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인사(海印寺)-1
위치 : 경상남도 합천군 가야면 해인사길 122, 해인사 (치인리)
좌표 : 북위 35°48′05″ 동경 128°05′53″
대한민국 경상남도 합천군 가야면 치인리 가야산 중턱에 있는 사찰로서 팔만대장경이 세계기록유산, 팔만대장경을 보관하는 장경판전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대한불교 조계종 제12교구 본사로 150여 개의 말사(末寺)를 거느리고 있다.
불교의 삼보사찰 중 법보(法寶) 사찰로 유명하다.
대적광전(大寂光殿)의 본존불은 비로자나불이다.
1. 역사
해인사는 남북국 시대 802년 신라 애장왕(哀莊王) 3년에 순응(順應)과 이정(利貞)이 창건했다.
그들은 가야산에 초막을 세우고 참선을 했는데 등창으로 고생하던 애장왕의 왕비의 병을 낫게 해주어 애장왕이 절을 창건하도록 했다.
순응과 이정 이후 결언대덕이란 승려가 사찰 창건을 계속했고 주지가 되었다.
918년에는 승통희랑이라는 당시 해인사 주지가 고려를 도와준 데 대한 보답으로 고려 태조가 국찰로 삼았다.
대각국사 의천이 [속장경]의 간행을 시도한 곳이다.
해인사는 5차례가 넘는 화재로 인해 여러 번 중창되었으며, 그에 따라 창건 당시의 건축은 알 수 없고, 현재의 전각은 대부분 조선 말기 때의 것이며, 3층석탑 석등 등이 현존한다.
1481년 조선 성종12년 이후 8년간 중건하였고, 조선 초기의 대표적인 건축물로서 국보로 지정된 장경판전(藏經板殿)에는 유명한 [고려대장경]이 보관되어 있다.
해인사는 1993년에 성철 스님이 입적한 곳이기도 하다.
2. 한국전쟁
해인사는 광복 후 한국전쟁 때 위기를 맞게 된다.
1951년 9월, 인천상륙작전 이후 대한민국으로 전세가 역전되면서 퇴각하지 못하고 남은 1천여명의 북한군 잔당들이 해인사를 중심으로 게릴라전을 전개했다.
이에 UN군에서는 폭격기 4대로 해인사를 폭격하라는 명령을 내렸으나, 당시 공군 편대장이었던 김영환 대령은 해인사와 팔만대장경이 소실될 것을 우려해 명령을 따르지 않았다.
이로써 해인사는 폭격당할 위기를 넘기게 되었다.
김영환은 그 공으로 대령에서 준장으로 진급했고, 현재 해인사 경내에는 그를 기리는 공덕비가 세워져 있다.
3. 문화재
세계기록유산, 세계문화유산 해인사에 보존되어있는 팔만대장경과 장경판전은 현재 세계기록유산, 세계문화유산으로 각각 지정되어 한국문화의 우수성을 알리게 되었다. 같은 시기에 만들어진 동양 각국의 대장경과 비교할 때 오탈자가 거의 없다시피 하고 글꼴이 한 사람이 새긴 듯이 일정해서 자체가 예술품처럼 느껴지는 고려대장경이다.
해인사 가장 높은 곳에 자리 잡은 장경판전도 외양의 아름다움은 물론 그 안에 숨겨진 과학적 지혜가 찬탄을 자아내게 한다.
이 두 가지 요소로 인해 해인사는 법보종찰이라 불린다.
불법승 삼보 가운데 부처님의 말씀을 간직한 곳이라는 뜻이다.
성철스님 이래 현대 한국불교사에서는 법보뿐 아니라 법통까지도 해인사를 중심으로 이어지고 있다.
단위사찰 가운데 가장 많은 스님이 머물고 배출되면서 형식적으로나 내용적으로 한국불교의 중심이자 상징 같은 절이 바로 해인사이기 때문이다.
4. 성보문화재
해인사는 국보, 보물 등 국가지정문화재가 20여 점이나 된다.
국보 제32호인 팔만대장경을 비롯해서 제52호인 장경판전 그리고 국보 제206호로 지정된 고려목판까지 국보가 3점이며, 보물이 20여 점에 사적과 명승, 천연기념물, 중요민속자료 등이 각 1점씩 있다.
1) 국보
(1) 국보 제32호 합천 해인사 대장경판
해인사에 보관중인 팔만대장경
종목 : 국보 제32호(1962년 12월 20일 지정)
수량 : 81,352매
시대 : 고려시대
합천 해인사 대장경판(陜川 海印寺 大藏經板) 또는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 영어: Tripitaka Koreana)은 국보 제32호로 경상남도 합천군 해인사에 있으며, 고려가 몽골의 침입을 불력(佛力)으로 막아내고자 1236년(고종 23년) 강화군에서 조판에 착수하여 15년이 지난 1251년(고종 38년)까지 총 16년에 걸쳐 완성한 고려의 대장경이다.
1962년 12월 20일에 대한민국의 국보 제32호로 지정되었다.
현존하는 세계의 대장경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일 뿐만 아니라 체재와 내용도 가장 완벽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는 팔만대장경은 2007년도에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역사 : 불교를 숭상한 고려는 외침(外侵, 외세의 침략)을 부처의 힘으로 막고자 방대한 대장경의 간행사업을 추진했다.
제1차는 거란의 침입으로 곤경에 직면했을 때 불력으로 물리치고자 대구 팔공산 부인사(符仁寺)에 도감(都監)을 두고, [대반야경大般若經] [화엄경華嚴經] [금광명경金光明經]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 등 6,000여 권을 조조(彫造)하였다.
현종 때 시작하여 문종 때 완성된 이 초판 고본(古本) 대장경은 고종19년(1232)의 몽골 침입 때 불타고, 일부가 일본에 전해진다.
그 후 대각국사 의천이 흥왕사(興王寺)에 교정도감(敎藏都監)을 설치하고, 송에서 가져온 불경과 요(遼) 일본에서 수집한 불경의 총목록을 작성하고, 이에 따라 차례로 만들었다.
이것이 이른바 속대장경(續大藏經)으로 1,010부(部) 4,740여 권에 달하였으나, 몽골의 병화로 거의 없어지고 일부가 전해지고 있다.
그 후 강화도에서 몽골의 침입을 막아보고자 대대적인 조판 사업이 진행되었다.
고종23년(1236) 강화도에 장경도감(藏經都監)을 설치하여 사업에 착수, 고종38년(1251) 총 81,137매(枚)의 대장경을 완성하였는데, 이것이 유명한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으로 합천 해인사에 보관되어 있다.
대장경의 조판으로 인쇄술의 발달과 출판 기술에 큰 공헌을 하였다.
현재 보존되어 있는 대장경판은 조선 시대에 다시 새긴 것(보유판)과 일제 강점기 때 다시 새긴 것까지 합하여 총 81,352판(板)이나 된다.
치수 및 재질, 개수 : 경판의 개당 총 길이는 68 혹은 78cm이며 폭은 약 24cm, 두께는 2.7∼3.3cm의 범위이다.
무게는 경판의 재질에 따라 4.4kg까지 나가는 경우도 있으나, 대부분 3∼3.5kg 정도이다.
경판의 재질은 자작나무로 만들어졌다고 알려져 왔으나 전자현미경으로 조사한 결과 산벚나무와 돌배나무가 대부분이다.
현재 보존되어 있는 경판의 수는 81,352장이다.
팔만대장경의 경판 숫자는 1915년 조선총독부가 처음 81,258장으로 집계했다.
정부가 1962년 국보 지정 당시 별도의 확인 작업 없이 이 숫자를 그대로 적용하면서 그동안 정확한 숫자, 훼손 여부 등을 둘러싸고 논란이 일기도 했다.
문화재청은 이에 따라 2000년부터 실시한 ‘해인사 고려대장경 디지털 영상화 및 기초자료 데이터베이스 사업’, 2014년에 수립한 ‘해인사 대장경판 중장기 종합 보존관리계획’에 따른 조사 등을 통해 최종적으로 81,352장으로 밝혀졌다. 하지만 81,352장이라는 숫자에는 일제강점기인 1915년, 1937년에 제작, 추가된 36개 경판이 포함되어있는 수치이다.
이에 대한 문화재적 가치의 견해들이 전문가는 물론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엇갈리는만큼, 학문적, 사회적 합의가 절실한 상황이다.
문화재 지정 : 팔만대장경판을 보관하고 있는 해인사 장경판전은 1995년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현재 국보로 지정되어 해인사에 보관되어 있으며, 장경을 보관하고 있는 해인사 장경판전 역시 그 과학적 기술의 탁월함으로 인하여 국보로 지정되어 보존되고 있다. 해인사 대장경판 및 제(諸)경판은 2007년도에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또한 팔만대장경 인쇄본도 강원도 평창군 등에서 문화재로 지정하여 보존하고 있다.
한글대장경 : 1964년 3월 동국대학교 역경원을 설립하여, 조계종 3대 사업으로 한글대장경 번역을 시작했다.
1965년부터 매년 8권씩 한글대장경이 간행됐고, 36년이 지난 2001년에 한글대장경 318권을 완간하였다.
팔만대장경 완성에 15년이 걸렸는데, 한글대장경은 2배가 넘는 36년이나 걸려 완성했다.
(2) 국보 제52호 합천 해인사 장경판전
해인사 장경판전(海印寺 藏經板殿)은 국보 제52호로, 해인사에 딸린 건물의 하나이다.
해인사 장경판전 : 유네스코 세계유산
해인사 장경판전 내부.
영어명 : Haeinsa Temple Janggyeong Panjeon
프랑스어명 : Temple d'Haeinsa Janggyeong Panjeon,les dépôts des tablettes du
Tripitaka Koreana
등록구분 : 문화유산
기준 : Ⅳ, Ⅵ
지정번호 : 737
지역 : 아시아·태평양
해인사 경내에는 대소의 많은 법당이 있으나 그 대부분은 근세에 세워진 것이고 장경판전만이 조선 초기에 세워진 것이다.
임진왜란 때에도 무사하였으나 오랜 세월에 낡아진 것을 광해군 14년(1622)에 수다라장을 중수하고 1624년에는 법보전도 중수하였다.
장경판전은 건물 자체가 특수할 뿐 아니라 고려대장경의 판전으로서 유명하며, 똑같은 규모양식을 가진 두 건물이 남북으로 나란히 세워져 있어 남쪽을 수다라장(修多羅藏), 북쪽을 법보전(法寶殿)이라 한다.
건물은 간단한 방식으로 가구하였고 세부 역시 간결하여 판전에 요구되는 기능을 충족시킬 목적 이외에는 아무런 장식적 의장을 가하지 않았다.
그 앞 두 동의 소당에는 보판(補板)과 잡판(雜板)을 소장하고 있지않다.
가야산 중턱 해발 고도 약 700m에 자리잡은 해인사는 통일신라 애장왕 3년(802)에 지은 사찰로, 왕후의 병을 부처의 힘으로 치료해 준 것에 대한 감사의 뜻으로 지었다고 한다.
우리나라 3대 사찰 중 하나이며, 8만대장경을 보관하고 있기 때문에 법보사찰이라고도 부른다.
장경판전은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8만여장의 대장경판을 보관하고 있는 건물로, 해인사에 남아있는 건물 중 가장 오래 되었다.
처음 지은 연대는 정확히 알지 못하지만, 조선 세조 3년(1457)에 크게 다시 지었고 성종 19년(1488)에 학조대사가 왕실의 후원으로 다시 지어 ‘보안당’이라고 했다는 기록이 있다.
산속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어 임진왜란에도 피해를 입지 않아 옛 모습을 유지하고 있으며, 광해군 14년(1622)과 인조 2년(1624)에 수리가 있었다.
앞면 15칸, 옆면 2칸 크기의 두 건물을 나란히 배치하였는데, 남쪽 건물은 ‘수다라장’이라 하고 북쪽의 건물은 ‘법보전’이라 한다.
서쪽과 동쪽에는 앞면 2칸, 옆면 1칸 규모의 작은 서고가 있어서, 전체적으로는 긴 네모형으로 배치되어 있다.
대장경판을 보관하는 건물의 기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도록 장식 요소는 두지 않았으며, 통풍을 위하여 창의 크기를 남쪽과 북쪽을 서로 다르게 하고 각 칸마다 창을 내었다.
또한 안쪽 흙바닥 속에 숯과 횟가루, 소금을 모래와 함께 차례로 넣음으로써 습도를 조절하도록 하였다.
자연의 조건을 이용하여 설계한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점 등으로 인해 대장경판을 지금까지 잘 보존할 수 있었다고 평가 받고 있다.
해인사 장경판전은 15세기 건축물로서 세계 유일의 대장경판 보관용 건물이며, 대장경판과 고려각판을 포함하여 1995년 12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3) 국보 제206호 합천 해인사 고려목판
합천 해인사 고려목판(陜川 海印寺 高麗木板)은 해인사에 소장되어 있는 고려시대에 새긴 목판으로, [대방광불화엄경] 진본(晉本) 728매, 주본(周本) 941매 등 불교경전, 고승의 저술, 시문집 등 총 54종 2,835판이다.
국가기관인 대장도감에서 새긴 해인사 대장경판과는 달리 사찰이나 지방관서에서 새긴 것으로 현재 해인사 장경판전 사이에 있는 동서 사간판전에 봉안되어 있다.
이 목판들은 금강경, 화엄경 등의 대승경전과 신라 고려 중국의 고승이나 개인의 시문집 및 저술들이다.
경전류는 대부분 간행기록이 있어 고려시대 불교경전의 유통 등 불교신앙의 경향을 알 수 있으며, 고승 및 개인의 시문집과 저술 등은 비록 간행 기록이 없고 산실이 많으나 그 내용이 전해지지 않거나 역사적으로 희귀한 자료들로서 한국 불교사상 및 문화를 알 수 있는 유일한 자료들이다.
그리고 그 자체가 한국 목판 인쇄술의 실증적 자료로서 그 시대의 문화를 상징하는 서각예술품이기도 하다.
해인사의 고려시대에 판각한 경판은 모두 54종 2,835판인데, 이중 28종 2,725판이 국보 제206호로 지정되어 있고, 26종 110판은 보물 제734호로 지정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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