을 모른다.
자기 소신대로 강력하게 추진하는 것만이 존재한다.
추진이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으면 폭발이라고 하는 것이 오히려 근접하다고 이해하기도 한다.
이성적(理性的)인 성분이 거의 없으므로 그야말로 적나라한 감정을 그대로 나타내는 모습이 된다.
강경한 丙火가 인정을 베풀게 되면 한없이 자비로워진다.
호랑이가 새끼를 돌보는 모습을 떠올려도 좋다.
그러한 丙火이기 때문에 상황에 따라서는 약한 자를 돌보느라 자신의 모습은 생각하지 못하는 장면도 연출된다.
그야말로 강자에게 강하고 약자에게 약하다는 것은 丙火에게 잘 어울리는 말이기도 하다. 丙火는 극양(極陽)이다.
양이 극에 달한 상황이기 때문에 오히려 꺾이게 될 지경에 처하는 상황이기도 하다.
丙火에게는 자신의 난폭함에 대해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 성분이 바로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데, 그 성분은 바로 빛을 흡수(吸收)하는 것이다.
흡수당한 빛은 이미 그 존재가 의미 없음을 말한다.
그래서 丙火는 빛을 흡수하는 존재를 만나지 않고자 희망한다.
어둠이 두렵다. 그래서 더욱 밝음이고자 하는 노력을 기울이게 된다.
이것은 극단적(極端的)으로 선택하게 되는 성분이기도 하다.
어쩌면 극한 상황까지 도달한 용(龍)이 땅으로 떨어지지 않기 위해서 온갖 몸부림을 치는 것과 같은 느낌이 든다.
丙火는 신령(神靈)이다.
영계(靈界)에서 만물을 통제하는 주재자(主宰者)가 되는 것으로 해석을 한다.
모두를 목적에 의해서 사용하고 버리는 것을 자연의 이치에 따라서 시행하므로 사정(私情)이 없다.
무심(無心)으로 통제하므로 그 사이에서 죽는 자도 있고 성장하는 자도 있지만 신령(神靈)은 개의치 않는다.
이러한 성분을 닮은 것이 丙火이다.
만물을 성장의 극한 지점으로 끌고 올라가는 역할을 한다.
마치 땅에서 수증기나 열기가난류(暖流)를 타고 상승하여 거의 정상(頂上) 지점에 도달하게 되는 경우를 말하게 된다.
丙火는 뭔가 편안한 모습이 아니라 강경한 이미지를 갖고 있음을 의미한다.
丙火는 무지하게 빠르다. 물리학자의 말에 의하면 1초에 약 30만km를 달린다고 한다.
그러므로 性急하기가 十干 중에 으뜸이 되는 것이다.
甲木도 빠르지만 고속(高速)은 아니고 꾸준하게 진행하는 로켓과 같이 한 방향으로 전진하는 형태로 이해를 한다.
그런데 丙火는 방사형으로 뻗어나간다. 이것은 木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이다.
이렇게 다각도(多角度)의 방향으로 확산되면서 속도 또한 엄청나게 빠른 성질을 갖고 있다.
사람에게 이러한 현상을 대입했을 적에는 상상도 못할 정도의 성급(性急)함으로 이해를 한다.
다만 표현을 할 적에는 성격(性格)이 불같다는 정도의 말로 대신할 뿐이다.
실은 불보다 훨씬 빠른 빛과 같다고 해야 할 것이다.
다만 빛에서 난폭한 이미지를 얻기는 어려워서 일상적으로 쓰는 말로 그렇게 되어 있을 뿐이다.
때로는 이치적으로는 틀렸지만 정서적으로 타당하면 그대로 수용을 해도 무방하다.
의미만 잘 이해를 한다면 아무런 무리가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보국(保局)
風水의 용어.
혈(穴) 주변에 있는 주산(主山) 청룡(靑龍) 백호(白虎) 안산(案山) 조산(朝山) 등이 감싸주는 형태(形態)의 지세(地勢)를 말한다.
보국(保局)
보국(保局)은 혈(穴)을 이루기 위하여 회포(回抱) 유정한 모든 산이다.
원형으로 혈(穴)에 조응해야 한다.
주산은 웅장하고 위엄있고 클수록 길하다.
혈은 우뚝 솟아 보국이 안정되어야 한다.
순행 후부 서기 양명해야 한다. 안산은 조응해야 한다.
보국(保局)은 장풍정수로 명당 명혈을 이루게 된다.
현무인 모체주산(母體主山)은 가까울수록 길하다.
태조(太祖) 중조산(中祖山)은 멀어야 유아독존의 인물이 태어날 수 있는 대 명당이 결혈(結穴)한다.
혈보다 보국이 높으면 높은 관직에 올라도 추앙 받지 못한다.
안산(案山)이 높으면 자기 직분의 권세를 못한다.
우물 안에서 하늘을 보듯이 보국이 높으면 천옥이니 식복은 있어도 천하게 살아간다.
비혈(非穴)에 앞산이 고대하면 재물이 있어도 비천하다.
보국심혈법(保局尋穴法)
風水 혈세(穴勢)의 하나.
보국심혈법(保局尋穴法)이란 국세(局勢)를 보고 穴을 찾는 방법(方法)이다.
국세(局勢)란, 청룡백호(靑龍白虎)를 비롯한 주변 山들이 穴을 감싸주고 있는 형태(形態)를 말한다.
전후좌우(前猴左右)에 있는 山들이 주룡(主龍)과 穴을 향해 유정하게 감싸주고 있으면 穴이 맺을만한 곳이다.
수백수십리를 행룡(行龍)한 龍이 穴을 결지(結地)하고자 할 때는 반드시 보국(保局)을 형성해야 하기 때문이다.
길(吉)한 보국이란, 穴을 중심으로 청룡(靑龍) 백호(白虎) 안산(案山) 조산(朝山) 명당(明堂) 수(水) 등 주변의 모든 것들이 취합한 것을 말한다.
穴을 찾고자 할 때는 주변의 모든 山과 水가 어느 산줄기를 향(向)해 있는지를 살펴야 한다.
멀리서 그 산을 바라보면 용맥(龍脈)이 기세(氣勢) 왕성(旺盛)하게 변화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대부분 용맥(龍脈)의 끝인 용진처(龍盡處)에 穴이 있다.
보담문(寶曇紋)
보담문은 두가의 형태가 있다.
하나는 달무리와 같은 것과 또 하나는 둥근 고리의 두 가지가 있다. 달과 같이 나타나는 것은 문재가 있는 정직한 사람이며 또 고리와 같이 나타나는 것은 재물이 많이 있는 것을 나타낸 상이다. 어느 것이나 부귀하고 일생을 안락하게 보내는 좋은 상이다.
보라색 Violet
보라는 직관적인 색이다.
자수정처럼 정신적이고 사려 깊은 색이다.
보라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천부적이고 직관력이 좋다.
때로는 수줍음이 많아 세상과 등지고 틀어박혀 지내는 일이 있다.
또한 이것과는 반대로 지도적인 입장에서 위엄과 기품을 지닌 사람도 있다.
하지만 고도의 감성이 오히려 화가 되어 다른 사람을 신용하지 못한다.
일은 언제나 굳은 신념을 가지고 마지막까지 해치운다.
보라색의 또 하나의 측면은 불가사의해서 이해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기품이 높은 색으로 간주되고 있다.
보라색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문화적 지향성이 있고 예술가에 압도적으로 많다.
다른 한편으로는 거만하거나 아니꼬워 보이는 타입도 있다.
일반적으로 감성이 뛰어나다.
자만심은 감출 수 없다.
세련된 예술을 좋아하며 인생을 유유자적하게 즐기는 방법을 알고 있다.
보리(菩提)
보리는 불교 최고의 이상인 부처님 정각의 지혜,
곧 불과를 말한다. 그러한 지혜를 얻기 위하여 걸어야 하는 길을 말함이다.
위로는 보리를 구하고 아래로는 중생을 교화하는 마음을 보리심이라 하며, 보리는 道, 智, 覺이라고 번역한다.
보리살타는 깨달음을 얻으려고 하는 사람을 말하며 줄여서 보살이라고 하며, 보리지마는 불도를 행하는 사람으로 보리법에 집착하여 제대로 수행을 하지 못하는 것을 지칭하는 말이다.
이처럼 보리를 접두어로 또는 접미어로 사용하는 것은 보리. 즉 깨달음의 지혜로 인해 일어나는 현상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다.
보리(菩提)
범어 Bodhi의 음역. 번역하여 도, 지, 각이라 한다.
불교 최고의 지혜. 즉, 부처님이 깨달은 지혜. 불도.
① 불교 구극의 이상인 불타 정각의 지혜. 불과.
② 불타 정각의 지혜를 얻기 위하여 닦는 도. 불과에 이르는 길.
보리심(菩提心)
부처님께 귀의하여 깨닫고자 하는 마음.
① 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 부처가 되려는 마음.
② 깨달은 마음 상태. 모든 분별과 집착이 끊어진 깨달음의 마음 상태.
보살(菩薩)
깨달을 중생, 깨달음을 구하는 중생, 구도자(求道者)라는 뜻이다.
① 깨달음을 구하면서 중생을 교화하는 수행으로 미래에 成佛할 자.
자신도 깨달음을 구하고 남도 깨달음으로 인도하는 자리(自利)와 이타(利他)를 행하는 자.
② 보살승(菩薩乘)의 준말.
③ 수행자.
④ 여자 신도를 일컫는 말.
구도자의 삶을 추구하는 사람. 보리살타의 준말. 또는 여자 신도를 일컫는 호칭.
산스크리트어로 보디삿트바, 팔리어로는 보디삿타이며 이 원어를 정확히 음사하여 보리살타라고 쓰기도 한다.
보살은 무상보리를 구하여 중생을 이익케 하고 모든 바라밀의 행을 닦아서 미래에 부처의 깨달음을 열려고 하는 이를 가리키는 말로 자리이타의 큰마음을 근본으로 한다.
소승의 성문이나 연각도 각기 깨달음을 구하는 점에서는 같다 할 수 있으나 특히 상구보리 하화중생을 행하는 대승의 수행자를 마하살, 보살마하살, 보리살타마하살타라고 하여 이승으로부터 구별하고 이것을 보살이라고 한다.
대승의 보살관은 이러한 인식을 구체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자신의 것은 남에게 아낌없이 다 주고 지옥중생 구제를 위해 성불을 미루고 있다는 지장보살이나 천수천안으로 중생의 고통을 두루 살펴 구제해 주는 관세음보살, 모든 인간에 대한 경외심을 극단적으로 보여 주는 상불경 보살이 그러한 예이다.
보살은 깨달아 아는 경지에 따라 오십이위 등의 계위를 세우기도 하며 보살의 닦는 행을 보살행, 불과에 이르게 하는 교를 보살승, 그 경전을 보살장이라 하고 범망경 등에는 보살이 지녀야 할 보살계를 설하고 있으며 모든 경전에는 미륵, 문수, 관세음, 대세지를 비롯한 여러 보살의 이름을 들고 있다. 또 역사상의 인물로는 용수, 세친 등을 보살로 부르고 있다.
보살(菩薩)
보리살타의 줄임말로 성불하기 위하여 수행에 힘쓰는 이를 총칭한다.
보살
귀신 종류의 하나.
불교에서 말하는 보살과는 다른 의미이다.
대체로 보살이라고 하는 이름으로 행세를 하는 할머니 귀신들이 상당 많은 모양이다.
그래서 아예 이러한 이름으로 인해서 점집을 가르켜서 '보살집'이라고도 하는데, 의미로 봐서야 참 좋은 뜻이 되겠지만 실제로 그 곳에 살고 있는 무녀가 보살이라고 생각을 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야말로 "보살이 아니라 그 이름이 보살이니라"의 의미라고 하면 적절하겠다. 그야말로 이름만 보살이고 실제로는 무녀의 집이 되는 데, 보살이라고 하는 것은 선녀와 비교해서 아무래도 나이가 좀 들었다고 생각을 하면 되겠다.
보수(保守)
당사주 부부궁의 하나.
원앙의 베개 위에 백년을 기약하도다.
하늘의 인연이 같이 거하니 치부할 운이로다.
화기가 넘칠 것이요 자손이 창성하리라.
사십 오칠세가 되면 연운이 대통하도다.
보수(保守)
당사주 부부관계의 하나.
사랑은 아름답고 가정은 태평하니 천상의 연분이 이에서 맺어짐이다.
화촉동방에 아름다운 신부와 빼어난 신랑이 앉았으니 천지가 아름다운 꽃으로 변한다.
백년을 해로하고 애정이 화합하니 부귀공명하고 집안에는 경사가 중중하다.
부부가 천분임을 알아 삿됨이 없고 도리를 다 하는데 무엇이 침범하랴.
만나는 날부터 더 일찍 만나지 못했음을 한탄할 만큼 달콤한 열매만 딴다.
아내는 얼굴이 피고 마음이 아름다워 집안을 꽃밭으로 가꿀 것이니 온가족이 평화롭고 풍족하게 된다.
큰 소리 한번 낼 일이 없으니 오히려 삼가게 되고 티끌만큼이라도 흠이 될세라 가다듬어야 하는 피곤함도 뒤따른다.
가정을 가꾸는 여인의 자리를 얻을 것이니 명령으로서가 아니라 자애로서 다스려 온 집안 가족이 사랑하는 현모양처의 자리다.
남편은 조화롭고 이해력이 풍부하여 모든 것을 화합으로 이뤄가니 가정은 태평하고 아내는 만족하게 된다.
모든 일을 아내에게 의논하고 그 권한을 십분 살리게 하니 아내로서 집안의 태평을 가꾸게 하리라.
어떤 경우라도 가정을 지킴이 학과 같으니 날개가 부러질지라도 아내를 향해 날르는 고한 인격을 갖추게 된다.
보시(布施)
불교 육바라밀의 하나.
단나바라밀이라 한다.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을 남에게 베풀어주는 것.
재시(財施) 재물을 베풀어주는 것.
법시(法施) 부처님 법을 전해주는 것.
무량시(無畏施) 타인에게 안도감을 주는 것.
이 처럼 모든 것을 베풀어주되 베풀어준다는 생각이 없는 무주상보시가 되어야 진정한 보살의 수행이다.
보시(布施)
보시란, 남에게 무엇을 베푸는 것을 말하며, 보시중의 으뜸은 무주상 보시이다.
보시에는 세 가지 형태의 법시(法施), 재시(財施), 무외시(無畏施)가 있다.
① 법시(法施), 진리를 모르고 무명 속에 방황하는 사람들에게 부처님의 가르침, 즉 말씀을 전하는 보시를 말함.
② 재시(財施), 우리가 일반적으로 이해하는 보시의 개념인 물질적인 것을 남에게 베푸는 보시를 말함.
③ 무외시(無畏施), 다른 사람에게 정신적 불안 공포를 주지 않는 것을 말함.
보시(布施) dana
보시(dana)란 베푸는 것이다.
베푸는 것에는 물질적으로 베푸는 재시(財施)와 진리의 말씀을 전하는 법시(法施), 두려움과 근심을 함께 하고 도와주는 무외시(無畏施)의 세 가지가 있다.
보시할 때에는 주는 자, 받는 자, 주는 물건이 모두 청정한 것[三輪淸淨]이 진정한 보시이다.
즉 보시를 행하면서도 보시라는 선행에 집착하지 않고 공덕의 대가도 바라지 않는 무주상(無住相)의 보시가 보시바라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